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이야기 XXXⅠ Vitra Campus

; 20후반에서 21세기초반 건축 showroom

by Architect Y

지난해 2025년 12월 20세기 큰 축이었던 또 한명의 건축가의 부음이 있었습니다.

이미 1996년 함께 작업을 했지만 갑작스런 IMF 구제금융 사태로 무산된 이후 청담동 루이비통 메종 서울(LVMS)을 보기까지 무려 20년이 넘어서야 한국에서의 작품을 볼 수 있게되었던 프랭크 게리는 전세계에 그렇게 많은 작품들을 남겨도 유독 한국하고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것은 당시 바젤 출장중 들렀던 비트라 캠퍼스(Vitra Campus)에서 였습니다.

스위스 바젤은 프랑스, 독일 국경 사이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지만 세계 최대 제약회사 노바티스와 로슈 본사 등을 품은 제약의 메카이자 50년 넘게 미술 시장의 패권을 잡아온 아트페어 아트바젤의 본고장, 최고 시계 장인들이 대대로 모여 살던 명품의 도시 그리고 대규모 페어가 1년 내내 열리는 마이스(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도시입니다.

바젤은 현대 건축학도와 디자이너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이기도 하죠.

당시에도 나름, 30개국 해외 출장으로 다져진 안목에도 어린 건축가의 눈에 들어온 전혀 다른 개념의 건축 전시장이었습니다.

비트라 캠퍼스 외에도 바젤 지역에는 Renzo Piano의 Fondation Beyeler, Mario Botta의 Museum Tinguely과 BIS Tower, Christ & Gantenbein의 Kunstmuseum Basel, Herzog & de Meuron의 Roche Towers, Messe Basel, Meret Oppenheim Tower, Museum der Kulturen 등 헤아리기도 숨찬 수 많은 대작들이 즐비합니다.

그래, 지인들의 스위스, 독일 여행에 추천하는 코스가 바젤 지역이었습니다.

오늘은 Vitra Campus를 이야기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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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바일 암 라인(Weil am Rhein)에 위치한 비트라 캠퍼스(Vitra Campus)는 단순한 기업 공장이 아니라, 현대 건축의 실험실이자 살아있는 건축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의 작품이 밀집해 있는 곳입니다.

이곳의 핵심은 개별 건물이 아니라, 서로 다른 건축 철학이 공존하며 긴장과 대화를 이루는 공간(field)이라는 점입니다.

비트라 캠퍼스는 결과만 보면 세계적 건축가들의 전시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고(화재),실험, 실패, 우연, 그리고 기업가적 결단이 뒤엉킨 과정의 산물입니다.

건축가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된 형태보다, 그 형태가 나오기까지의 사건들입니다.

우선, 비트라 캠퍼스의 출발점은 1981년 대형 화재로 비트라는 공장 대부분이 소실되고 생산 기반이 붕괴되었으며 기업 존속 자체가 위기에 처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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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대부분이 소실되고 생산 기반이 붕괴되면서 기업 존속 자체가 위기를 맞앗을때 일반 기업이라면 빠른 복구를 위해 저비용으로 건설을 하며 효율을 최우선으로 택했을 것이지만 이때 CEO였던 롤프 펠바움은 단순 복구 대신 건축 실험으로 바꾸자는 결정을 내리며 위기를 브랜드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는것으로 전환합니다.

초기 재건에서 선택된 건축가는 합리적이고 기능 중심의 하이테크 건축을 지향하는 Nicholas Grimshaw 니콜라스 그림쇼입니다.(1981년, 1983년 2 건축물)

하지만 이 선택은 효율적인 공장은 만들었지만, 상징은 없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내, 단순 공장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며 이제 비트라의 방향은 결정됩니다.

이제, 이후 비트라는 Frank Gehry 프랭크 게리를 초청합니다.

하지만, 당시 1989년 게리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디자인한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프리츠커상 수상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 전, 매우 급진적인 디자인을 추구하기때문에 기업 건축에 거의 사용되지않는 해체주의를 추구하는 건축가 였습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이것이 공장이냐, 조각작품이냐는 비아냥 섞인 반응이나 비용대비 효율이 떨어진다는 현실적 반응과 브랜드에 도움이 될지 의구심을 자아내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 완성되자, 그 미친 선택은 기업이미지를 급상승시키고 건축관광이 시작되는 결과를 얻게 되었고 비트라는 건축이 마케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게됩니다.

다음으로 선택한 건축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로 잘 알려진 Zaha Hadid자하 하디드입니다.

당시 그녀는 종이 위의 건축가라는 닉네임이 있을 만큼 실현된 건축물이 거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녀의 계획은 실현되기에 시공 난이도가 무척 높은 건축물이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 글 뒤에 개별 건축물소개에서 이어보겠습니다)

비용이 증가하고 비효율적인 기능문제(실제 소방서로 사용 못함), 그리고 구조적 어려움이라는 리스크는 결국 소바서가 아닌 전시공간으로 전환되며 실패한 기능이 오히려 건축적 성공이 된 사례가 되며 자하하디드는 경력의 전환점이 되고 건축적 이슈가된 소방서는 비트라에게 마케팅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같은 해인 1993년 Tadao Ando 안도 다다오의 첫 해외 프로젝트인 컨퍼런스 파빌리온(Conference Pavilion)은 또 다른 긴장을 만들었습니다.

주변은 모두 조형적, 외향적 건축인것에 안도는 완전히 닫힌 콘크리트 박스 제안합니다.

이에 너무 조용하다거나 캠퍼스 맥락과 조화롭지 못하다는 초기 반응은 이내 강한 대비가 전체를 안정시켜 캠퍼스의 균형점 역할을 한다는결과를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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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공장 건축물이었던 Nicholas Grimshaw의 효율적 하이테크 건축물에 이어 1994년 Alvaro Siza 알바로 시자는 생산 공장 건물과 이를 연결하는 붉은 벽돌의 보행교를 설계했고 2012년 세지마 카즈요(妹島和世)와 니시자와 류에(西沢立衛)의 유닛 건축 사무소인 SANAA(Sejima And Nishizawa And Associates)는 유럽 첫 프로젝트인 물류센터 역할을 하는 Factory Building을 공장으로 인해 주변 경관이 망가질 것을 걱정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주변 풍경과 어우러지는 건물을 지으려고 날씨에 따라 흰색에서부터 회색에 이르는 다양한 색의 변화를 보여주는 일정 두께 이상의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패널로 비트라 캠퍼스에서 가장 큰 면적 건축물이 주변과 동화되며 건설되었습니다.

그 바로 전인 2010년에는 Herzog & de Meuron 헤르조그 & 드 뫼롱의 비트라하우스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기존 건물들은 건축 실험 중심이었다면 비트라하우스는 판매 공간으로 처음으로 노골적인 상업성과 건축이 결합한 경우로, 건축인가 쇼룸인가 혹은 브랜드 경험을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가구 판매가 건축 경험으로 통합하는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비트라는 하이테크 건축가 Renzo Piano 렌조 피아노에게 초소형 주택 작업을 의뢰해 2009년부터 개발한 약 6평짜리 집을 캠퍼스 내에 설치했습니다.

건축물의 이름은 모두 앞에서 당당한 게 아니라면 혼자 있을 때도 당당한 게 아니며, 인간은 공적인 장소에서 자기 삶을 내보일 수 있을 정도로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 디 시노페의 이름을 따서 지은 Diogene 디오게네입니다.

렌조 피아노는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갖춘 집을 사전 제작해 기성품화한 주택을 선보인 것으로 이렇게 또 한번 비트라는 세상을 놀라게 하며 비트라라는 가구회사의 아이덴티티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았습니다.

이 밖에도 산업 모듈 건축인 Jean Prouvé 장 푸르베의 Service Station 주유소, Kazuo Shinohara 카츠오 시노하라의 Umbrella House, Buckminster Fuller 벅민스터 풀러의 돔(Dome) 구조물등을 볼 수 잇는데 비트라는 유명 건축 몇 개 쯤 세워 놓고 대외 홍보하는 얄팍한 상술이 아닌, 건축·디자인의 역사와 철학을 중시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며 브랜드 가치를 높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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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라 캠퍼스에는 특정 스타일로 고정되는것을 피하고 자연스럽게 시대 변화에 스며들고 실험적 건축요소를 유지하기위해 전통적인 마스터플랜이 없습니다.

그 결과로 일어나는 건축적 충돌이나 그케일의 불균형, 그리고 비 논리적 동선들은 건축적 긴장과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물론, 외부에서는 이상적인 건축 집합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보수가 까다롭고 복잡한 형태로 유지비가 상승하며 각 건축물들 가진 색으로 프로그램의 변경이나 동선이 수정되고 급기야 건축물의 용도까지 전환해야하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트라 캠퍼스는 공장, 창고, 쇼룸 등 실제 생산 기능을 유지하는 동시에 건축적 실험의 대상으로 산업 시설을 ‘건축 담론의 장’으로 전환하고 자하 하디드의 첫 실현 건축물, 안도 다다오 일본 밖 첫 프로젝트등 건축가의 선언적 작품들의 집합체이고 의도적으로 통일된 스타일 없고 직관과 실험 중심으로 축적되며 도시가 아니라, 건축적 대화의 콜라주인것입니다.

건축가의 시선에서 비트라 캠퍼스를 읽어보면 좋은 건물들의 집합을 감상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서로 다른 건축적 언어들이 한 장소에서 어떻게 충돌, 병치, 진화하는지를 해석하는 작업 즉, 단일 객체(object)가 아니라 전체 관계(field)를 읽는 훈련에 가깝습니다.

게리의 해체, 하디드의 역동성, 다다오의 침묵, SANAA의 움직임등 비트라 캠퍼스는 하나의 양식을 보여주지 않고 서로 충돌하는 건축 철학의 공존합니다.

일반적으로 기업 건축은 효율 중심이지만, 비트라는 건축이 브랜드 철학이 되고 연구 도구가 되며 문화 자산으로 확장시킨 기업이 만든 가장 성공적인 건축 컬렉션입니다.

그래, 이곳은 짧은 거리 안에 세계 최고 건축가가 모여 하나의 도시보다 밀도 높은 건축 경험하게되는 Architectural Pilgrimage 건축 순례지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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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저 스치듯 일반관광지가 아닌 건축적인 시각으로는 조금 다른 시각이 필요합니다.

비트라 캠퍼스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완벽한 계획의 결과가 아니라, 위험한 선택들이 축적된 결과라고 할 수있는데 이런 마스터플랜이 없는 마스터플랜을 읽어 내려면 통일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캠퍼스’로 느껴지는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프랭크 게리의 조형적 혼란, 자하 하디드의 긴장된 선, 안도 다다오의 폐쇄적 명상 공간 이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습니다.

그러나 충돌 상태 자체가 하나의 질서가 됩니다.

핵심은 형태가 아니라 Distance 거리와 Gap 간극이 질서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건축 분석은 프로그램과 동선을 중심으로 하지만 이 캠퍼스에서는 그것이 2차적입니다.

대신 한 건물을 보고 있을 때 다른 건물이 시야에 들어오는 방식이나 형태 간의 간섭과 대비되는 요소인 압축과 개방, 직선과 곡선, 빛과 어둠이라는 요소를 찾아봐야합니다.

이 모든 것이 건축적 경험의 시퀀스를 구성합니다.

건축사적 흐름을 읽어보는것도 재미 요소입니다.

1980년대의 해체주의 (게리), 1990년대 실험적 형식 (하디드), 2000년대 미니멀/개념적 정제 (SANAA), 그리고 2010년대유형학적 재해석 (헤르조그 & 드 뫼롱)을 따라가다보면 건축은 시대에 따라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획득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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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치 않게 한번의 포스팅으로 담아내기에 재미난 요소가 많아 몇번 개별 건축물 이야기로 이어가야 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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