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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Oct 10. 2016

건축가의 주유천하 IV 서울 4대문 소문

스물넷. 한양의 문_4대문과 4소문

한양에는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북대문의 4대문이 있다.


4대문

1396년 건립된 동대문의 원래 이름은 흥인지문興仁之門이고.

興仁之門
興仁之門

공자 가라사대 사람이 지켜야 할 5가지 덕목이 인의예지신 仁義禮智信.

자고로 인간은 어질고, 의롭고, 예의 바르고, 지혜롭고, 믿음직해야 한다는 뜻.

그래서 동대문에 인자를 넣은 거다.

현재의 동대문은 1869년 중건한 거다.  


1396년 건립된 서대문에는 의義자를 넣어 돈의문이 되고.

돈의문敦義門은 도탑고 의로운 문이라는 의미지만 1915년 왜놈들이 도로 넓힌다고 헐어 버렸다.

신문로에서 독립문 넘어가는 고개에.

이 동네 이름이 신문로인 이유는 1422년 돈의문을 남쪽으로 조금 옮겨 지으면서 새로 지은 문이라고 돈의문을 신문新門이라고도 불렀기 때문이다.

원래의 자리에 복원 하려면 그 동네 도로가 마비 돼 버리므로 보류중인 상태.  

敦義門터
敦義門터 표지석

1398년 건립된 남대문에는 예禮자를 넣어 崇禮門숭례문이 되고.

국보 1호 (번호는 지정된 순서에 불과하다. 참고로 우리나라에 국보는 303개. 국보 2호는 종로 탑골공원의 1467년 건립된 원각사지십층석탑. 3호는 자꾸 훼손돼서 지금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전시중인 568년 건립된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 국보 4호는. 서기 10세기경 건립된 고달사지부도.)  

2008년 2월 10일에 발생한 화재로 2층 문루가 소실되고 1층 문루 일부가 불에 타서 홍예문과 석축은 남았다.

화재 이후 수습 작업 및 복구를 위한 각종 연구를 진행한 후 2010년 2월 착공식을 거행하고 복구 작업을 시작하였다.

약 3년의 복구 공사를 거친 뒤 2013년 5월 4일 복구 기념식을 거행하고 시민에게 공개되었다.

崇禮門
崇禮門

1395년에 肅淸門숙청문이 건립되었으나 1413년에 풍수학생 崔揚善최양선이 왕에게 백악산 동쪽 고개와 서쪽 고개는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여기에 문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두 문을 막을 것을 청하였다.

이를 계기로 축조한 지 18년 만인 1413년(태종 13)에 문을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였다가, 1504년(연산군 10)에 동쪽으로 약간 자리를 옮겨 지었는데, 그때에는 석문만 세우고 문루는 건축하지 않은 것을, 1976년 북악산 일대의 성곽을 복원하연서 문루를 짓고 肅靖門숙정문이란 편액을 걸었다.

(지智자와 정靖자는 같은 뜻^^)

1968년 이 문 근처로 북한의 공비들이 쳐들어 온 적이 있어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었으나, 2006년부터 제한적으로 인터넷 신청자에 한해 개방하고 있다.  

인의예지신에서 신信은 한양을 깨우는 종루에 신信을 넣어 보신각이라고 명명됐다.  


4소문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나와 혜화역 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길 건너에 弘化門홍화문이 보인다.

동대문과 북대문 사이에 1396년 건립된 4소문의 하나.

1483년 워낙 좋은 이름이라 창경궁 정문이 홍화문으로 정해진다.

헷갈리게 되니 1511년 혜화문惠化門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惠化門
惠化門

이 문 때문에 이 동네 이름이 혜화동이 되는 거다.

지혜롭게 화합하는 동네라는 뜻.

1928년 이 동네에 전차가 생기면서 혜화문 완전 철거.

지금 서 있는 혜화문은 1994년 새로 지은거고.  


두 번째 4소문은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에 1396년 건립된 광희문光熙門.

시구문이라고도 불리고 수구문이라고도 불리는데, 시구문屍軀門은 도성 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이 문으로 시신을 내보내 신당동 화장터나 금호동 공동묘지에서 처리해서 시신이 나가는 문이라는 뜻이고 수구문水口門은 청계천 물이 이 문 근처로 많이 흘러 나가서 물이 나가는 문이라는 뜻.  

세 번째 4소문은 남대문과 서대문 사이에 1396년 건립된 소의문昭義門.

속칭 西小門서소문이라고 한다.

지금 서소문동 큰길에 위치하였던 서남간문으로 일반적인 통행로가 되었고, 광희문과 함께 屍身시신을 성밖으로 운반하던 통로 구실을 하였다.

이 문의 창건 당시인 1396년(태조 5) 9월에 다른 성문과 함께 지어졌을 때는 昭德門소덕문이라 하였다.

이 부근은 지대가 낮아서 태조 때 토성을 쌓았던 곳이며, 1422년(세종 4)에 이것을 석성(石城)으로 개축한 것으로 미루어 소덕문으로 고쳐서 지었으리라 믿어지나 확실한 기록이 없다.

사형수들을 이 문으로 데리고 나가 서소문공원에서 사형 집행하던 문이다.

서소문공원이 사형터였다는건 아는 사실이고.

1914년 도로 확장하면서 소의문 완전 철거.  

昭義門터
昭義門

마지막 4소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에 1396년 건립된 창의문彰義門.

밝고 의로운 문.

4소문 중 온전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문.

자하문이라고도 불린다.

자하紫霞는 붉은 안개.

석가모니 몸에서 뿜어 나오는 자색紫色 광명이 안개처럼 서려 있다는 뜻이다.

자하문은 자하문터널 위 북악스카이웨이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한양의 문_4대문과 4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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