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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으로 돌아보는 한옥

3/6. 세번째 이야기, 지붕아래 만들어지는 빈공간의 한옥

by Architect Y

현대건축의 틀을 잡고 그 기준을 만든 르꼬르뷔지에는 1914년에 발표한 Domino system으로 건축 5원칙을 정립하여 500년만에 서양건축의 근간인 벽을 쌓아 집을 지었던 건축을 송두리째 바꿔 놓으며 어마어마한 개혁을 환호 했었습니다.

벽 대신에 네 개의 기둥만으로 집이 세워졌기 때문에 벽이 자유로워졌다는 것.

003 르꼬르뷔지에.jpg 르꼬르뷔지에
003 자유로운입면.jpg 빌라사보이_르꼬르뷔지에

한옥지붕과 기단(基壇: 집터위에 집을 짓기위해 놓은 단)의 사이는 비어있습니다.

양과 음사이의 중성공간이 되는것이죠.

이 중성공간은 내부와 외부는 관통합니다.

동북아 세 나라 가운데 특히 우리 건축에서 이 중성공간의 비움은 엄격히 지켜지고 있습니다.

중성 공간에는 기둥이 있지만 이 기둥조차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단(음)의 연장이라고 볼 만큼 철저히 개방되어있습니다.

개방이란 기둥도 벽도 없다는 의미죠.

중국건축에서는 벽이 지붕을 받히는 (벽)구조가 많이 보이고 일본의 경우 막부(幕府)처럼 막을 두르는 형식으로 가리워지기도 하지만 우리의 건축은 기본적으로 철저히 개방되어 있습니다.

003 중국황궁우의 벽.jpg 중국 황궁우의 벽

서양건축이 외부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차폐물이고 거기서 필요한 부분을 뚫어 나간 반면, 우리 것은 기본적으로 개방이 원칙이고 필요한 부분만 차폐하였다.


차폐의 방법도 창호지로 된 미닫이(미서기)창(문)이 기본이고 들(창)문, 덧(창)문 같은 개방형이 보통입니다.

이런 (창)문들은 닫혀있어도 공기가 통하고 소리는 들리는 반개방 상태입니다.

닫았다가도 열고 싶을 때는 열어젖힙니다.

그러면 다시(기본으로 돌아가) 내부와 외부는 구분이 없어지게 됩니다.

방이라는 폐쇄공간이 있었다 없어지고 없다가 생겨나게 되는데, 이 경우 그 (창)문들로 구획된 방들도 기본적으로 빈공간인것이죠.

003 공간_남산한옥마을.jpg 남산 한옥마을
003 분합문.jpg 분합문

고정된 벽이 없으므로 가구집기가 기대어 설 곳이 없고 따라서 지나치게 많은 고정 가구의 소유가 불가능하다.

특히 사랑채에는 안방처럼 옷장이나 이불장도 없습니다.

선비의 방은 책상(書案)과 등잔처럼 벽에 기대지 않고 방 가운데 서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옷은 평면이 되어 의걸이 횃대에 걸려있고.

담장은 있으되 그 너머로 밖이 내다보이고 까치발을 하면 밖에서도 안이 들여다보입니다.

담장은 그저 안과 밖을 구분하는 선에 지나지 않는것이죠.

003 담장_남사예담촌.jpg
003 담장_남사예담촌2.jpg

제주도의 정낭은 그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대문 정주먹에 긴 나무를 걸쳐 놓았으면 들어오지 말라는 이야기가 되는것입니다.

003 정낭.jpg 제주 정낭

빈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 건축가는 많습니다.

빛에 대해 열광한 건축가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바람에 대해, 물소리에 대해 생각한 건축가는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땅의 기운과 하늘의 기운이 맞닿는 사이공간에 건축이 있고 그 빈 공간이란 정말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건축의 공간이 사람의 체질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 본 건축가는 찾기 힘들죠.

우리의 건축은 인문학자-철학자들에 의해 계획되고 장인들이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내공을 쌓으며 인생을 관조하였고 그러므로 우리것들은 그 장인들의 솜씨에 감동하기 이전에 그 인문ㆍ철학적 배려에 의해 사유하게 하는것입니다.

그들은 동시에 시인이며 문장가이고 (문인)화가이며 철학자로서 음악과 춤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서양의 예술가들과 달리 격정을 다스릴 줄 알았던것이죠.

우리 건축은 인문학이고 그들의 작품들은 그래서 그 모든 감수성을 통틀어 다듬어진 총체적 체험을 통해서만 감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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