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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itect shlee Sep 03. 2017

건축가의 주유천하 V 전라 화순 해망서원

척박한 호남에 둘러 쌓인 순한 땅 화순 04 海望書院해망서원

1508년 돈재 鄭汝諧정여해(l450~l520)가 김종직·김굉필·정여창·김일손 등이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참형당하자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화순 해망산록에 해망단을 만들어 향사한 것이 시초이다.

정여해가 1520년 죽은 뒤 황폐해지자 1871년 향내 유림들이 그 유풍을 계승하고자 정여해를 합하여 5위를 해망단 제향.

1934년에는 동복 만경대 건물을 매입해 사우(祠宇)를 건립하고 그 이름을 해망사라 칭하게된다..

1979년 유림과 후손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확장하여 그 이름을 해망서원이라 하였다.

강당인 구인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강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매년 9월 15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대지 300여 평과 전답 2,800여 평이 있다.  


정여해는

본관은 河東하동. 자는 仲和중화, 호는 遯齋둔재

정여해는 정여창의 동갑나기 팔촌동생.

金宗直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金宏弼김굉필·鄭汝昌정여창 등과는 학문적으로 교유하며 격려하였다.

1480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孝廉효렴(부모에게 효도하는 몸가짐과 청렴한 자세를 뜻으로 효에 의한 천거로 관직을 얻는다)으로 천거되어 朔州敎授삭주교수를 지냈으며, 1487년(성종 18)에 司憲府持平사헌부지평에 제수되었으나 虛名허명으로 벼슬할 수 없다 하며 취임하지 않았다.

1498년에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날 때 화순의 海望山中해망산중에 精舍정사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는 일에 힘썼다.


전남 화순군 춘양면 대신리 904

전남문화재자료 제122호

원으로 들어서는 입구 좌우에는 안내판과 서원의 유래를 알려주는 비석들이 서 있다.

외삼문은 3칸의 솟을대문으로 문호는 濟滄門제창문.

서원 안으로 들어서면 海望書院 해망서원 현판과 求仁堂구인당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는 강당이 나온다.

구인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우물천장을 하였고, 우측으로부터 방, 대청, 2칸 방의 순으로 되어 있다.

구인당 옆에는 재실에 해당하는 說樂堂열락당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l칸 반의 건물로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우측으로부터 방, 대청 2칸, 방의 순서로 되어 있다. 강당과 재실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구인당과 열락당 사이를 지나면 제향 공간이 나온다.

二止門이지문 현판이 걸려 있는 솟을대문인 내삼문을 들어서면 사우인 崇義祠숭의사가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건물로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김종직을 主壁주벽으로 좌우에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 정여해의 위패가 봉안되 어 있다.

내 할 일이란 비록 유배지이긴 하지만 제자를 기르는 것이다.

도학이 내를 이루고 천을 이루고 강을 이루게 하여 드넓은 땅을 적시며 바다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땅에 하늘의 도가 넘쳐나는 군자의 나라가 되게 해야 할 것이다.- 김굉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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