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종이 지나고 바햐흐로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뜨거운 연휴가 지나고 화요일 새벽을 시작하며 잠시 시간을 멈춘다.
살아가며 원한이 있기는 쉽다.
어떤 이유에서든 내게 물질적, 육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명제는 지난 며칠간 생각속에 머물게 한다.
원한이 있는 사람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그대로 앙갚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원한이 있는 사람에게 덕으로 갚거나, 은혜를 베푸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덕이나 은혜를 베풀어서 그 사람이 진심으로 뉘우치거나 사과를 하면 모를까 나쁜 버릇만 키워줄 수도 있는 일이다. 남한테 원한을 샀는데 저 사람이 나한테 은혜를 베풀다니, 그럼 앞으로 다른 사람들한테도 원한을 사도 되겠구나 하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가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어떤이가 공자에 질문한다.
은덕으로 원망을 갚으면(以德報怨이덕보원) 어떻습니까?
공자는 반문하며 답을 준다.
그렇게 하면 무엇으로 은덕을 갚을 것인가?
공정함으로 원망을 갚고 은덕은 은덕으로 갚아야한다.
교회에 가면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라고하고 사찰에 가면
자신을 버려 호랑이에게 먹인다
라고하며 도를 따지는 노자는
은덕으로 원망을 갚는다
라고한다
수 없이 많은 크리스쳔, 불자들 중에 이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래서 孔子가 덕은 무엇으로 갚겠느냐고 반문한 것이다.
덕은 덕으로 갚고, 바른 도로 원한을 갚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바른 도란 순리에 맞게 처리하는 것이다.
받은 그대로 앙갚음하는 것도 아니요, 무슨 도덕군자라도 되는 양 은혜를 베푸는 것도 순리가 아니다.
상황에 맞게 원한을 갚는 것이 바로 바른 도인 것이다.
전혀 개전(改悛)의 정이 보이지 않으면 행동으로 갚아도 되고, 참회(懺悔)의 빛이 보이면 따끔하게 말로 꾸짖어도 된다.
그게 바로 바른 도인 것이다.
한번쯤 살아오며 뒤를 돌아 봄이 어떨지....
以直報怨 이직보원
以德報德 이덕보덕
- 論語 憲問 논어 헌문편
바른 도(道)로 원한을 갚고, 덕으로 덕을 갚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