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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Feb 11. 2016

육지것의 제주인문이야기 III 제주의 비경 곤을동마을

여덟. 60년 전에 사라져 버린 비경, 곤을동마을

坤乙洞 곤을동

제주시내에서 불과 10분 거리의 지척에 아름다운 비경을 품고 있는 명소를 소개한다.

제주시의 오현고등학교 정문에서 동쪽을 끼고 바다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바다 쪽으로 가다보면 비석 13기가 세워져 있는 비석거리를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왼쪽 길로 살짝 들어서면 65년 전, 하루아침에 불에타 사라져 버려 흔적만 남아있는 곤을동 마을을 만날 수가 있다.

이 곤을동 마을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500미터를 오솔길로 걸어 들어가면 제주시내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절경의 절벽지대가 턱 하니 눈앞에 나타난다.

주로 제주도의 남쪽 지역인 서귀포에서 지역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절리형태의 기암괴석이 하늘로 치솟아 있는 광경을 가까이서 보게 되는 곳이다.

바다에서 하늘로 솟아있는 별도봉의 기암괴석도 장관이지만 무엇보다도 곤을동 마을까지 이어지는 500여m의 해안산책로가 너무나도 고운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산책길을 걷다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비켜서야 할 정도로 좁다란 오솔길, 바다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은근히 시원하게 느껴지는 요즘, 잠시 시간을 내어 걸어보면 더없이 좋은 제주 최고의 숨겨진 비경인 곤을동 해안이다.

22가구가 오손도손 살고 있었던 안곤을 마을의 형태는 지금도 이렇게 남아있다.

집과 밭의 경계를 이루던 제주도식 돌담과 올레, 변소 자리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을이 불에 타 사라진지 67년.

坤乙洞곤을동마을은 고려 충열왕 26년(서기 1300년)에 별도현에 속한 기록이 있듯이 마을이 형성된 지 7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농사를 주로 했지만 바다를 끼고 있어 어업도 겸하면서 평화롭고 소박하게 살고 있던 마을이었다.

지금도 아물지 않고 있는 상처인 제주 4.3사건이 한참 진행되던 1949년 1월4일 불시에 들이닥친 토벌대에 의해 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하고 가옥이 전소 되는 등 마을 전체 70여 가구가 초토화 되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마을이다.


4.3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안곤을 22가구,

가운데 있던 가운뎃곤을에는 17가구,

밧곤을에 28가구 등 70여 가구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국방경비대 제2연대 1개 소대가 곤을동을 포위한 것은 1949년 1월4일 오후 3~4시께 이어서 이들은 주민들을 전부 모이도록 한 다음, 젊은 사람 10여명을 바닷가로 끌고 가 학살하고 먼저 39가구를 불태워 없애 버린다.

다음날인 1월5일에도 군인들은 인근 화북초등학교에 가뒀던 주민 일부를 화북동 동쪽 바닷가로 끌고 가 학살하고 나머지 28가구마저도 모두 불태워 초토화되기에 이른다.

그 후, 이 마을에는 인적이 끊기게 된거다.


제주시 인근 해안마을이면서도 폐동돼 잃어버린 마을의 상징이 된 곤을동에는 지금도 집터, 올레(집과 마을길을 연결해주는 작은 길) 등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4.3의 아픔을 대변해주고 있다.


항상 물이 고여 있는 땅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붙여진 이곳 제주시 화북동 곤을마을은 화북천 지류를 중심으로 밧곤을, 가운데곤을, 안곤을로 나뉘어진다.

곤을마을은 고려 충렬왕 26년(서기 1300년)에 별도현에 속한 기록이 있듯이 설촌된 지 7백년이 넘는 매우 유서 깊은 마을이다.

주민들은 농사를 주로 했으며, 바다를 끼고 있어 어업도 겸하면서 43호가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나 4·3사건의 와중인 1949년 1월 4일 아침 9시경 군 작전으로 선량한 양민들이 희생되고 온 마을이 전소되는 불행을 겪었다.

이 어찌 슬프고 억울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 당시 모든 가구가 전소되었고 24명이 희생되었다.

초가집 굴묵 연기와 멜 후리는 소리는 간데없고 억울한 망자의 원혼만 구천을 떠도는구나!

별도봉을 휘감아 도는 바닷바람 소리가 죽은 자에게는 안식을, 산 자에게는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4·3사건으로 하여 이 고장을 지키다 가신 님들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빌면서 다시는 이 땅에 4·3사건과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이 표석을 세운다.

2003년 4월 3일


-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실무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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