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두번째 이야기, 규범...실의 구분
한옥, 생활과 교육을 위한 지혜의 산물
배치와 구분을 통해 예를 이어갔던 우리의 집.
기본적으로 우리 주택은 안방과 대청과 건넌방으로 이루어집니다.
안방에 부엌이 붙어있고 좀 더 커지면 사랑채가 있게 되는것이죠.
부부의 거처는 안방이고 대청은 다목적 거실이고 건넌방과 아래채는 아이들 몫입니다.
며느리가 들어오면 아랫방에 신방을 차립니다.
대청을 건너 있는 시부모의 거처와는 창호지 문이 두 겹 있을 뿐이죠.
그러나 프라이버시가 문제되지 않을 만큼 서로 조심하고 예의를 지켰던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건넌방에서 자라지만 아기 우는 소리에 시어머니가 건너와서 아기를 돌보기도 합니다.
2, 3년 터울로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는 안방 할머니 옆으로 옮겨집니다.
이유(離乳)를 겸한 사회교육의 한 방법입니다.
다시 셋째가 태어나면 첫째는 아들, 딸을 불문하고 할아버지의 사랑채로 거처를 옮깁니다.
첫째는 대여섯 살 나이에 할아버지의 담배 심부름을 하며 손님들에게 인사하는 법을 배우고 천자문을 시작하고 어깨너머로 붓글씨와 그림을 익힙니다.
그리고는 죽은 후에도 사당에 모셔져 문안인사를 받고 제사상을 받으며 가족의 일원으로 같이 지냅니다.
몇대 제사를 모셨으니 사후 100년을 가족과 함께 한 집에 지내며 후손을 축복하고 격려하고 반성의 기회를 주는것이죠.
이처럼 우리건축은 생활과 교육을 위한 지혜의 산물이었던 것입니다.
가족수가 평균 2.9명밖에 안 되는 핵가족사회에서 각자 방문을 닫고 가족간에도 프라이버시를 부르짖는 어리석음을 되새겨 보아야 할 때인것입니다.
마당의 평상에서 할머니 무릎을 베고 별을 헤다가 잠들던 사랑과 지혜의 삶을 우리의 어린이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는 것입니다.
이제 역사 이래 최악의 유해환경 속에서 건축을 한다는 일은 사람을 위해 건강해야 하고 건강하기 위해 지혜로운 방법으로 접근되어야 합니다.
지금도 전국에 남아있는 종가(宗家)들 중 규모가 큰 상류주택에서는 그 집이 지어질 때 평면계획의 중심이 안채에 있어 그곳을 중심으로 주택 전체의 배치가 시작되었고 가장 섬세하게 배려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안채는 아내와 아낙들의 공간입니다.
거기에는 최고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어 있고 그러기에 더욱 아낙네들의 해방공간이었던 것이고.
그녀들은 자신들만의 독립된 자유공간을 확보했는데 바로 그 여권(女權)이 건축의 설계과정에서부터 영향을 미쳐서 집주인조차도 외곽으로 밀려 격리된 사랑채에 머물게 했던것입니다.
「안주인」이니 「바깥주인」이니 하는 말이 여기서 나왔죠.
심지어는 안주인과 합방(合房)하는 일조차도 택일을 하고 허락을 받아야만 사랑채에서 쪽문을 이용한 비밀통로를 지나서 안방과 통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 좋은 예가 소설 홍길동에 나옵니다.
일일은 승상이 난간에 비겨 잠깐 졸더니…
문득 청룡(靑龍)이 물결을 헤치고 머리를 들어…
승상의 입으로 들어오거늘, 깨달으니 평생 대몽이라. 내염(內念)에 헤아리되 ‘필연 군자(君子)를 낳으리라.’ 하여, 즉시 내당에 들어가 시비를 물리치고 부인을 이끌어 취침코자 하니, 부인이 정색 왈,
‘승상은 국지재상이라, 체위 존중하시거늘 백주에 정실에 들어와 노류장화(路柳墻花)같이 하시니 재상의 체면이 어디에 있나이까?’
승상이 생각하신 즉, 말씀은 당연하오나 대몽(大夢)을 허송(虛送)할까 하여 몽사(夢事)를 이르지 아니하시고…
부인의 도도한 고집을 애달아 무수히 차탄하시고 외당으로 나오시니, 마침 시비 춘섬이 상을 드리거늘, 좌우 고요함을 인하여 춘섬을 이끌고 원앙지낙(鴛鴦之樂)을 이루시니…
심내에 못내 한탄하시더라.
춘섬이 비록 천인(賤人)이나 재덕(才德)이 순직한지라, 불의에 승상의 위엄으로 친근(親近)하시니 감히 위령(違令)치 못하여 순종한 후로는 그날부터 중문 밖에 나지 아니하고 행실을 닦으니 그달부터 태기(胎氣)있어 십삭이 당하매 거처하는 방에 오색운무 영롱하며 향내 기이하더니, 혼미중에 해태하니 일개 기남자라. 삼일 후에 승상이 들어와 보시니 일변 기꺼우나 그 천생(賤生)됨을 아끼시어 이름을 길동이라 하니라.……
길동이 부친(父親)을 부친이라 못하고 형(兄)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매 스스로 천생됨을 자탄(自嘆)하게 된 사연은 여성들은 소작인들을 다스리고 곳간 열쇠를 관리함으로서 경제력을 확보하고 남편들을 사랑방으로 내몰아 격리시키고 사실상 집안 살림을 주도하였던 것입니다.
대장부는 안살림에 관여하는 게 아니라는 논리는 가정교육을 통해 아들들에게도 전수되었고 이 모든 feminism의 드라마는 건축설계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