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이 왜 이렇게 자주 바뀔까?

로맨틱 모던의 시대-4

by 이재준

마루가 만든 놀라운 가변성


한국인들이 보여준 놀라운 적응력

2020년 3월, 정부의 재택근무 권고와 함께 한국 직장인들의 일상이 급격히 바뀌었다. 갑작스럽게 집이 사무실이 되어야 했고, 거실이 회의실이 되어야 했으며, 식탁이 책상이 되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했지만, 놀라운 것은 한국인들의 적응 속도였다. 통계청이 2020년 7월 발표한 '코로나19로 인한 생활 변화 조사'에 따르면, 재택근무를 경험한 한국인의 78%가 "집 안에서 업무 공간을 마련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라고 응답했다. 이는 같은 조사를 실시한 독일(45%), 일본(52%), 미국(61%) 보다 현저히 높은 수치였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한국인들의 공간 활용 패턴이었다. 서구에서는 재택근무를 위해 별도의 방이나 고정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한국에서는 같은 공간이 시간대별로 다른 용도로 활용되는 모습이 일반화되었다. 아침에는 식탁, 오전에는 업무용 책상, 점심시간에는 다시 식사 공간, 저녁에는 가족과의 대화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변신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우리가 오랫동안 발전시켜 온 '유연한 경계' 문화에 있다. 창호지와 미닫이문으로 구분된 공간에서 완전히 열지도, 완전히 닫지도 않는 경계의 지혜를 배운 우리에게, 집과 사무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나의 방이 여러 개 방이 되는 마법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만능

공간의 지혜 전통가옥에서 마루는 독특한 공간이었다. 서구의 주택에서 각 방의 기능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과 달리, 마루는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만능 공간'이었다. 아침에는 식당, 낮에는 거실, 저녁에는 침실이 될 수 있었다. 계절에 따라서도 달라졌다. 여름에는 바람이 잘 통하는 휴식 공간이 되었고, 겨울에는 따뜻한 온돌방과 연결된 생활공간이 되었다. 건축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조선시대 일반적인 전통가옥에서 마루의 활용도는 하루 평균 6-8회 정도 용도가 바뀌었다고 한다. 이는 현재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높은 공간 효율성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마루와 방 사이의 경계였다. 서구의 문이 '열림'과 '닫힘'의 이분법이라면, 전통가옥의 문은 '열림의 정도'를 조절하는 장치였다. 완전히 열어서 마루와 방을 하나로 만들 수도 있고, 반만 열어서 은은한 연결을 유지할 수도 있었다.


'완전히 열지도 닫지도 않는' 중간 지대의 가치

창호지로 만든 미닫이 문과 창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창호지는 빛은 통하게 하면서도 시선은 차단했다.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이 있다는 기척은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완전한 단절도, 완전한 노출도 아닌 절묘한 중간 지대를 만들어냈다. 이런 '반투명성'의 문화는 가족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부모는 아이들의 존재를 느끼면서도 간섭하지 않았고, 아이들은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가족의 일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혼자 있으면서도 외롭지 않고, 함께 있으면서도 답답하지 않은 그런 거리감의 원형이 여기서 만들어졌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연구에서는 이런 경계의 유연성을 '한국적 프라이버시 개념'으로 정의했다. 서구의 프라이버시가 '완전한 차단'을 통한 개인 공간 확보라면, 한국의 프라이버시는 '적절한 거리'를 통한 상호 존중이라는 것이다.


안과 밖을 연결하는 완충 공간의 역할

마루는 단순히 실내 공간이 아니라 안과 밖을 연결하는 '완충 공간'이기도 했다. 마당과 방 사이에 위치한 마루는 외부에서 오는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가족들이 바깥공기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었다. 이런 완충 공간의 개념은 현재 한국의 주거 문화에서도 계속 발견된다. 아파트의 베란다나 발코니가 단순한 부속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는 것이 그 예다. 빨래를 말리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식물을 기르는 정원이 되기도 하고, 작은 서재나 운동 공간이 되기도 한다. 국토교통부의 2023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아파트 거주자의 86%가 베란다를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베란다를 주로 '저장 공간'으로만 사용하는 독일(34%), 일본(41%)과는 확연히 다른 패턴이다.


현대인은 어떻게 공간을 마법처럼 활용할까?


카페가 동네 마당이 된 시대

멀티태스킹 공간의 진화 현재 서울에는 약 18,000개가 넘는 카페가 있다. 하지만 한국의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다. 하나의 공간에서 모든 활동이 자연스럽게 혼재하는 복합적 공간으로 진화했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 카페 이용자의 평균 체류시간은 사회적 목적으로 방문했을 때 102분, 개인적 목적으로 방문했을 때 117분으로 나타났다. 이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떠나는 서구의 카페 문화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한국인들의 '공간적 멀티태스킹' 능력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동시에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고,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SNS를 확인하고, 독서를 하는 식이다. 이런 다양한 활동들이 같은 테이블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는 마루에서 터득한 '가변적 공간 활용'의 현대적 진화다. 마루가 필요에 따라 식당, 거실, 침실로 변신했듯이, 현대의 카페는 사무실, 도서관, 사교 공간, 휴식 공간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거실이 매일 다른 방으로 변신하는 현대 주거

한국의 거실 문화도 주목할 만하다. 서구에서 거실(living room)이 주로 휴식과 사교를 위한 고정된 공간인 반면, 한국의 거실은 시간대별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가변적 공간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 가정의 거실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5-7가지 다른 용도로 활용된다고 한다. 아침에는 가족의 식사 공간, 낮에는 아이들의 놀이 공간, 저녁에는 TV를 보는 휴식 공간, 밤에는 손님을 맞는 응접 공간이 되는 식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이런 특징이 더욱 두드러졌다. 같은 테이블이 아침에는 식탁, 낮에는 업무용 책상, 저녁에는 다시 식탁이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서구에서는 각 기능마다 별도의 공간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는 하나의 공간을 시간에 따라 다르게 쓰는 것이 편하다.


변신 가구와 다기능 공간의 새로운 트렌드

가구업계의 2023년 판매 데이터를 보면, 1인 가구 증가와 함께 '변신 가구'나 '다기능 가구'의 판매가 크게 증가했다. 소파가 침대로 변하는 가구, 식탁이 책상으로 변하는 가구, 접었다 펼 수 있는 가구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원룸 인테리어' 문화에서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난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하나의 공간이 침실, 거실, 서재, 식당의 역할을 동시에 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공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유연한 공간 활용에 익숙한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 때문이다. 인테리어 업계의 2023년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로우 테이블'(낮은 테이블) 판매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바닥에 앉아서 생활하는 문화와 함께, 하나의 테이블을 여러 용도로 활용하려는 니즈가 결합된 결과다. 아침에는 식탁으로, 낮에는 업무용 책상으로, 저녁에는 차 테이블로 사용할 수 있는 만능 가구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 카페에서 하루 종일 있는 이유


서구의 고정 기능 공간 vs 한국의 가변 공간

해외에서 온 방문객들이 자주 언급하는 한국의 특징 중 하나가 '카페 문화'다. 서구의 카페들이 주로 커피를 마시고 떠나는 공간인 반면, 한국의 카페는 하루 종일 머물러도 눈치를 주지 않는 공간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카페에서는 용도가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된다.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곳, 레스토랑은 식사하는 곳, 도서관은 공부하는 곳, 바는 술을 마시는 곳으로 각각의 기능이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의 카페는 하나의 공간에서 모든 활동이 자연스럽게 혼재한다. '글로벌 카페 문화 비교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카페에서는 평균 3-4가지 활동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반면, 서구의 카페에서는 주로 1-2가지 활동만 이루어진다고 한다.


문을 여닫는 문화 vs 밀고 당기는 문화

공간 사용법의 근본적 차이 한국과 서구의 공간 사용법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서구 문화에서는 '문을 여닫는' 방식으로 공간을 구분한다. 문을 닫으면 완전히 분리된 개별 공간이 되고, 문을 열면 연결된 공간이 된다. 이분법적이고 명확한 구분이다. 반면 한국 문화에서는 '밀고 당기는' 방식으로 공간을 조절한다. 창호문을 반만 열어놓거나, 커튼으로 시선만 차단하거나, 가구 배치로 공간감을 만드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공간의 연결 정도를 조절한다. 건축학자들은 이를 '그라데이션 공간'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한국의 공간은 A에서 B로 갑작스럽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A에서 A+B로, 다시 B로 점진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들

이런 공간 문화의 차이는 프라이버시 개념의 차이로도 이어진다. 서구에서 프라이버시는 '완전한 분리'를 통해 확보되는 것이다. 개인 공간과 공공 공간이 명확히 구분되고, 개인 공간에서는 완전한 자유를, 공공 공간에서는 일정한 규칙을 지키는 것이다. 한국에서 프라이버시는 '적절한 거리'를 통해 확보되는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함께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간섭하지 않고, 연결되어 있지만 독립성을 유지하는 그런 미묘한 균형이다. 연구문헌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혼자 있으면서도 함께 있는' 공간을 선호하는 반면, 서구인들은 '완전히 혼자이거나 완전히 함께 있는' 공간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는 카페 문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의 카페에서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자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불편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함께 있음'이 주는 안정감을 즐긴다. 반면 서구의 카페에서는 개인 작업을 할 때 최대한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


일본의 다다미 문화와 한국 마루 문화는 뭐가 다를까?

가장 자주 비교되는 것이 일본의 다다미 문화다. 얼핏 보면 한국의 마루 문화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일본의 다다미는 정확히 규격화된 짚으로 만든 매트로, 방의 크기도 '몇 다다미'로 표현된다. 6다다미, 8다다미 등으로 방 크기가 정해지고, 다다미를 깔고 벗기는 것도 일정한 규칙이 있다. 이는 일본 문화의 특징인 '정해진 형식과 예법'을 보여준다. 더 중요한 차이는 공간 활용의 유연성이다. 일본의 다다미 방은 용도 변경이 가능하지만, 그 변경에는 엄격한 규칙과 절차가 따른다. 식사 시간, 차 시간, 수면 시간 등이 정해져 있고, 각 시간에 맞는 정확한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반면 한국의 마루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필요에 따라 즉석에서 용도를 바꿀 수 있고, 여러 활동이 동시에 이루어져도 문제없다. 일본의 다다미 문화가 '정해진 질서 안에서의 변화'를 추구한다면, 한국의 마루 문화는 '자유로운 흐름 안에서의 변화'를 지향한다. 동경대 연구에 따르면, 일본의 전통 주거에서는 공간 변경에 평균 15-20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한 반면, 한국의 전통 주거에서는 평균 3-5분이면 충분했다고 한다.


공간의 유연성이 만든 현재의 우리 모습


방과 방 사이에서 터득한 유연성의 DNA는 현재 한국인들의 일상 곳곳에서 발견된다. 재택근무에 빠르게 적응하는 능력, 카페에서 여러 활동을 동시에 하는 멀티태스킹 능력,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지혜 등이 모두 여기서 나온 것이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이런 유연성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에, 물리적 공간과 가상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능력은 한국인들의 독특한 강점이 되었다. 화상회의를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배경을 보여주고, 온라인 수업을 들으면서도 가족과의 시간을 병행하며, 집에서 일하면서도 사적 공간과 업무 공간의 경계를 유연하게 조절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창호지 문화에서 배운 '경계 없는 경계'의 지혜가 현대적으로 진화한 결과다. 이런 공간 활용의 유연성이 현재 1인 가구 증가 시대에 어떤 새로운 관계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는 다음장에서 살펴보겠다. 이제 우리는 바닥에서 체득한 또 다른 지혜, 평등성에 대해 살펴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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