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광복에서 분단까지 01
; 남한 단독정부수립의 발단
양분된 한반도 관련하여 이뤄진 내용중에
1943년 테헤란회담과 1945년 얄타회담에서 미국의 루즈벨트대통령은 조선에 대해 최고30년에 이르는 미,영,(구)소,중에 의한 신탁통치의 실시를 제안하였다.
그리고 1945년 소련 모스크바에서 미,(구)소,영 삼상회의를 개최하여 미국은 본격적인 신탁통치체제가 수립될 때까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하여 미,(구)소 양군의 사령관을 우두머리로 하는 단일정부를 설치할 것을 제안하면서, 미,소,영,중 대표들로 구성된 행정부가 신탁통치 기간에 입법,사법,행정에서 전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하며 그 기간을 5년으로하되 10년으로 연장할 수 있도록 하자고도 제안하였다.
이런 미국의 제안에 대하여 소련은 조선민중의 공통된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임시조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는것이 긴급한 것임을 밝히고 일제의 식민통치가 가져온 참담한 결과를 청산하는 내용을 명문화할 것을 요구하면서 신탁통치의 기간은 5년이내로 한정할것과 신탁통치의 기간에도 임시조선정부가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후견제 실시 여부도 조선임시정부와 미소공동위원회의 협의를 거쳐 최종 결정할 것을 요구하였다.
모스크바 삼상회의는 소련의 주장을 기본으로 한 결정사항을 채택하였다.
즉 조선내 각 계층의 모든 민주세력이 참여하는 임시조선민주정부를 수립하고 이 임시정부와의 협의하에 최고 5년간의 미, (구)소, 영,중 4개국에 의한 후견제 실시여부를 결정하되 후견 기간에는 전적으로 조선인이 임시 정부를 통해 스스로 통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모스크바 삼삼회의 결정 전문]
1. 조선은 독립국으로 부흥시키고 조선이 민주주의 원칙위에서 발전하게 하며 장시간에 걸친 일본 통치의 악독한 결과를 쾌속히 청산할 제 조건을 창조할 목적으로 조선 민주주의 임시정부가 창건되는데 임시정부는 조선의 산업, 운수, 농총경제 및 조선 인민의 민족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모든 필요한 방책을 강구할 것이다.
2. 조선 임시정부 조직에 협력하며 이에 적응할 제 방책을 예비 작성하기위한 남조선 미군 사령부 대표들과 북조선 소련군 사령부 대표들로써 공동위원회를 조직한다.
위원회는 자기의 제안을 작성할 때에 조선의 민주주의 제 정당 및 사회단체와 반드시 협의할 것이다.
위원회가 작성한 건의문은 공동위원회에 대표로 되어있는 양국 정부의 최종적 결정이 있기전에 미,영,중,소 제국정부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3. 공동위원회는 조선민주주의 임시정부를 참가시키고 조선민주주의 제 단체를 인입하여 조선인민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진보와 민주주의적 자치발전과 조선독립의 확립을 원조협력(후견)하는 제 방책도 작성할 것이다.
공동위원회의 제안은 조선임시정부와 협의 후 5년 이내의 기한으로 하는 조선에 대한 4개국 후견의 협정을 작성하기 위하여 미,영,중,소 제국정부의 공동심의를 받아야 한다.
4. 남북조선과 관련된 긴급한 제 문제를 심의하기 위하여 그리고 남조선 미군 사령부와 북조선 소련군 사령부의 행정 및 경제부문에 있어서의 일상적 조정을 확립하는 제 방책을 작성하기 위하여 2주일 이내에 조선에 주둔하는 미,소 양국 사령부 대표로써 회의를 소집할 것이다.
모스크바삼상의 결정은
조선 민주주의 임시정부를 통하여 조선민중의 주권행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으며,
어떠한 형태의 제국주의적 침탈도 허용하지 않음은 물론 특정 강대국의 독점적 지배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여서는 안된다.
모스크바 삼상의 결정이 원만히 실현되고 우리민족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자주적 역량만 충분히 준비된다면 목적하는바 통일독립국가를 건설하는데 가장 효과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모스크바 삼상결정에 대한 초기의 격렬한 반대(신탁통치 반대운동)와는 달리 모스크바 삼상결정 내용을 정확히 이해한 뒤로는 대다수 민중들과 양심적 제 민주세력들은 그 실현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조선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을 통해 조선인 자신에게 통치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모스크바삼상결정은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이해(제국주의적 식민 지배를 염두에 둔)에 전면 배치되는 것이었다.
특히 미국내 냉전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모스크바삼상결정에 대한 거부 반응은 매우 심각하였다.
(구)소련과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제반국제문제를 풀어가려 했던 정책집단들이 냉전주의 집단들에게 밀려 실각하면서 미국은 국내의 친일 모리배들을 사주하여 모스크바 삼상 결정 내용을 은폐하고 왜곡하며 모스크바 삼상 결정의 원만한 실현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미국내 주도권을 장악한 모스크바삼상회의 결정에 반대하는 냉전주의 세력들은 모스크바 삼상회의에 참석하였던 번즈 미 국무장관을 소련과 내통한 불순분자로 내모는 한편 남한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과거 친일부역하였던 반동적 언론들을 앞세워 모스크바 삼상회의는 소련의 주장에 의하여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를 실시하기로 했다는 날조된 소식을 연일 대서 특필케 하였다.
1946년 친일 반역자들의 도피처였던 한국민주당은 자신들의 간행물을 통하여
(구)소련은 신탁통치를 강조하였고 미국은 즉각적인 조선의 독립을 옹호하였다
는 완전 왜곡되고 거짓된 선전을 늘어 놓았다.
이 시기 이승만 또한 자신의 친위 조직인 독립촉성국민회의 이름으로 한민당과 똑 같은 완전 왜곡된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여 발표하였다.
남한내의 일부 지역에서는 소련이 단독으로 5년간의 신탁통치를 강행하기위하여 소련군이 곧 진주해 올 것이라는 흑색선전까지 난무하였다.
같은해 3월 덕수궁에서 모스크바협정의 실현을 논의하기위한 미소 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이견만을 노출시켰다.
특히 모스크바 협정에 명시된 일제통치잔재의 조속한청산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난 미국의 친일 반역자들을 옹호, 기용함으로서 모스크바협정 실현에 근본적인 장애를 가져왔다.
결국 4월 AP 통신의 미 군정 당국은 남조선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착수했다라는 보도와 함께 미군정 최고책임자인 하지가 언론을 통하여 공산주의자를 배제한 남조선 과도정권의 수립 가능성을 비치면서 회의는 결렬되고 모스크바삼상결정은 휴지조각이 되었으며 통일된 민주주의조국 건설은 멀어지게 되었다.
우리는 무기휴회된 공위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않으며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되지 않으니 남쪽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것을 조직하여 38선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할 것입니다.
- 이승만, 6월 정읍발언;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 가능성을 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