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쓸모
어떤 도시에 도착하면,
나는 건물보다 시장 근처를 먼저 간다.
그 도시의 실제 삶이 담긴
거리의 폭, 창문의 간격,
골목의 굽이, 표지판의 높이.
그 작은 것들이 모여
그 도시의 ‘성격’을 만든다.
파리의 거리는 늘 일정한 리듬으로 박자를 맞추고,
도쿄의 골목은 깔끔하고 정연한 균형을 잡는다.
베를린은 단단하고 정직하게 서 있고,
바르셀로나는 끝없이 춤추듯 굽이친다.
그 도시의 질서가
사람의 표정과 속도까지 바꾸는 것을
나는 여행할 때마다 느낀다.
낯선 곳에 있어도 두렵지 않은 이유는
건축을 통해 공간의 문법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길의 폭이 말해주는 중심의 방향,
광장이 주는 도시 여백의 의도,
건물의 그림자가 알려주는 시간의 리듬.
그 속에서 나는 도시를 하나의 ‘책’처럼 읽는다.
페이지마다 다른 시대의 흔적이 있고,
벽마다 그들의 철학이 새겨져 있다.
그래서 여행은 내게 단순한 쉼이 아니라,
하편의 흥미진진한 탐구생활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모이고, 나뉘고,
함께 살아가는지를 배우는 드라마틱한 수업.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매번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에도
이렇게 읽을 만한 질서가 있을까.
아니면 너무 많은 욕망이 겹쳐
이야기가 흐려진 걸까.
틈날 때마다 걷는 서울 거리에서
도시는 늘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속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울에 대한 나의 애착이
그 이야기의 고리를 찾지 못함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