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문화 활성화를 위한 정책이 필요한 이유
“정책(政策)은 결정 사항을 안내하고 합리적인 결과 를수행할수있게하는원칙이나규율을가리킨다.사 전적 의미로는 정치나 정무를 시행하는 방침이다. 이 용 어는실제로끝난것을가리키는데에는잘쓰이지않고, 절차나 의정서를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다. 정책이 “무엇” 과 “왜”를 포함하지만, 절차나 의정서는 “무엇”, “어떻게”, “어디서”, “언제”를 포함한다”-위키피디아
정책은 ‘합리적인 결과를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원칙’이다.이 원칙들이 하나로 모여 국가가 주체인 경우 국정, 시가 주체인 경우 시정이라는 철학적 태도를 위한 실천적 의제를 만들어 내는 기반이 된다. 이 의제들의 ‘실천과정’을 우리는 ‘공공정책’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정책은 과정을, 국정철학과 시정철학은 결과를 만든다는 점에서 둘은 매우 중요하고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정철학, 시정철학에 맞는 좋은 정책은 무엇일까? 좋은 정책은 세상을 바꾸는 중요한 기반을 마련 한다. 정책은 매우 공상적이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이익일지 몰라도 다른 한쪽에서는 손해가 되는 것이 정책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한’이라기보다 ‘누구를 위한’ 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개방된 시대의 좋은 정책은 두가지 관점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첫 번째 플랫폼, 두 번째 시스템이다. 정책 플랫폼은 개방된 시대에 누구나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접근성을 말하며, 정책 시스템은 접근가능한 누구나 원하면 실행할 수 있도록 마련된 사용성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가 상호 보완과 상관관계를 이루어야 좋은 정책으로써의 평가지표를 설정할 수 있게 되고, 이를통해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진화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책은 주체가 주려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필요한 것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화된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국민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있는가, 그 필요한 것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해결 할 수 있는가가 명확히 단계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필요한 부분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그것으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가 제시 되어야 한다. 결과만 받아들이는 시대가 아닌 과정의 공유와 선택이 중요한 시대에서 정책은 그 의미와 가치도 함께 포괄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시민정치를 위한 거버넌스의 가치인 것이다. 이제 정책은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원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집은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의 평생 숙원과제이다. 가장 큰 문제는 주택을 ‘공급’하는 왜곡된 ‘시스템’에 있다. ‘집=아파트=자산가치’라는 모순된 구조가 사회에 만연되어 살 집이 아닌 팔 집을 만들고, 집의 매매를 권장하는 잘못된 부동산 시장 논리가 결국 정당한 방식으로는 주택을 구입하거나 거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집은 물건이 아니라 문화이다. 그동안 우리는 집을 경제적 가치로 생각했는데, 사실 집은 삶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는 문화적 공간이다. 문화는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집은 왜 문제인가? 바로 소유에 있다. 소유하기 위해선 비용을 지불하고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집값이 너무 비싸다. 그래서 집을 살 수 없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집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결국 빌리게 된다. 그런데, 빌릴 집도 제대로 없다. 물량공급만으로는 집이 필요한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집은 문제로서 남겨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겐 수요공급법칙에 따라 집이 문화가 아닌 재화로 유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는 약 1천만 인구가 약 360만 가구를 이루고 살고 있고, 이중 약 60%가 전월세를 포함한 공적,사적 임대의 형식으로 살고 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구입한 사람을 포함하면 약 80%가 남의 집에 살고 있다. 서울시 주택보급율은 98%, 전국주택보급율은 102%, 그런데, 전국 80여 만호가 빈집이고 그중 50여 만가구가 서울 수도권에 있으며, 소득상위 10%가 전 국토의 9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OECD 34개국 중 임대주택비율은 최하위 수준의 대한민국, 특히 서울이라는 동네에 있는 집에 관한 아주 불편한 진실들이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의 이면에는 단 한가지 이유만 존재한다. 그동안의 주택정책이 복지가 아닌 경제를 앞에 두고 ‘살기 위한 집’이 아닌 ‘팔기 위한 집’을 만드는데 치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주택부실이 가져오는 사회적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 가계의 재정 건전성을 올려야 하는데, 모두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려고만 하니 그 부실이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임대해서 사는 주택을 다양화해서 사회적 인식을 보편화하는 것이 필요한데 아직 절대적으로 부족 한 물량과 정책적 방향성 때문에 심각한 경계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좋은 주거문화의 형성을 위해 가장 좋은 해법은 임대주택의 공급을 급격하게 늘리는 것이다. 공급주체가 문제인데, 공공은 자원의 부족과 형평성의 문제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민간이 주도하여 공급을 늘릴 수 있도록 정부가 다각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단, 혜택을 제공하되, 임대료의 산정과 인상에 대한 규제가 동반 되도록 해서, 공급자와 사용자가 동시에 이익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시행하는 준공공임대주택의 경우 8년의 임대기간과 5% 이내의 인상률 제한을 조건으로하고있다. 만약 시장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면 공급의 수를 일시적으로 늘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수요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고정된 규제는 공급주체의 실행을 오히려 위축시킬 수도 있다.
집은 가족의 삶을 담는 사회정책인 동시에 경제정책이며, 국민의 삶의 질과 관계되는 문화정책이며 복지정책이 담겨지는 가장 중요한 존재이다. 그래서 국가는 국민 누구나 생애주기에 따라 집을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국가적 지원체계가 안정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경제가 살아야 주거가 안정화되는 것이 아니라, 주거가 안정화 되어야 경제가 활성화 되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이상이라 불리우는 스웨덴은 우리와 비슷한 시기인 1960년대에 주택정책의 기초가 마련되었고, 대규모의 주택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급했으나 우리와 목표의 방향이 달랐다. 집을 사고 파는 존재가 아닌 집을 삶의 과정에 필요한 도구로서 잘 빌려서 사용할 수 있도록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지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지금 두 국가의 국민은 전혀 다른 극단의 삶 속에 살고 있다. 집에 관한 정책 목표의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이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집에 관한 가장 큰 문제는 불안이다. 월세 사는 사람도 불안하고,전세 사는 사람도 불안하고,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불안하다. 이 모든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은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데 있다. 선진화된 주거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집을 사든 빌리든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시스템으로서의 정책이 필요하고, 정책에 대한 사용성 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나 접근가능한 플랫폼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주거문제는 국가와 지자체의 정책이 분별성을 갖기 위해서 대상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하위 20%의 복지는 국가가 전담해야 하며, 상위 20%에 대한 관리는 국가가 주관해야 한다. 이번 논의에서는 가장 많은 사람들에 해당하는 중간 60%를 대상으
로 한다. 이는 중요한 경제주체로서 국가와 지자체가 협력하여 공동의 의제를 만들 경우 가장 많은 혜택과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상을 위해 주거와 관련된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 목표의 변화가 필요하다.
첫 번째, 공급자 방식의 주택건설 활성화에서 벗어나 사용자 중심의 주거 문화 안정화로 방향이 전환되어야 한다. 소비자가 중심이 되어 공급을 조정하는 것을 크라우드 클라우트라고 한다. 세계 인구의 1%에 해당하는 왼손 잡이를 위한 제품들은 온라인을 통해 특성화된 장기적인 소비를 조건으로 공급을 요청하고 품질을 조절할 수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대학생이 약 30만, 그 중 약 15만 이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다. 이들 중 자가주택이 가능한 약 2만명을 제외하고, 약 2만명이 기숙사에 있으며, 약 1만명이 정부나 지자체가 제공하는 주택에 살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10만은 월세를 내고 살거나 전세를 얻어 살아야 한다. 이들은 대학 4년뿐만 아니라, 졸업하고, 직장생활까지 최소 10년이라는 기간이 있다.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여성, 노인, 직장인 등의 1인가구를 포함하면 이들의 영향 규모는 부동산 시장의 중심이 되어 주거문화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선도할 수 있다. 이들에게 집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라 나누고 누리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
두 번째, 개발공급의 자본이 되어버린 국민주택기금을 국민주거기금 방식으로 전환하여 안정화를 위한 자금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50만원의 월세로 10년을 살면 6,000만 원, 20년 살면 1 억2000만 원이다. 6가구가 함께 한다면, 20년 동안 7억 2000만 원이다. 이는 m²당 120만원 기준으로 약 50m²의 6가구의 집을 지을 수 있고, 보증금을 포함하면 집을 소유할 수도 있다. 서울에서 월세를 내는 대학생 약10만 명이 50만원씩 저축을 할 경우, 10년이면 6조원이다. 이는 20m²의 주택 약30만 가구를 공급할 수 있는 금액이다. 크리스 앤더슨이 말하는 롱테일의 법칙은 최소의 전체가 최대의 하나보다 높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한 사람에 의한 1천만원이 아닌 1,000명의 1만원을 통해 그동안 불가능했던 새로운 자본을 만들 수 있다. 주택이 아닌 주거를 위한 투자와 개발은 장기적이지만 안정적인 이윤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이를 민간이 아닌 국가나 지자체가 주도한다면 가능성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세 번째, 대규모 일괄 공급 방식에서 벗어나 소규모 다종 생산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대부분의 주택정책을 아파트로만 진행 해 왔다. 1,000가구의 아파트 단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토지를 정비하는데 3년, 이후 아파트를 건축하는데 3년의 시간까지 평균 6년의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소규모 로 개발하면 100개의 사이트에서 각각 10가구씩만 지어져도 최소 6개월 최대 1년안에 1,000가구를 만들 수 있다. 서울시 주거용 토지의 약70%는 작은 필지로 구성되어 있다. 뉴타운 등의 도시정비사업이 해제된 지역의 이러한 대상들은 대안없이 변화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를 활용한 소규모의 동시적 순환재개발이 올바른 자본과 연계하면 3년안에 30만가구 이상을 공급할 수 있으며 이는 지역경제 활성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작은 집들이 모여 도시가 만들어 진다. 집이 안정화되면 도시의 안정화는 더욱 빠른 속도로 변화할 수 있다. 대규모가 아닌 소규모의 가능성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네 번째, 집의 크기에 대한 것이 아닌 삶의 주기에 따른 공급이 계획되어야 한다. 스웨덴의 경우에는 생애 주기별로 필요한 주택을 사용할 수 있다. 혼자 살때, 신혼일때, 자녀가 생길때, 집을 소유하고싶을때등. 다만, 집을 소유하면 세금이 많다. 빌려서 잘 살 수 있는데, 비싼 세금까지 내면서 사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임대방식에 대한 사회적인 혹은 제도적인 합의점이 있다. 임대인 단체가 임대료 인상의 상한 선을 정하면 임차인 단체들이 협의를 통해 조정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것이다. 합의가 있으니까 어느 정도 오를지 알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대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계획할 수 있으면 불안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으면 여유가 생긴다. 삶의 여유는 경제 활성화의 기초를 마련하게 된다. 이상 언급한 네 가지의 전환점들이 하나씩 실천되면 집과 관련된 잠재적 불안 요소들이 순차적으로 해결되어 민생안정의 기반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올해 국토교통부는 ‘주택종합계획’이 아닌 ‘2017 주거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대한민국 주택정책의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실제 사람들이 체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여전히 집은 가장 큰 문제이며 해결되지 않은 가장 큰 불안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집을 빌려서 사는 것(임대해서 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하게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올바른 주거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새로운 유형의 시장을 준비해야 한다. 문화는 어느날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이 필요한 숲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집=부동산’이라는 상품을 팔고 사기 위한 주택건축의 유형을 만들어 왔다면, 이제 ‘가족과 삶’이라 는 라이프 스타일을 담아낼 수 있는 다양한 주거의 방식과 방법을 제안해야 한다. 생애주기에 맞추어 선택적으로 집을 사용하는 방식이 보편화되기 위한 시간과 경험 이필요하다. 이제 집을 잘 사고 파는 공부가 아니라, 집을 잘 고르고, 잘 빌려야 하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주거에 대한 실질적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문화상품’으로서의 건축유형에 주목해야 한다. 상품은 시장속에서 경쟁하여, 더 아름답고, 더 유용하고, 더 저렴하고, 더 빠르게 소비자에게 다가간다. 경제정책의 일부였던 주택 매매 시장에서는 토지의 불균형을 고밀 수직방식의 아파트로 풀었고, 파생된 상품으로 나타난 다세대, 다가구는 부동산 집장사와 결탁하여 이 땅의 대부분을 단기간에 초토화시켰다. 지금까지 건축의 전문가들은 ‘아파트와 빌라’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보편화된 주거문화를 무시, 멸시, 경멸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다세대와 다가구’는 대안없는 비평과 논리없는 비판 덕분에 한국 근대건축사에서 주거문화의 공동묘지처럼 인식되어 버렸다. 하지만, 극대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된 건축’은 시대변화에 따라 ‘땅콩집’을 지나 ‘쉐어하우스’ 라는 수익 극대화의 대안들로 변형되어 진화하고 있다. 심지어 일시적이고 단편적이며, 싸고 빠르게, 자본으로 해결하는 소모품으로서 파생상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컨테이너 하우스, 무버블 하우스에서 3D프린팅 및 빅데이터 하우스까지. 앞으로도 더 많은 상품이 더 많은 방식으로 소개될 것이다. 조만간 가전제품과 자동차처럼 홈쇼핑을 통해 다양한 집을 살 수 있거나 사용할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
집을 잘 빌리기 위해서는 임대 정보에 대한 신뢰할 만한 아카이브가 필요하다. 온라인 포털의 부동산 사이트나 앱서비스의 중개방식이 아니라, 국가가 지원하고 보증해 주는 정책적 차원의 민간임대주택 정보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 기존의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주요한 거래 대상은 토지와 건물 매매이다. 정책의 방향 전환으로 주택이 더 이상 매매가 아닌 중개의 중심이 되기 때문에, 좋은 주택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주체가 필요 하다. 특히 준공공임대주택의 정보의 경우, 기간과 비용 제한에 따른 수익 혜택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정보의 공개적 공유가 절대적이다. 또한, 임대료의 변화에 대한 빅 데이터를 구성해서 사용자를 위한 보편적인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인터넷은행의 탄생과, 부동산 온라인계약, 그리고 렌탈시장의 급격한 증대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서비스로 일원화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삶이 안정화되면 모든 것이 안정화 된다. 많은 것의 정상화를 구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집값, 집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실패한 정부의 전례를 이어가지 않기 위해선 더욱 혁신적이고, 더욱 정밀한 주거 안정화 정책이 필요하다. 임시적, 일시적으로 가격을 낮추거나, 공급을 늘리는 정책은 총체적 부실을 만들 뿐이다. 국민이 빚을 지고, 정부가 부채를 만들어 공급되는 주택의 숫자를 광고할 것이 아니라, 집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이 가능하도록 저축을 유도해서 안정된 주거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한다. 국가는 정책을 통해 국민을 무조건 이끌어가려 하지 말고, 그들의 현명한 선택을 믿는 든든한 지원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다. 50조를 투입해 뉴딜(new deal)이라는 특명으로 도시재생사업을 한다고 한다. 뉴 딜이라는 정책은 세계공황을 벗어나기 위한 경제부흥의 특별처방이었다. 이제 집은 경제가 아닌 문화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도시의 오래된 길과 장소를 가꾸어 거리와 상가를 활성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재생의 본질은 사람이다. 사람이 머물 곳이 없으면, 흘러갈 곳, 지나 갈 곳, 잠시 들러 갈 곳도 모두 소용없는 일이다. 임시적으로 처방된 머물 곳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가족을 이루게 되는 지속가능한 과정을 담을 수 있도록 오랫동안 안심하고 머물 곳이 필요하다.
집은 삶을 담는다. 도시를 재생해야 하는 곳은 대부분 사람이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곳이다. 사람은 도시의 시간을 따라 함께 성장하기 때문에, 그리고 가족의 성장은 도시의 생명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집이 충분히 준비된’ 도시는 재생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신도시 유토피아, 신건축 패러다임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이제 변방이 아닌 자본의 중심에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자율주행 전기차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게 될 것이다. 이로인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주택상품이 시장에 나타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건축가는 주택상품시장이 아닌주거문화의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것인가? 건축가는 삶의 변화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건축은 이 시대의 삶을 담아내는 현재이며 동시에 미래이기 때문이다.
*<대량공급시대의 건축/대한건축학회/2017년 07월호> by june 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