[Archis View] 조이 레너드

Zoe Leonard (b.1961)

by Dean Lee




© Photograph:Jana La Brasca


Being an artist wasn’t so much a profession; it was more of a confirmation of my existence

예술가는 직업이라기보다는, 그냥 내 존재에 대한 확신이었어요. -인터뷰 중 발췌






조이 레너드 (Zoe Leonard)는 1961년 뉴욕 리버티 출신으로 현재 뉴욕과 텍사스 마르파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사진, 조각, 설치등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성(sexuality), 정치와 사회, 삶과 죽음, 상실과 애도, 자연과 도시풍경 등의 무게감 있는 주제에 대해 깊은 고찰을 불러일으키는 개념적 작품을 해오고 있다. 조이는 단일한 방식보다는 사진과 공간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유목적 사유'를 확장하며, 장소 특수성,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물성을 활용해 관객에게 섬세한 관찰을 요구하고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 Zeo Lenard, Photograph by Ron Amstutz.

Installation View of Zoe Lenard:Survey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March 2-June 10,2018)





그의 작품은 오브제와 공간 그리고 시간성이 한데 어우러지며 작품의 생명력을 더한다. 전시장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뉴욕의 허드슨강 (Hudson River)과 창밖으로 환하게 스며드는 햇빛, 그리고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전시장 내부의 오브제들과 중첩되고 균형을 이룬다, 이 만남은 새로운 맥락을 탄생시키고, 경이로운 정신적 발견과 감상적 유희를 이끌어낸다.


책은 인간 지성의 집합체이자 기록이며 개인과 국가의 역사를 담아낸다, 특정한 시기에 쓰인 한 권의 책은 필연적으로 시간적 한계를 지니지만, 쌓는다는 특정한 퍼포먼스를 통해 그 경계를 넘어선다. 이는 궤도 밖의 무언가와 만났다가 돌아오는 과정을 거듭하며,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메시지를 주고받는 하나의 추상적 의식처럼 작동한다. 예를 들어, 이는 예시 1) 초월주의적 (Transcendentalism) 사고와 맞닿아 있으며, 인류가 돌탑 (Cairn)을 쌓으며 경건함, 안내의식을 되새겼듯, 문명과 제도, 정치적 경계를 넘어 인간 본연의 힘을 회복하게 만든다.





예시 1)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와 랄프 월도 에머슨과 같은 사상가들이 주창한 철학적 운동으로,

자연 속에서 내면의 진리를 깨닫고, 사회적 규범이나 물질적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삶의 방식을 강조한다.







© Zoe Lenard


1961-2002, Vintage Suitcase, for every year of the artist's life; one suitcase added every year, Dimensions Variable, Solomon R.Guggenheim Museum, New York, Furchased with funds contributed by the International Director's Council,2014




1961-2002년 작품은 그가 태어난 해인 1961년부터, 푸른빛 빈티지 여행가방을 하나씩 더해간 설치 작품으로, 가방의 크기와 마모 정도, 그리고 연필로 여기저기 드로잉을 한 듯한 스크래치 자국들은 인간의 희소한 삶과 시간의 유한성을 상징하며, 오브제적 기록으로서 코드화된다.




Some things need to be simple to stand out better. If you add too many elements, it dilutes the essence. But simplifying is also really hard

어떤 것들은 단순해야 더 잘 보일 수 있어요. 너무 많은 요소를 넣으면 오히려 본질이 흐려지죠. 하지만 단순하게 만드는 건 엄청 어렵기도 해요. - 인터뷰 중 발췌






Strange Fruit (1992–1997) © The Artist




그는 1980년대에 예술 활동을 시작하며, 예술과 사회운동을 통해 뉴욕 도시의 변화를 직접 만들어갔다, 80년대 중반, 에이즈(AIDS) 위기가 미 대륙을 강타하며 전미 지역을 공포로 휩싸이게 했고, 앤디워홀, 로버트메플소프, 키스해링 등의 영향력 있는 예술가들이 대거 목숨을 잃었다. 이는 예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정치적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예술 사회운동이 시작된 계기가 되었다. 20세기 후반에는 복잡해진 사회제도, 산업화, 정치의 변혁, 다인종 커뮤니티 등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예술의 방식과 스펙트럼이 다원화되었고, 사회와 권력 구조를 구체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다.


Strange Fruit (1992–1997) 은 이 시기 목숨을 잃은 친구 데이비드 보이너로비치(David Wojnarowicz)를 애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전시장 곳곳에 바나나, 오렌지, 레몬 등 과일 껍질들이 나동그라져 있고, 벗겨진 살점을 이어 붙인 듯 과일 외피가 얼기설기 꿰매어져 있다. '바느질'은 마치 예시 2) 모이라이 (Moirai) 여신이 실을 잣고 짓고 끊는 행위처럼 인생의 과정이 결국 죽음으로 귀결되고, 운명과 생명의 흐름들을 은유하는 듯하다, 그 상실감과 한계성을 달래듯, 상처 부위를 봉합하고 단추를 달아주는 퍼포먼스가 이루어진다.





예시 2) 모이라이 (Moirai) 여신들은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 존재의 실을 짜는 클로토 (Clotho), 측정하는 라케시스 (Lachesis),

자를 수 있는 아틀로 포스 (Atropos)로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세 여신이다.


Friedrich Paul Thumann, The Three Fates, Oil on Canvas,1880







'Analogue' 1998-2007 © The Artist




1998년에는 그는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에서 폐업하는 가게들과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들을 11년에 걸쳐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Analogue'사라져 가는 도시의 얼굴들을 담아내는 동시에, 기억해야 할 전쟁의 상흔, 그리고 역사 속 불의에 저항하고 권리를 되찾기 위한 움직임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폴란드 이민자로서 미국에 정착한 그는 이민자들의 삶에 깊이 공감하며, 강제 이주(displacement)와, 국적 없이 떠도는 난민들의 고통, 도시가 만들어낸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 속 빈부격차, 그리고 그 안에서 소멸해 가는 것들의 애잔함 등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I guess because of what we’ve all been reading about in the newspaper, it seemed like a telescoping of time where very similar things were happening in the past and present, and millions of people are actually out on these same shores looking for a place to live and be safe.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듯한 시간의 수축(telescoping of time) 현상이 일어나요.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이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여전히 수백만 명이 안전하게 살 곳을 찾아 떠도는 현실이 있다는 거예요.

-인터뷰 중 발췌




The Ties That Bind, (The Tree, 1997),11, April,2020 ©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The Ties That Bind연대, 기억, 그리고 시간성을 탐구하는 작품으로, 나무가 지닌 성장과 연결성의 상징성을 통해 그 의미를 더욱 깊이 고찰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커뮤니티의 연대를 탐색하는 동시에, 보이지 않는 자연과의 소속감, 그리고 사회적 역사적 영향력 속에서 얽혀 있는 관계들을 연구한다.

전시장 내부에 자연물을 배치함으로써 관점의 전복이 일어나고, 이를 통해 관람자들이 자신의 일상과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나아가, 사회와 역사의 일부로서 인류 전체의 책임의식과 수용력을 확장시킨다.




It felt much less segregated than now. It wasn’t like, “You’re in the art world.” I never heard the term “art world” until I was in my thirties, and I was like, “What are you guys talking about?” It’s the world, and we all live in the world.
그때는 지금처럼 문화가 분리되지 않았어요. “넌 미술계 사람이야” 같은 말도 없었어요. 사실 “미술계(art world)”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게 서른 살 때였는데, “그게 뭐야? 그냥 세상이지! 우리 모두 세상에서 사는 거잖아”라고 말했었죠. -인터뷰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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