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의 죄를 알린다.
광복절 아침.
눈을 뜨고나니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은 휴일을 맞이하게 한다.
벌써 72년이 지나가고 지나간 시간 만큼이나 세대의 변화가 기억이 희미해질 만큼 지나간다.
사람의 기억에서는 희석이 될 수 있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일들은 많다.
더욱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잊어서는 안된다.
그 옛날 왕조국가에서조차 임금 스스로가 잘못을 빌어야 했는데, 이를 罪己詔죄기조라고 한다.
바로 오늘 누구의 잘못을 기억해야 하는지 이 아침을 되뇌인다.
국치에서 광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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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전 16세기 경의 임금인데 呂氏春秋여씨춘추 順民순민조에 따르면 7년 동안 가뭄이 들자 탕왕은 자신의 정치 잘못이라고 여겨서 桑林상림에 나가서 목욕재계하고 머리를 자르고 자책하면서 비를 빌었다.
죄기조는 송구하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면 효과가 없고 구체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야 하는데, 탕왕은 여섯 가지 일로 자책했다.
자신의 정치가 고르지 못했는가,
백성들이 직업을 잃었는가,
궁실이 지나치게 높고 화려한가,
女謁여알(측근의 청탁)이 행해졌는가,
뇌물이 행해졌는가,
참소하는 자가 창성했는가
자책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큰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조선의 효종은 가뭄 때문에 많은 심적 고통을 겪었던 임금이었다.
효종 3년(1652) 봄과 초여름에도 가뭄이 심했다.
효종실록에 따르면 그 해 4월 27일 효종은 남교(南郊)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그러자 그 다음날 거짓말처럼 비가 왔다.
그래서 효종의 대군 시절 사부였던 孤山고산 尹善道윤선도는
임진년 4월 28일에 비가 온 것을 기뻐하다(壬辰四月二十八日喜雨 임진4월28일喜雨)라는 시로 이를 읊었다.
昨日桑林玉體疲 작일상림옥체피
病臣終夜仰天窺 병신종야앙천규
誰言霶霈由斯禱 수언방패유사도
我識精誠有素爲 아식정성유소위
中谷暵蓷無女棄 중곡한퇴무녀기
窮廬易粟絶男持 궁여역속절남지
願君修省憂勤意 원군수성생우군
雨後常如未雨時 우후상여미시
誰道天高不聽卑 수도청고불청비
桑林禱罷雨祁祁 상림도파우기기
作霖賢賚由恭默 작림현내우공묵
始信商書匪我欺 시신상서비아기
어제 상림에서 옥체를 수고롭히시어
병든 신하 밤새도록 하늘을 쳐다봤네
이번 기도로 비 내렸다 누가 말하는가
평소의 정성 때문임을 나는 알고 있지
골짜기 속에 익모초 말라 버림받는 여인도 없을 것이요
궁한 집에서 아들 팔아 곡식 바꿀 사람도 없을 것이라
모쪼록 임금님은 수성우근하는 뜻을
비가 온 뒤에도 안 올 때와 똑같이 하시기를
하늘은 높아서 땅의 말 안 듣는다 누가 말하는가
상림의 기도 끝나자마자 단비가 촉촉이 내렸는걸
장맛비 삼을 현상을 내림도 공묵 때문이었나니
상서가 나를 속이지 않음을 새삼 확인하겠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