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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문 | 어머니 이야기

; 어머니 기일에, 안데르센의 마음으로

by Architect Y

어머니 忌日기일은 깊은 가을 중인지라 안 그래도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아픈마음이 더욱 깊게 울리게하는 요인이 되곤 합니다.

며칠 전 기분탓인지 자료 검색 중 눈에 들어 온 시 한 구절이 날씨탓인지 계속 마음 쓰이는것도 이 맘때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국은 어쩐지 괜히 슬프다. 왜 슬프냐 하면 모른다 무조건 슬프다

냉이국이건 쑥국이건 너무 슬퍼서 고깃국은 발음도 못하겠다.

고깃국은…… 봄이다. 고깃국이.

- 슬픈 국, 김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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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은 슬프다는 이상한 정의(定意).

작가는 어떤 근거나 논리적 인과도 덧대지 않고 그저 냉이국이건 쑥국이건 너무 슬퍼서 말을 끝맺지 못하고 여백만 남기고 있는 무책임할 수도 있는 이러한 직설적인 어법은, 시인의 사유에서 독자의 사유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어 읽는이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울림을 줍니다.

시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지난 오랜 시간의 어머니가 떠오르는것도 이 때문일지 모릅니다.


시의 울림이나 가을의 계절성 우울증때문인지 몰라도 15년이나 흘러버린 어머니의 모습은 반복적으로 가슴을 끌어 당깁니다.

사랑이 그리운 남겨진 아들에게 「슬픈 국」 은 오래된 책 한권을 다시 들게 합니다.


10년 전, 이보영 주연의 신의 선물이라는 제목의 SBS 드라마에서 화면에서 보여줬던 안데르센의 어머니 이야기는 이 드라마의 오마주로도 알려져 있죠.

드라마는 딸을 잃은 엄마가 과거로 돌아가 딸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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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작가인 김수현(이보영 분)은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중 딸 한샛별(김유빈 분)이 유괴,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깊은 절망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김수현은 신비로운 사건으로 인해 딸이 죽기 정확히 14일 전으로 시간을 되돌아가게 되자 이 기회를 이용해 딸의 죽음을 막고자 사설 탐정 기동찬(조승우)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기동찬 역시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삶이 망가진 인물로, 자신의 형이 누명을 썼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사건을 파헤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샛별의 유괴와 죽음을 막기 위해 14일 안에 범인을 찾으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의 삶이 과거의 어두운 사건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야기는 끊임없는 반전과 긴장감 속에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마지막 회에서는 모든 사건의 진범이 밝혀지며, 시청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해석을 낳는 열린 결말로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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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Christian Andersen 안데르센의 생애와 작품 속에서 ‘어머니의 사랑’은 단순히 개인적 정서가 아니라 가난, 희생, 신앙, 그리고 운명에 대한 체념과 수용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그의 어머니(Anne Marie Andersdatter)는 실제로 문맹이었지만 신앙심이 깊었고, 아들에게 고통 속에서도 신이 계획한 뜻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모성은 오늘 이야기하는 「어머니 이야기」외에도 성모 마리아의 아기, 성냥팔이 소녀등 여러 작품 속에서 변형되어 나타나곤 했죠.

안데르센의 동화 중에서도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은 숨은 명작으로, 아이를 데려간 ‘죽음’으로부터 아이를 되찾아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며 동분서주하는 한 어머니의 절절한 모성을 담고있습니다.


Death strides faster than the wind, and never brings back what he has taken away.

…… Then the mother wept and sang, and wrung her hands. And there were many songs, and yet even more tears

…… Grant not my prayers, when they are contrary to Thy will, which at all times must be the best. Oh, hear them not.

죽음은 바람보다 빠르게 달려와, 빼앗아 간 것을 결코 되돌려주지 않는다.

…… 그러자 어머니는 울며 노래하고, 두 손을 비틀었다. 수많은 노래가 있었고, 눈물은 더욱 많았다.

…… 주님의 뜻에 반하는 나의 기도는 들어주지 마소서. 주님의 뜻은 언제나 최선이니. 오, 들어주지 마소서.

- 어머니 이야기 중


이 책은 원서로 다섯 페이지 정도의 짧은 글이지만, 그 내용은 결코 단순하지 않아서인지 국내에서는 조선경 작가의 그림이 더해지며 서른쪽 이상의 한권의 책으로 나왔습니다.


추운 겨울밤, 한 '어머니'가 아픈 아이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밖은 눈과 얼음으로 덮이고 바람은 살을 에는 듯이 날카로웠기에 어머니는 노인에게 맥주 한 잔을 데워 주려고 했습니다.

노인은 아이 옆에서 침대를 흔들어 주었고 어머니는 노인에게 '아이가 죽진 않겠죠?'라고 묻자 노인은 이상하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노인은 '죽음'이었고 그것을 알아챈 어머니는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그녀는 사흘 동안 뜬눈으로 아이를 간호해서 몹시 지쳐 있어서 얼핏 잠이 들었다가 깼을 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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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이를 되찾기 위해 집 밖으로 뛰쳐나갔고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죽음이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여인은 ‘밤’이었습니다.

어디로 갔는지를 묻자, 밤은 어머니가 아이에게 불러 주었던 노래를 모두 불러달라고 하자 어머니는 고통스럽게 울면서 노래를 모두 불렀습니다.

'밤'은 전나무 숲을 가리켰고 숲 속으로 들어서자 교차된 길이 나오자 어머니는 옆에 서 있는 '가시나무'에게 죽음이 간 길을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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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름이 달린 가시나무는 춥다며, 자기를 안아주면 죽음이 간 길을 알려주겠다고 하자 가시나무를 안은 어머니의 가슴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습니다.

어머니의 뜨거운 피를 마신 가시나무는, 추운 겨울밤인데도 몸에서 잎이 돋고 꽃이 피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느덧 호수에 닿았는데 그곳에는 호수를 건널 다리도 넘어갈 배도 없었습니다.

'호수'는 죽음이 살고 있는 온실로 건네주는 대신, 어머니의 아름다운 두 눈을 달라고 하자 어머니는 눈을 빼주고 호수를 건넘니다.

반대편 호숫가에는 크고 멋진 집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이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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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에서 물을 주고 있던 백발 노파는, 어머니의 길고 고운 머리칼과 자신의 백발을 바꾸면 죽음이 어디 있는지 알려준다고 하자 기꺼이 백발과 고운 머리칼을 바꾸고는, 거대한 '죽음의 온실'로 들어갔고 그곳에 있는 꽃과 나무들은 제각기 이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의 생명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수많은 식물 중, 자기 아이의 심장 소리를 찾아냈습니다.

노파는 죽음이 아이의 꽃을 뽑으려 하면, 다른 꽃들을 뽑으려하면 죽음이 겁을 먹고 아이의 꽃을 못 뽑을 거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때 무서운 냉기가 온실을 휘감고 죽음이 들어왔고 죽음이 아이의 꽃을 뽑으려고 하자, 어머니는 노파의 말대로 다른 꽃을 뽑겠다며 위협했습니다.

그러자 죽음은, '네 자식을 살리기 위해 다른 어머니들에게 고통을 주겠느냐?'라고 물었고 그 물음에 어머니는 힘없이 꽃송이를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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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호수에서 어머니의 눈을 건져 오더니, 샘물 안을 들여다보라고 말했습니다.

그 샘물 안에는 어머니가 파괴해 버릴 뻔했던 아이들의 미래가 있었는데 한 아이의 미래는 온 세상의 행복과 기쁨이 가득한 반면, 다른 아이의 미래는 근심, 가난, 비참함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죽음은 둘 중의 하나가 어머니 아이의 미래라며, 아이를 찾아갈지 아니면 하느님에게 보낼지 선택하라고 했고 어머니는 불쌍한 아이를 구해 달라며 아이를 하느님의 나라로 데려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죽음이 아이를 데리고 알 수 없는 나라로 갑니다.


책에서는 어머니에게서 모성애의 두 가지의 상반되는 선택을 마주하게 됩니다.

“제가 우리 아가랑 계속 살 수 있겠지요?”

처음에 어머니의 단 하나의 소망은 아이를 살려서 같이 사는 것입니다.

아이를 죽음의 사자에게서 되찾기 위해 길을 떠나 온갖 고생을 이겨내는 어머니는 자기의 눈을 빼어가면서, 문자 그대로 맹목적 헌신의 모성애를 실천합니다.

“제 아이를 모든 불행에서 구해주세요, 차라리 데려가세요!”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어머니의 기도는 돌변하며는 아이를 포기합니다.

자신의 죽음을 불사하면서 아이를 지키려던 어머니는 아이를 죽음의 세계로 놓아보내주는 어머니로 변화합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그것이 자식을 죽음으로 떠나보내는 고통이더라도-감수하려는 것입니다.

두 어려운 선택 모두 아이를 자신보다도 더 사랑하는 ‘엄마라서’ 가능한 것일것입니다.

「어머니 이야기」 는 이렇듯 “저는 엄마니까요”에서 출발하고, “저는 엄마니까요”로 마무리 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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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을 심리, 철학적으로 분석하기에는 지금의 마음으로는 쉽지 않네요.

다음에 또 기회가 되어 이 내용을 정리할 시간이 되면 조금 더 개관적이고 분석적인 이야기로 정리 해 보겠지만 그저 오늘은 어머니의 이야기, 어머니의 마음, 어머니의 사랑으로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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