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이고 싶지만 친구일 수는 없는 사이
아빠는 아들이 되고, 아들은 다시 아빠가 된다. 아빠는 늘 아들의 무언가가 이해 안되고, 아들은 늘 그런 아빠를 이해 못한다. 아빠는 논리적이었지만, 엄마는 늘 감성적이었다. 그래서 아빠말에는 왠지 모를 반발감이 있었고, 엄마말은 자주 내 마음을 흔들어 놓곤 했다. 어느덧, 흐르는 시간속에 그 아들은 아빠(classic)가 되고, 아빠로서 다시 아들(neo)을 바라 보고 있다.
탈 경계(metaverse)와 초 현실의 시대(ar/vr/mr/xr)에 누가 아빠(category)고 누가 아들(tag)일까? 초 울트라 수퍼 하드 시스템으로 무장된 ‘그녀(siri/genie)’에게 물어보면 무어라 답할까? 아마도 '아빠(big brother)가 아니라 엄마(big sister)이고, 아들(gene)이 아니라 딸(meme)이라고 바꾸어야 할 것 같아요'라고 할 것이다. 대부분의 디지털 보이스가 ‘여성형’인 이유는 아빠말보다 엄마말을 더 잘 듣기 때문일 거라는 엄청난 빅데이터가 있을 것이다.
암튼, 모든 것이 타임라인에 기록되고, 10년 된 일을 1분의 타임랩스로 볼 수 있고, 수십명이 만들어야 할 걸 3D 프린터 한대가 대체하고 있다. 다촛점 렌즈가 만든 한 순간의 다양한 팩터(factor)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완벽하고 유일한 팩트(fact)는 점점 희미해진다. 가늠할 수 없는 ‘언니’의 열길 물속을 따라 블랙홀이 아닌 오리무중으로 빠진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없다. 우리들 잘못이 아니라 '세상'이란 놈이 그런 척 하는 것일 뿐이다(진짜 비밀인데, 사실 그 놈은 양자역학자이다).
안 보이는 놈들 상대하는 것 보다 옆에 있는 사람과 한마디 나누는 것이 훨씬 좋다는 걸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잘 모를 것 같다. 불안의 일상화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을 수 밖에 없는 것 때문이 아닐까. 보이지 않는 것들 때문에 보이는 것들에 불안을 느끼게 되는 요즘, 한번쯤 가까이 보이는 것들을 기록해 보면 어떨까? 내 눈 바로 앞에 있는 것들 말이다. 아주 사소한 것들, 아주 쓸데 없는 것들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