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s View] 쥘 드 발랑쿠르

Jules de Balincourt(b.1972)

by Dean Lee



작업을 시작하면서는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가면서 발견해 가야죠.
© Photo Credit:Bryan Derballa






쥘 드 발랑쿠르 (Jules de Balincourt)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현재 뉴욕 브루클린에 거주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그는 어린 시절에 부모를 따라 파리,취리히,이비자,캘리포니아 등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살아왔고,이 경험은 그에게 문화적 수용성을 길러주었으며, 폭넓은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부르주아적 삶과 유목민적 생활이 혼합된 그의 유년기는 단일한 정서와 관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외부의 자극이 되어,세상을 향한 순수한 관심과 관찰, 그리고 영향을 주고받는 복잡한 과정과 요소들간의 찰나적 감각을 인식하는 감각적 토대를 마련했다.이러한 기반 위에서 그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하얀 캔버스에 유랑하는 건축물 건설해 나간다.





Solitary Cowboy, Oil on Panel, 61 x 50.8 x 4.5 Cm, 2020. © the artist and Thaddaeus Ropac




그의 작품은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의미없이 장식적이거나 기계적이지 않다.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경계없는 상상력의 지층에서 드물게 떠오르는 감각을 건져올리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Solitary Cowboy,2020>> 에서는 화면 밖의 관찰자를 응시하는 얼굴 없는 카우보이가 등장한다. 인류를 향한 예언적 메시지를 품고 있는 암시적 존재처럼 보이는 그는, 마치 노르드 신화에 등장하는 드라우그 (Draug) 괴물처럼, 감정을 적극적으로 유발하거나 통제하지 않고, 자연과 신처럼 개입하지 않는 방식으로 개입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관객 스스로 사유의 심연을 자유롭게 탐색하도록 유도한다.



드라우그 (Draug)는 노르드 신화와

스칸디나비아 전설에 등장하는

"걷는 시체" 로, 무덤에서 되살아난 전사나 선원의 유령을 뜻한다.

보물을 지키거나 복수를 위해 살아난다.

초인적인 힘과 마법적 능력을 지닌 신화 속 괴물로,

현대 좀비 개념의 원형으로 여겨진다.




삶에서 항상 존재하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죽음,재앙,쇠락 등의 불청객의 모습으로, 어둠이 자욱한 황량한 대지를 가로질러 우편을 속달하는 포니 익스프레스(Pony Express)의 모습 처럼 위장하여, 사회적 불평등,트라우마,오래간 묵혀온 가족간의 중요하지만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 등, 삶 속 어둠과 슬픔을 직면하게 하는 매개가 되어준다.





포니 익스프레스(Pony Express)는

1860년대 미국 서부 개척 시대,

철도나 전신망이 갖춰지기 전

말 (pony) 을 타고 우편,소포,신문등을 배달하던

역마 택배 서비스였다. 배달원들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위험에 대비해

권총이나 라이플을 소지했다.






유토피아적인 낙관과 유포칼립스적 불안이 동일한 화면 위에 병치되는 그의 작품은. 햇살 가득한 코스타리카의 해변, 서핑을 즐기는 이들의 일상적 풍경의 이면에 정치적 이데올로기,난민,전쟁,환경 파괴와 같은 글로벌 위기의 단서들이 교차한다.작가는 국지적이고 소극적인 시선에서부터 범지구적이고 포용적 관점까지 자유롭게 넘나들며, 예술가로서의 시각적 서사를 자유롭게 써내려간다.




시각적, 지적 방식으로 문화를 소비하고, 이미지를 통해 개인적인 비전을 전달하거나 확산하는 세계화의 관광객



Fallen Monument, Oil on panel, 61 x 50.8 x 4.5 cm, 2020 © the artist and Thaddaeus Ropac



그는 많은 리얼리즘 작가들과 달리,구도나 대상,색채, 스케치나 이미지와 같은 사전 계획 없이, 오로지 지적인 감각과거의 경험과 기억, 미디어에 떠도는 다양한 이미지와 텍스트들이 만들어내는 화학적 연쇄반응에 의지해, 구상성을 띈 고유한 내러티브를 구축해 나간다.그의 캔버스에 투사되는 장면들은 마치 하얀 대지위에서 영혼과 반응하며 즉흥적으로 펼쳐지는 오케스트라의 협주처럼 느껴지며,그 과정 속에서 단절감과 얉은 관계성이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으로 확장되며, 거대한 창조적 에너지를 불러일으킨다.





We,the Moon, Oil on canvas, 213.4 x 172.7 cm, 2019 © the artist and Victoria Miro


그는 숲 속,시티 스케이프,공감각적 정서를 배경으로,이데아적 세계관과 디스토피아적 현실이 충돌하고 연합하는 모호한 지점에서 새로운 이상화된 국가를 상상하며 구축해 나간다.작품 속 소수 커뮤니티는 내몰린 원주민들의 안식처이자 난민들의 평온한 대지처럼 보이기도 하며, 거대한 나무는 북유럽 신화의 정령의 나무 "위드그라실 (Yggdrasil)"을 연상시키며, 그 자리를 견고하고 아름답게 지키며 지역과 사람,그리고 염원을 보호하는 영적인 힘을 자아낸다.




*위그드라실(Yggdrasil)은 북유럽 신화에서

우주의 중심을 이루는 거대한 신성한 나무로,

세계수(World Tree) 라 불리며,아홉개의 세계와

생명을 잇는 연결점으로 여겨진다.





Orange Sun Moon Moment, 2020. © the artsit and Galerie Thaddaeus Ropac



그는 '영원한 관광객' 처럼 유럽과 미국의 여러 국가를 오가며 살아왔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어느 한곳에 깊이 뿌리내리기보다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내부를 관찰하는 관람객의 형태로 형성되었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바다와 물은, 바로 이러한 정체성을 가르는 국가나 사회의 경계,표류하는 상태를 은유하는 알레고리로 기능하기도 한다.






Les Arriviste, Oil on canvas, 86.4 x 76.2 Cm, 2023 © the artist and Pace Gallery





배에 탄 사람들이 도망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여유롭게 타고 있는 걸까요? 옥상 그림 속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쓰나미나 홍수로부터 피난처를 찾고 있는 걸까요?,경기장의 그림은 콘서트 인가요,아니면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와 같은 긴급 구호 센터인가요? 나는 그 모호성에 관심이 있어요.

Roots and Roofs, Oil on canvas, 152.4cm x 177.8 Cm, 2019. © the Artist



그는 직관에 기반한 작업 방식을 신뢰한다. 그렇기에 사회의 움직임이나 정치적 변화를 섬세하게 감지하고,이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작업 속에 스며들게 한다.하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전반적인 분위기나 이야기의 돌발성으로 차용될 뿐, 그를 정치 예술가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나이가 들면서 냉소주의가 많이 부드러워졌어요,정직하거나 진실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적절한 냉소를 더하는 것이 더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냉소적이거나 아이러니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죠.

사실 정직하고 진실하게 표현하는것이 더 어려워요.그러면 안섹시하고 사람들은 그런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나라는 착각>>에서 그레고리 번스가 언급한 바와 같이, '나'라는 감각은 뇌의 신경 활동과 경험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일종의 인지적 구성물이며,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뇌가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 가깝다는 정의처럼,쥘 드 발랑쿠르는 영원히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전 세계를 떠도는 자신의 유랑적 정체성을 바탕으로,직관에 의해 예술적 소속감을 만들어 간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그의 '이야기' -곧 정체성- 는 더욱 견고한 의미를 가진다.정체성, 민족성, 사회적 수용감각과 같은 아집에서 벗어나, 그는 마치 영혼의 유목민처럼 자신만의 세계를 구상화하며,결국 자신이라는 '나라' 를 구축해 나간다.


그의 작품은 출신지,나이,직업,배경을 넘어 '나'라는 진정한 소속감을 발견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하며,우리에게 조용한 질문을 던진다.


"외부적 요소를 모두 벗겨냈을 때, 당신의 진정한 소속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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