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학사전-손님
"손님은 집의 거울이다. 우리가 어떤 집을 가졌는가 보다, 누구를 초대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손님이 많았다. 주말이면 으레 누군가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손님 오는 날의 엄마는 새벽부터 분주했다.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장을 보러 나가고, 하루 종일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했다. 상을 차리고, 후식을 대접하고, 손님이 떠난 후에는 설거지와 뒷정리. 엄마의 고된 하루를 보면서 나는 늘 속상했었다.
왜 이렇게 힘들게 손님을 맞아야 하는 걸까? 어릴 적 손님에 대한 이 복잡한 감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우리 문화에서 손님 대접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손님은 왕'이라는 말처럼, 손님을 극진히 모시는 것이 미덕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안주인의 희생이 있었다. 특히 어머니 세대 여성들에게 손님은 곧 노동이었다. 준비하고, 대접하고, 치우는 모든 과정이 그녀의 몫이었다.
그래서 나는 독립해서도 손님을 집에 초대하는 것을 꺼렸다. 결혼 후에도 가능하면 손님을 부르지 않으려 했다. 아내는 가끔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늘 핑계를 댔다. 집이 좁다, 준비할 시간이 없다, 바쁘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었다.
아이가 크면서 친구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집이 어질러지고, 시끄러워지고, 정리할 것이 늘어난다. 하지만 아이의 웃음소리,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집은 살아있는 공간이고, 아이들의 웃음으로 채워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손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작은 손님들 때문에 집의 기억이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집이라는 것이 우리 가족만의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관계가 오가는 열린 공간이 되었다. 손님과의 대화, 함께한 식사, 나눈 이야기들이 집의 기억으로 쌓인다. "그때 여기서 이런 이야기했었지"라는 추억이 만들어진다.
대학시절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손님 많이 오면 힘들지 않았어?" 엄마는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힘들었지. 하지만 내가 구 남매 중에 막내잖아. 그땐 그게 그리움이었어. 여럿이 함께하는 것, 나누는 것이 좋았거든." 나는 그제야 조금 이해했다. 어머니에게 손님은 단순히 노동의 대상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애정이었다는 것을.
손님에 대한 내 거부감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고생을 목격한 상처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문 상처가 흔적을 남겨 여전히 손님맞이는 어렵고 서툴고 어색하다. 다만 집은 완벽한 무대가 아니라 솔직한 삶의 공간이고, 손님은 그 삶을 함께 나누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 만족한다. 닫힘은 열림 이후에 비로소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넘 오랜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