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새로움을 찾는 일

공공미술 연구(R&D)의 필요성

by 이재준
42_3[4].jpg 윤슬 (c) 서울특별시



예술은 자신의 사라짐 이후에도 살아있는 모든 것의 패러다임이 된다
/쟝 보드리야르


모든 역사적 사건은 동시대의 중심에 대한 의미있는 전환점이 되어 새로움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가치는 사람과 함께 새로움 을 사회의 익숙함으로 성장시키고, 시간과 함께 다양한 층위로 축적되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고유한 ‘정체성’으로 진화한다. 이 처럼 지역성은 그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의 삶이 시간과 함께 만든 위대한 유산이며,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 가치 를 담고 있는 소중한 흔적들이다.


공공미술 R&D 프로젝트는 예술기획을 통해 우리 일상에 숨겨진, 감춰진, 버려진, 오래된 현재를 찾는 일이다. 현재는 과거가 만들어 낸 모든 순간의 합이다.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변화와 혼돈의 과정을 견뎌내고 끊임없이 진화해 온 순간들은 따뜻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근대화와 세계화가 만든 이미지의 과잉속에서 우리의 소중한 모습은 익숙하고 평범하기 때문에 촌스럽고 의미없는 것들로 치부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무의미하게 흩뿌려져 있다. 예술은 일상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 사람 들에게 아름다움이라는 대화의 고리를 만들어 준다. 지금 우리는 예술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바라보고, 그 이미지의 단편들을 모으고, 그 안에 담긴 우리의 소중한 가치들을 찾아내어 우리만의 의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R&D 는 Research & Developement가 아니라, Remind & Debate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우리의 무언가, 어딘가를 조사하고 정리 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 사고의 과정을 통해 일상적인 생각과 이미지들을 환기시키고, 예술이 가진 다차원적 상상력을 통해 의미있는 논의와 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보기좋은 꽃과 나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간 우리의 땅속에 감춰진 수많은 뿌리를 찾아내는 과정의 기록이다. 때론 부족하고 때론 어설프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이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질문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라면 일시적이고 단편적 인 평가보다는 더 많은 보물을 찾기 위한 시도와 실험을 담아가는 아카이브의 역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의미있는 보물찾기를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진정성을 갖고 있는 수많은 단편들을 모아 가치있는 지도를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움직임이 필요한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결과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작업이 앞으로 어떤 가 능성을 갖고 있는지를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몇가지 과정에 대한 질문과 답을 결과물 스스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첫번째, 대화의 시간이다. 한 지역을 잠시 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내재되어있는 본질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위 험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익숙한 주변으로 부터 출발하여 오랜시간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고 있는 지역과 대상을 바탕 으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는 과거를 보여주고 현재에 필요한 예술적 당위성을 만들어 주며 미래가치에 대한 가능성을 열 어 준다.


두번째, 관찰의 태도이다. 무엇을 보았는가 보다는 어떤 것을 보고 있는가를 담아내어야 한다. 예술활동을 위한 리서 치는 보편적인 자료의 모임(collection)을 통해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닌, 무의미한 것들로 부터 자신의 태도를 설명할 수 있는 의미있는 선택(selection)들의 합이 되어야 한다. 예술이 과학기술과 다른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기 정체성이기 때문이 다. 세번째, 발견의 순간이다. 시간이 축적된 지역의 무언가로 부터 어떤 것들을 보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무엇을 찾았는가를 보여주어야 하며, 그것을 통해 공공미술이 사람들에게 어떤 새로움을 만들고 전달할 수 있는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오래된 익숙함에서 발견한 무분별한 새로움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공공’은 한정된 대상이 아니다. 시간, 공간, 인간이라는 세가지 관계를 동시에 갖고 있는 무한의 다면체이다. ‘우리’라는 ‘공공’ 을 스스로 바라 본다는 것. 타자에 의한 다른 나로 부터가 아닌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들은 그 자체로 온전히 다른 그 무엇이며 그토록 애타게 찾고 갈구하던 우리의 본질일 것이다. 모더니즘에 기인한 세계화의 오류는 결국 로컬리티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돌아보게 하고 있다. 예술은 늘 우리가 보지 못한 무언가로부터 새로움과 놀라움이라는 감동과 유희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믿 는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가치있는 그 무언가를 위한 오래된 보물찾기가 반드시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오래된 새로움에 대한 분별한 보고서-공공미술R&D프로젝트-한국문화예술위원회> by june,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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