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으로 역주행해보는 유대인
한때 유럽에서는 (나치즘의 주장이 그러하듯이) “모든 유대인들은 저들만의 기원을 가진 하나의 민족으로 묶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 당장 반유대주의자로 치부되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이라는 사람들이 하나의 민중이나 민족을 이루었던 적은 없으며 지금도 그러하다”고 말했다가는 즉각 유대인 혐오자로 찍힐 것이다.
- 본문 p.58, 들어가는 말, 기억이라는 짐 중
최근 미국과 함께 이스라엘 중심으로 이란을 공격하며 화약고 중동은 전쟁으로 국제 뉴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의지라기보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의 설득으로 시작된 전쟁인지라(이 부분은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이 얽힌 부분이라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이야기하는것으로 하고) 이스라엘,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몇해전 읽었던 책을 리뷰해 봅니다.
저자 Shlomo Sand 슐로모 산드는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 역사학 교수로 1948년 ‘나크바’(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탈) 시기에 이스라엘 야파로 이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화 속에서 성장했고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며 프랑스사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이스라엘에 돌아와 종신교수로 모교에서 유럽 근현대사를 가르치쳤습니다.
2008년 히브리어로 출간되고 2009년 영어로 번역된 「만들어진 유대인 (원제 The Invention of the Jewish People 유대인은 언제, 어떻게 발명되었는가)」 이 세계적 명성을 얻으면서 산드는 외국어로 가장 많이 번역된 이스라엘 역사서의 저자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종족을 기반으로 하여 자연적으로 생겨난 민족은 없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들이 민족으로 불리면서, 그 안에 속하거나 그것에 의해 구분되거나 그 지배를 받아온 주민들이 종족으로 묶이는 것이다.
즉 과거에서나 미래에서나 마치 그들인 자연적 공동체를 이루기라도 한 듯이 그려지는 것이다.
- 본문 p.65 들어가는 말, 기억이라는 짐 중
이 책은 유대 민족(Jewish people)이 고대부터 연속적으로 존재한 하나의 민족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근대 민족주의와 역사 서술이 유대인의 집단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냈는가를 비판적으로 분석합니다.
저자는 고대 유대인의 대규모 Diaspora (강제 추방)는 역사적으로 과장되었고 현대 유대인 집단은 하나의 혈통 민족이 아니라 여러 지역 집단의 개종과 혼합으로 형성된 종교 공동체에 가깝다는것입니다.
유대 민족이라는 개념은 19세기 유럽 민족주의 시대에 형성된 역사 서사로 이 서사는 시온주의 국가 형성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강화되었다고 서술하며 유대인은 종교 공동체이지 고대 혈통 민족이 아니다라는 문제제기를 합니다.
근대적 집단 정체성인 민족의식까지 가기 위해서는 신화와 목적론 모두가 필요하다.
여기에 토대를 제공한 신화는 구약성서에 기록된 우주였다.
구약의 역사적 재료들은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문헌학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생기 넘치는 신화를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유대인이라는 영원한 민중이 세상에 구원을 가져오도록 운명지어졌다는 가정이 근대 유대 역사학자들을 통해 목적론으로 커나갔다.
(…) 그러나 수백 년 된 유대 공동체들이 구약성서를 ‘탈무드’라는 구전 율법의 해석과 중개 없이 읽을 수 있는 독립된 저작으로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성서는 오랫동안 유대인 대부분에게 인간의 이해로는 접근할 수 없는 텍스트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성지’(聖地)를 이 세상에 실재하는 장소로 보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 본문 p.152-153 제2장 역사가 된 신화-하느님이 만드신 민족 중
책은 크게 4개의 역사적 단계를 따라 논증합니다.
우선, 근대 민족주의의 역사 서술측면에서 민족은 어떻게 발명되는가.
근대 역사학은 민족을 고대까지 연장하는 서사를 만들었는데 대부분의 민족은 실제로는 근대에 형성된 정치 공동체로 유대민족도 이와 같은 근대 민족 발명 과정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작가가 사용하는 이론적 배경은 1983년 출간 이래 세계 수십 개국에서 25만 부가 넘게 판매되며(2006년 기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베네딕트 앤더슨 Benedict Anderson의 Imagined Communities(상상의 공동체)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였던 Eric Hobsbawm의 The Invention of Tradition(만들어진 전통)으로 유대 민족도 이와 같은 근대 민족 발명 과정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로마가 유대인을 추방, 유대인이 세계로 흩어짐, 2000년 동안 민족 정체성 유지이라는 전통적인 유대인 디아스포라 신화에 대래 저자는 로마는 실제로 대규모 강제 추방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고 많은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에 계속 거주했기때문에 전 세계 유대인이 모두 고대 유대인의 후손이라는 서사는 역사적 근거가 약하다고 주장합니다.
즉 세계 유대인은 추방된 동일 민족의 후손이라는 이야기 자체가 근대에 만들어진 서사라는 것이라는것이죠.
그리고, 8~9세기, 카자르 왕국 Khazar Khaganate의 지배층이 유대교로 개종했는데 동유럽 유대인의 상당수가 카자르 후손일 가능성이 높고 북아프리카 베르베르 유대인은 베르베르 부족 일부가 유대교 개종, 마그레브 지역 유대인 형성했고 예멘 지역, 아라비아 유대교 왕국 Himyarite Kingdom 이 유대교로 개종하며 유대인은 고대 혈통 민족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개종으로 형성된 종교 집단이라는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9세기 후반,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 건설하려는 유럽에서 등장한 정치운동, Zionism은 유대 국가 건설 과정에서 등장한 역사 서사로 유대인은 고대부터 하나의 민족, 로마가 추방, 고향으로 귀환한다는 이 서사는 국가 건설을 위해 강화된 역사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다음을 비판합니다.
이스라엘의 국가 구조인 유대 국가의 시민권이 민족 개념과 결합하며 이스라엘은 민주주의 국가인가, 민족 국가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이스라엘은 유대 민족 국가가 아니라 모든 시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가장 먼저 강조해야 할 것은 로마인들이 유대전쟁이 끝난 후 결코 주민 전체를 강제추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우리는 이스라엘왕국을 멸망시킨 아시리아인들과 유다왕국을 정복한 바빌로니아인들 역시 그들의 정복지로부터 주민 전체를 이주시키는 일 같은 건 하지 않았다고 덧붙일 수 있다.
‘땅의 사람들’ 곧 농작물을 생산하고 세금을 바치는 이들을 그 땅에서 뿌리 뽑는 것은 결코 득이 되는 일이 아니다.
심지어 로마제국은 아시리아인과 바빌로니아제국이 실시했던 효율적 추방정책 - 전 지역에 걸쳐 각 분야 행정 및 문화 엘리트들만을 골라서 추방한 정책 - 조차 시행하지 않았다.
- 본문 p.249 제3장 너무 많은 유대인-유배때문인가, 개종때문인가 중
유배에 관한 새로운 유대 신화가 생겨난 것은 상당히 늦은 시기였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그 신화가 무엇보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배척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벌로 유랑의 삶을 살아간다”는 그리스도교 신화로부터 유래했다고 말한다.
4세기 초 그리스도교가 승리를 거두고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자, 원래부터 예루살렘 외부에 거주하던 유대교 신자들마저 유배를 신의 징벌로 보는 관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죄와 뿌리 뽑힘, 그리고 성전파괴와 유배를 연결시키는 관념이 세계 곳곳의 유대인들에 대한 정의 속에 깊이 자리하게 되었다.
죄로 인해 벌을 받고 있다는 ‘방랑하는 유대인’이라는 신화는 이후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사이의 증오의 변증법 안에 뿌리를 내리고는, 긴 세월 동안 두 종교 간의 경계선을 표시하는 표지가 되었다.
- 본문 p.254-255 제3장 너무 많은 유대인-유배때문인가, 개종때문인가 중
저자 Shlomo Sand의 문제제기 자체는 흥미롭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역사학계의 주류 비판은 상당히 강했습니다.
첫째로 로마는 유대인을 대규모로 추방하지 않았고 따라서 세계 유대인의 기원은 추방된 유대인이라는 서사는 신화라는 작가의 주장에 실제로 단일 사건으로 전체 추방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제1차 유대-로마 전쟁 (First Jewish–Roman War, 66–73), 바르 코크바 반란(Bar Kokhba Revolt, 132–135)등 여러 전쟁과 정치적 변화로 점진적 디아스포라가 형성된 것은 분명하다는것입니다.
둘째로 동유럽 유대인 상당수가 Khazar Khaganate에서 개종한 후손이라는 작가의 주장에 카자르 개종은 지배층 중심일 가능성, 인구 규모가 동유럽 유대인 규모를 설명하기 어려움, 동유럽 유대인의 언어와 문화가 라인강 유대인과 연결되기에 유대사 연구자 Shlomo Shafir, Anita Shapira 등은 카자르 기원설은 가능한 요소일 뿐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주된 기원으로 보기 어렵다고 반박합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유대인 인구유전학 연구가 크게 발전해 많은 유대 집단은 아슈케나지, 세파르디, 미즈라히등 중동 인구와 공통 유전적 기원을 공유하고 집단 사이에 상당한 유전적 연속성이 존재하는데 작가는 는 유전학 자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거나 선택적으로 해석했다는것입니다.
네번째로 하버드 대학교 역사학 교수로, 유대인 역사와 시온주의를 비교·국제적 맥락에서 연구하는 Derek Penslar, 동유럽 유대인과 유대인 이주(aliyah) 연구로 알려져 있는 Israel Bartal과 같은 여러 역사학자들은 산드의 책을 사료 분석보다 담론 비판 중심이고, 근대 민족주의 이론을 과도하게 적용했으며, 유대 역사 연구자들의 축적된 연구 무시하기에 흥미로운 문제 제기지만 역사학 연구로는 약하다라고 주장합니다.
특히, Israel Bartal는 유대 민족이 근대에 발명되었다는 주장은 학계에서 이미 오래전에 논의된 문제이며 산드가 새롭게 발견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유대인은 종교 공동체이지 민족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해 유대 정체성은 복합적 구성 요소-종교, 문화, 언어, 혈연, 역사 기억 즉, 유대인은 단순한 혈통 민족도 아니고 단순한 종교 공동체도 아니라고 민족 개념을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해석했다 고 비판합니다. - 역사학자, Anthony D. Smith 이론으로 설명하면 족류상징주의(Ethno-symbolism); 현대 국가와 민족주의가 단순한 정치적 구성물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공유된 상징, 신화, 전통, 기억에 기반하여 형성된 감정적 공동체라고 보는 연구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이 도착하기 전 볼가강과 돈강 사이 지역에 모세 종교를 받아들인 이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과, 프랑크 부족들이 침입하기 전 갈리아(Gaul) 지역에도 유대교 개종자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북아프리카에서도 카르타고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한 뒤 아랍인들이 들이닥쳤고, 이베리아반도에서도 유대교 문화가 번성하고 뿌리내린 뒤 그리스도교의 영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이 일어났다.
그리스도교 유대인 혐오자들이 조장하기 시작했고 근대의 반유대주의자들이 다시 불러들인 과거의 이미지와 전혀 다르게, 신의 아들인 메시아를 죽였다는 이유로 성스러운 땅에서 쫓겨난 저 저주받은 민족이란 역사를 통틀어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다.
- 본문 p.451-452 제4장 침묵의 왕국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종교가 개인의 내면적 확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외적 표지가 되면, 그 종교는 종족을 나타내는 특성 곧 한 집단에 귀속되는 대체 불가능한 속성이 된다.
그럼으로써 종교는 개인적 책임과 선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필요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바뀐다. 즉 최종적으로는 인종을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 본문 p.515 제5장 구별하기-이스라엘의 정체성 정치 중
책의 마지막에 실린 후기는 「만들어진 유대인」이 출간된 후 책에 가해진 여러 비판에 대해 저자가 답하는 글입니다.
유대인 단일 민족설에 대한 재반박, 유배 사실에 대한 반증, 히브리인과 팔레스타인인의 역사적 동질성, 유대인 유전자설에 대한 논박,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대인이 아닌 ‘이스라엘 민중’의 존재에 대한 승인을 주장하며 이 후기는 책 전체를 요약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책은 학계보다 대중에게 훨씬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이유는 민족주의 역사 서사에 대한 도전, 이스라엘 정체성 논쟁, 팔레스타인 문제와 연결하는데, 특히 이 책은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시온주의 역사 서사를 비판하는 대표적 책으로 널리 읽혔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유대인 문제가 아니라 ‘민족’ 자체를 해체하는 질문이고 저자, 슐로모 산드는 역사학의 불편한 진실을 건드리며 역사 서사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구성물’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책은 이스라엘에서 논쟁적인 “국가 정당성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고 있고, 책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틀릴 수도 있는 책’을 읽는 지적 가치와 가장 깊은 층위는 사실 철학인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래, 수 많은 유대역사 학계나 유대 정치적 반발이나 비판에도 슐로모 산드의 「만들어진 유대인」이 여전히 읽혀지고 읽어봐야하는 이유는 사실 이 책이 정설을 배우기 위한 책으로 맞느냐/틀리느냐가 아니라 ‘정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책으로 여전히 읽을만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