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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Feb 09. 2024

coffee break…설날 전야, 섣달 그믐

; 잊혀진 까치설날의 묵은세배

忘年過歲 망년과세는 섣달그믐날 사당에 참례하고 집안 어른들에게 절을 하는 잊혀진 묵은세배 풍속입니다.

설 전날을 까치설이라 하며 동요를 부르곤 합니다.

하지만,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로 시작하는 '설날'이란 노래에 나오는 '까치설'은 어원이 분명치 않은 말입니다.

국어학자 서정범 교수는 이를 '아치설'에서 왔을 것으로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아치'는 '작다(小)'란 뜻을 가진 옛말인데, 설 전날을 작은설이란 의미에서 아치설이라 부르다 음이 바뀌어 까치설이 됐다는 것이죠.


이와 함께 이야기되는 설화가 있죠.

삼국유사에 나와있는 신라 소지왕 설화입니다.

왕비가 한 승려와 내통해 왕을 시해하려 했지만, 왕은 까치·돼지·용·쥐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고 이에 왕은 보은하기 위해 이들의 기념일을 정해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쥐·돼지·용은 12지 동물이어서 따로 기념일이 필요 없어서 결국 까치의 날만 정했는데, 그날이 설 바로 앞날이라는 이야기.

하지만 이 조차 국립국어원은 까치가 아니라 까마귀이고 전래되는 사이 와전된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섣달그믐이라는 말도 양력12월 31일이 될 수 없는것이 그믐은 朔日삭일(달이 황도黃道를 지나는 순간으로 당의 모습이 보름과 반대인 가장 작은 날) 전날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설이 양력2월10일이니 섣달그믐은 바로 오늘, 양력2월9일이되는셈이죠.


설날은 새해를 시작하는 날로 새로움이나 새 출발의 의미가 강하지만 섣달그믐날 밤을 지새우고 맞으니 오히려 시간의 연속성이 강조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선조들은 밝은 불과 요란한 소리로 잡귀를 쫓는 도교 풍습에서 시작된 그믐날 집 안팎을 대청소하고 집안 구석구석 불을 밝히는 한편 한밤중에 대나무에 불을 지펴 요란한 소리를 냈습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대포를 쏘고 무서운 방상시탈을 쓰는 儺禮나례(악귀를 쫓기 위해 베푸는 의식)를 행했다고 합니다.

남은 음식과 바느질감도 해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이런 일련의 풍습은 새해를 경건하기 맞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새 출발을 위해 다 비우자는 뜻일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앞에서 이야기 한 묵은세배입니다.

그믐날 저녁부터 시작하는 묵은세배는 설날 세배와 달리 먼 친척부터 가까운 어른 순으로 진행합니다.

묵은세배를 설날 세배를 미리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묵은세배는 어디까지나 한 해를 보내는 인사로 설날 세배와는 엄연히 다릅니다.

설날 세배 때는 어른이 아랫사람에게 덕담을 하고 세뱃돈을 주지만 묵은세배 때는 아랫사람이 어른들께 돈이나 선물을 드립니다.

그믐에는 스승이나 처가에도 선물하는 풍습이 있는데 특별히 토산품을 보내기도 합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조정에 나가는 신하로서 2품 이상과 시종(侍從)들은 대궐에 들어가 묵은해 문안을 드린다. 양반들의 집에서는 사당에 배알한다. 연소자들은 친척 어른들을 두루 방문한다. 이러한 것들을 배구세(拜舊歲:묵은세배)라고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만공의 세시풍요, 제석조 除夕條에도 “섣달그믐날 만나고 맞이하며 또한 절하고 물러가니, 바쁘기가 홀연히 멀리 떠날 때와 같다”고 기록한 것을 보아 예전에는 섣달그믐날이 되면 이웃이나 친척을 찾아 문안 인사하던 풍속이 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까치-설 | 명사, 어린아이의 말로, 설날의 전날 곧 섣달 그믐날을 이르는 말. =까치설날

묵은-세배歲拜 | 명사, 섣달 그믐날 저녁에 그해를 보내는 인사로 웃어른에게 하는 절. 구세배.


아주 어렸을 때 섣달그믐, 내일이면 설날이라 들떠있는데 편찮으셨던 아버지는 동네의 어떤 집에 세배를 다녀오라셨다.

뜬금없이 세배라니.

툴툴대며 나가려는데 봉투를 주시며 세뱃돈으로 전하라니 어린 마음에 좀 황당했다.

그게 내 유일한 섣달그믐날 세배였다. 그걸 묵은세배라고 하는 걸 나중에 알았다.

……중략……


묵은세배 때 아버지가 봉투를 주머니에 넣고 동네를 다녔던 까닭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 내가 당신의 나이와 겹칠 때쯤이었다.

묵은세배는 지난 한 해 덕분에 잘 지냈노라 인사하고 행복한 새해를 맞으시라 인사하고 덕담을 드리는 것이지만,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외려 명절이 자칫 서러울 이들의 살림 살피고 슬쩍 촌지를 건네는 기회이기도 했다.

요즘으로 치면 그게 불우이웃돕기인 셈이었다.

그런 배려는 집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멀리서 찾아온 자식들이 섣달그믐에 고향집에 도착하여 부모님께 묵은세배와 함께 형편에 맞게 마련한 돈을 드리면 그게 다음날 손자손녀들 세뱃돈이 되었다.


묵은세배는 지나온 한 해를 아쉬워하기보다 함께 살아온 한 해에 대해 감사하며 나누는 인사라는 점에서 정겹다.

하지만 진짜 살펴야 할 그 풍속의 의미와 가치는 주변의 어려운 이들의 살림살이에 눈길 나누고 마음 덜어주는 사랑이다.

묵은세배를 잊고 살면서 그런 눈길과 마음까지 작별하고 살아온 것 같아 아쉽고 부끄럽다.

- 김경집 인문학자 글 중

묵은세배는 지나온 한 해를 아쉬워하기보다 함께 살아온 한 해에 대해 감사하며 나누는 인사라는 점에서 정겹습니다. 

하지만 진짜 살펴야 할 그 풍속의 의미와 가치는 주변의 어려운 이들의 살림살이에 눈길을 나누고 마음을 덜어주는 사랑입니다. 

묵은세배를 잊고 살면서 그런 눈길과 마음까지 작별하고 살아온 것 같아 아쉽습니다. 

묵은세배가 지녔던 조용한 배려의 마음이 그립기도 합니다.


과세 안녕하십시오(묵은해를 잘 보내십시오)라고 인사를 나누는 섣달그믐의 풍습…

후회는 과거 때문이고 불안은 미래 때문이겠죠.

그렇게 과거에 휘둘리고 미래에 저당 잡힌 채로는 단 한 순간도 현재로 살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을 정리하며 인사를 나누던 구세배의 모습을 돌이키는 시간이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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