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들이 많으시길…
클리셰가 되어버린 입춘 추위에 비해 올해는 포근한 날씨의 입춘을 맞이 합니다.
立 세운다.
봄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의미의 입춘의 한자 표기는 시작의 의미(入)가 아닌 세운다는 뜻의 立春이죠.
봄이 왔다를 來春이라 하니 봄이 되었다를 入春이라 부르지 못할 것도 없지만 立春임을 고집스럽게 지킵니다.
예의 주석서라고 하는 禮記예기 月令월령에서 입춘을 立春이란 한자로 쓰는 데서 유래합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중국의 황제가 거만하게 봄을 세운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들은 立春, 立夏, 立秋, 立冬의 날에 신하들을 거느린 황제가 교외로 나가서 풍악을 울리면서 계절을 선포합니다.
立春, 말도 안 되지만 2000여 년 동안 써 내려 온것이죠.
春 봄
천자문을 다 떼어도 입춘대길도 못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자를 배우는 학습서 중 기본서인 천자문에는 봄춘(春)자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1500여년 전 중국 남조 梁양의 周興嗣주흥사가 짓고 왕희지 필체를 모아 만들었다고 하는 천자문은 한문 초보자의 필수교재죠.(하룻밤 사이에 완성하고 머리가 허옇게 세었다 해서 白首文 백수문이라고도 부릅니다)
이와 관련해서 이어령교수는 주흥사가 남쪽나라 사람이었기에 늘 따뜻한 곳에서는 봄을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렇게 한자 기본서인 천자문에 없는 봄은 긴겨울을 지나고 따사로운 봄의 생기 넘치는 모습을 기다리고, 즐기고, 아쉬워하며 보내다 보니 봄에 대한 단어가 많습니다.
다시 돌아온 봄, 改春개춘, 新春신춘
봄이 시작되는 머리, 獻春헌춘
드디어 봄이 된 當春당춘
요 며칠처럼 꽃이 한창 핀 아름다운 봄, 芳春방춘
꽃놀이 다니며 봄을 느끼는 賞春상춘
그렇게 한창 무르녹은 봄, 酣春감춘
그러다 봄철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餞春전춘
지난 봄을 그리는 去春거춘
春춘은 본래 초목(艸)이 햇볕(日)을 받아 싹을 틔우려 애쓰는(屯) 모습이니 늘 그런 남국에서야 봄이 따로 없는 셈이죠.
서울에서는 입춘날 보리뿌리를 보아 뿌리가 많이 돋아나 있으면 풍년이 들고 적게 돋아나 있으면 흉년이 든다고 여겼습니다.
충남지역은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점쳤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날씨가 맑고 바람이 없으면 그해 풍년이 들지만 눈 또는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든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입춘축을 써서 사방에 붙이면 그해 만사가 대길하나 망치질을 하면 불운이 닥친다고 생각했습니다.
입춘하면 생각나고 천자문을 다 떼어도 입춘대길도 못 쓴다는 말에도 나오는 입춘대길이라는 말이 입춘축의 하나죠.
입춘엔 문설주나 대문에 福복을 비는 문구를 써서 붙였는데 이를 立春祝입춘축이라 합니다.
궁궐에서는 신하에게서 받아 궁궐에 붙인것을 春帖子춘첩자라 하였고,
관공서에서 올려서 궁궐에 붙이면 立春府입춘부라 하였습니다.
이때 비슷한 語調어조나 語勢어세를 가진것으로 짝을 이룬 둘이상의 글을 對句대구라하고,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생각을 담아 일정한 형식과 순서를 갖춘글을 對聯대련이라하고,
短文단문으로 된 첩자를 端帖단첩이라 불렀습니다.
개인집에는 붙였던 입춘축은 오래된 한옥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이듯 사당, 대문, 중문, 기둥, 곳간등에 붙였는데 그 의미는 다 다릅니다.
먼저 사당에가서 올해 모월모시에 입춘임을 고합니다라고 조상께 입춘이 왔음을 고하는 입춘축을 붙이는데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축문형식입니다.
두번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문에는 붙이는 立春大吉 建陽多慶 입춘대길 건양다경.
대문이다보니 객과 지나는 사람에 대한 인사의 글로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들이 많으시길 기원드립니다라는 내용을 붙이는것이죠.
쉽게 지금의 인사로 하자면 이제 봄입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정도 될듯합니다.
이어 집안사람만 드나드는 중문에는 문의 신과 집안의 신령이 지키고 있으니 불길한것을 꾸짖어 금한다는 의미의 門神戶靈 呵噤不祥 문신호령 가금불상을 붙입니다.
기둥에는 집의 중심이되니 자연의 기운을 집안에 불어 넣는 의미의 天增歲月人增壽 春萬乾坤福滿家 천증세월인증수 춘만건곤복만가(하늘은 세월을 늘여주고 사람의 목숨을 늘여주며 봄은 천지에 가득하고 복은 집안에 가득하여라)라는 글귀를 붙입니다
곳간엔 의롭게 저장하고 절약해 쓴다는 의미로 義以藏之 節以用之 의이장지 절이용지이라는 글을 선택했다.
선조들의 디테일이 보여지는 해학이 아닐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