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ffee break…마지막_Palm Sunday

; 密雲不雨 밀운불우, 어둠과 빛의 공존

by Architect Y

오늘은 라틴 가톨릭과 개신교, 정교회와 동방 가톨릭, 오리엔트 정교회, 네스토리우스파를 일컫는 Christianity(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종교)의 Lent 사순절의 마지막 한주의 시작인 종려주일(棕櫚主日-Palm Sunday; 예수가 십자가형을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입성(Triumphal Entry)할 때, 군중들의 환영을 받은 일에 대한 기독교의 기념일) 입니다.

다음날인 30일부터 성금요일을 지나 부활절 전날인 4월4일까지는 ‘고난주간(苦難週間, passion week)’이라고 불립니다.


Palm Sunday라는 명칭이 사용된것은 (성경에 따르면 [요한복음 12:12~14]) 부활 한 주 전에 예수는 예루살렘성으로 나귀를 타고 들어갈때 군중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그 입성을 환영한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종려주일에 대한 가장 오래된 역사적 문헌은 385년 에게리아(Egeria)의 순례집에 나오는데 당시 동로마 교회에 속했으며, 예수님께서 직접 걸으셨던 곳인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종려 행렬’이 나섰습니다.

서로마 교회들은 축하 분위기 대신 애도의 성격도 함께 표현했습니다.

6세기 경 스페인 의식서를 보면, 5세기경 동로마 교회의 종려주일 풍습이 전해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중세에는 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다음, 가까이 있는 다른 교회로 걸어가는 것이 종려주일 관습이었습니다.

성도들은 종려주일이 되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되새겼다고합니다.

축성 의식을 행하기도 했는데 축성(祝聖 Consecration)이란 성례에 쓰이는 물건 등을 정해진 의식을 통해 성스러운 것으로 구별하는 가톨릭 의식으로, 구약의 성별 의식[출 40:9-15]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중세 교회에서는 종려주일에 사용하는 종려나무 가지에 축성의식을 했는데 축성된 종려나무 가지는 귀신을 추방하거나 질병의 치유와 재앙을 막는 능력이 있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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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는 많은 작곡가에게 자신들의 음악적 성과를 모두 쏟아부을 수 있는 텍스트로 고난기를 기반으로 작곡된 작품을 ‘수난곡 passion’이라고 부릅니다.

수많은 작곡가가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 수난곡을 작곡했지만 역사에 남는 작품은 손에 꼽히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바흐의 수난곡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흐가 쓴 다섯 개의 수난곡 중 지금까지 전해지는 ‘마태오 수난곡(Matthäuspassion)’과 ‘요한 수난곡(Johannespassion)’.

이 중 ‘마태오 수난곡’은 바흐의 대부분 작품이 그렇듯 멘델스존에 의해 100년 후 다시 생명을 얻어 1729년 초연된 작품을 1829년에 다시 연주한 것입니다.

전곡은 78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난의 예언에서 주님이 체포되기까지의 과정을 1부, 주님의 죽으심과 묻히심까지의 과정을 2부로 하고 있습니다.

바흐 음악이 어렵고 복잡하다는 후대의 평가를 받지만 이 수난곡은 뛰어난 표현력과 장대함·섬세함·부드러움·강렬함 등을 고루 갖춘 음악의 보물창고 같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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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äuspassion 마태오 수난곡 Johannespassion 요한 수난곡

Matthäuspassion 마태오 수난곡 https://youtu.be/TFff2mGT_B0?si=JJvnNV6jrYYuJR9G

Johannespassion 요한 수난곡 https://youtu.be/BVhoJ5TK5u0?si=UfDd3h59oL5RxIrJ


기쁨에 환호하는 군중들의 종려나무축제는 Palm Sunday라는 명칭과 함께 아이러니컬하게도 Passion Sunday(고난주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날입니다.

이날은 겉으로는 승리의 입성이지만, 신학적으로는 아이러니한 사건입니다.

기쁨의 종려 퍼레이드는 군중들은 로마로부터 해방이 되는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한것이지만 예수, 당사자는 십자가를 향한 길을 걷는 고난의 입성인것이죠.

즉, 종려주일은 환호 속에서 시작되는 수난의 서막으로 이 점에서 종려주일은 곧 이어지는 성금요일과 긴장 관계에 있습니다.

라틴 전통에서는 단순히 Palm Sunday가 아니라 Dominica Passionis (수난 주일) 개념이 결합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종려주일이 단순 축제가 아니라 곧 시작될 고난 주간의 입구임을 강조하고 있는것입니다.

종려주일은 사순절 마지막 주일, 성주간 시작점으로 이후 이어지는 흐름은 종려주일 (입성), 성목요일 (최후의 만찬), 성금요일 (십자가 죽음), 부활절 (부활)이라는 구조 속에 위치합니다.

(구조적으로) 종려주일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상징적 층위로 종려나무는 왕, 승리, 메시아로, 성경적 사건으로 본다면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은 메시아 선언으로, 신학적 역설에서 환호에 이어 배신, 그리고 십자가라는 세 가지 층위를 동시에 가진 날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의 왕권 선포이면서 동시에 오해된 왕권의 시작으로 군중은 왕을 맞이했지만, 그 왕은 정치적 승리가 아니라 자기희생을 통한 구원을 선택합니다.

이 긴장—환호와 십자가 사이의 간극—이 바로 종려주일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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密雲不雨 밀운불우


주역의 64괘 卦중 9번째 괘인 풍천소축(風天小畜) 편에는 '소축小畜 형亨 밀운불우密雲不雨 자아서교自我西郊'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중국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은 포악한 정치를 펼쳤고 은나라 삼공 중 두 사람은 주왕에게 간하다 죽임을 당했고 후에 주나라 문왕이 되는 서백도 박해를 받아 서쪽 기산지방 유리옥에 유폐됩니다.

민심은 이제 은 주왕에게서 완전히 떨어져 나갔으니 남은 것은 은나라를 공격하기만 하면 되는데 문왕이 갇혀있기 때문에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미입니다.

구름은 빽빽하나 비는 오지 않는다.


아직 환호하기에 시기상조인 답답한 상황을 알수 없던 군중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미 편향된 시각의 환호박에 없었을것이겠죠.

Christianity(기독교)에게 중요한 날임에도 개신교의 절기 중 가장 어정쩡하게 넘어가는 절기가 오늘입니다.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의 경계가 모호한 것은 서로 다른 교회의 전통 때문인데 동·서로마 교회는 종려주일을 고난주간에 포함시켜 종려주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되지만 그리스정교회는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을 분리해 종려주일이 지난 월요일부터 고난주간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또한 이런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의 모호함 속에 있습니다.

기쁨의 축복과 환영의 상징으로 예루살렘 입성을 반기는 유대인들처럼 정치적 왕을 부르짖으며 그에 부응하지 못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마음은 입으로만 외치는 잃어버린 사랑을 외치며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띄어가는 21세기 종려주일의 예수에 대한 기대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는지……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의 보다 명확한 경계는 종려주일에 대한 의미와 중요성을 부각하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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