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살아난 선비 정도전
20세기말부터 현재까지 최고의 건축가라 칭송되고 있는 프랭크게리가 90년대 말 한국을 찾을때 종묘 앞에서 동양건축의 정수라 칭하며 탄복을 했다.
정작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서양건축을 환호하거나, 어줍잖은 문화재 복원에 열광한다.
다빈치가 그랬고 안토니오 가우디가 그랬듯 우리에겐 최고의 인문학 건축가 정도전이 있다.
서울을 거닐다보면 문득 문득 선비 정도전이 스친다.
현재 방송되는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를 계기로 다른 시각을 가졌음 하는 마음이다.
정도전(1342-1398).
본관 봉화.
부친 정운경 초시 합격하고 성균관 입학한 뒤 경북 영주 집으로 휴가갔다가 노비 건드려 정도전을 출산한다.
서얼.
목은 이색 서당 입학하여 정몽주와 동문수학하고 20살 때 진사시 합격.
1370년 지금의 서울대 교수인 성균박사 역임한다.
당시 중국은 원나라가 쇄해가고 명나라가 흥하는 상황에 이인임은 원나라에 줄을 대고 정도전은 명나라 쪽으로…
정도전 패하고 1375년 회진현으로 유배가게 된다.
2년 만에 유배가 풀렸다.
고향 영주로 내려가 삼각산 아래에 초막 짓고 독서하며 호도 바꾼다.
삼봉三峰.
切齒腐心절치부심(몹시 분해 이를 갈면서 속을 썩 임)
1383년 42살의 나에에 학문 완성하여 이성계를 찾았다.
새로운 세상을 제안하고 이 성계 최측근으로 등극한다.
1384년 정몽주와 남양부사로 명나라로 잠시 자리를 피한다.
1388년 위화도회군.
쿠데타.
이제 정권은 이성계에게 넘어 가고 우왕은 강화도로 유배간다.
이성계에게서 연락이온다.
이제 성균관 대사성으로 정3품 당상관.
서자 출신 으로 지금의 서울대 총장 등극한 것이다.
고려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다.
우왕의 아들 창왕 9살에 고려 제33대 왕 등극한다.
1389년 정도전 밀직부사 취임.
지금의 대통령 수석비서관.
창왕 강화도로 유배.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 등극.
이 공으로 정도전은 奉化縣 義君봉화현충의군에 책록된다.
그래 정도전은 봉화정씨 중시조가 된다.
1390년 經延知事경연지사, 즉 이제 왕의 스승이 된 거다.
삼봉은 중국 황제의 생일을 맞아 성절사로 베이징 방문하여 베이징 도시 설계도를 구하고 천도를 생각한다.
귀국 후 과전법 실시하여 전국의 모든 땅은 나라 땅이므로 지위 고하에 따 라 공평하게 농지 재배분하게 된다.
쌀 수확량의 1/10 나라에 세금으로 낼 것.
1391년 정당문학 취임.
지금의 기획예산처 장관.
정도전은 사퇴하라는 상소가 빗발쳐 봉화로 유배되지만 다음 해 유배가 풀렸다.
이번엔 동문수학한 정몽주가 탄핵하지만 이방원이 정몽주 살해하고 삼봉 해금된다.
1392년 이성계는 고려의 옛 수도이던 개성의 수창궁에서 조선 제 1대 왕에 오른다.
삼봉 純忠奮義佐命순충분의좌명 1등 개국공신이되고 이성계는 삼봉을 불러 새로운 수도首都를 계획하게 한다.
1393년 이성계는 삼봉과 충청남도 계룡산으로 갔다.
잘 생긴 계룡산 아래에 수도 만들것을 명하지만 거둬드린 세금, 진상품을 올리거나 물자의 수송문제로 불가를 주청, 조선에서 가장 큰 강인 한강 옆에 수도를 정해 나룻배로 실어 나르는 방법으로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천도를 시작한다.
1396년 경복궁 완공.
1101년 고려가 이 도시 이름을 남경이라고 지었다.
고려시대의 정치중심도시 사경(四京: 남경은 한양, 동경東京은 경주, 중경中京 은 개성, 서경西京은 평양)의 하나.
햇볕 잘 드는 따뜻한 동네라는 의미의 한양이라정한다.
궁의 이름은 정도전이 지었다.
경복궁
(군자가 영원토록 큰 복을 누리리라. 詩經시경의 ‘군자만년君子萬年 개이경복 介爾景福’에 서 끝의 두자)
1394년 삼봉 <조선경국전經國典:나라를 다스릴 헌법> 발간한다.
군주는 국가에 의존하고, 국가는 백성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백성은 국가의 근본인 동시에 군주의 하늘이다.
이성계는 첫 부인과의 사이에 방우, 방과, 방원 등 여섯 형제를 두었고, 두 번 째 부인과의 사이에 방번, 방석을 두었다.
두 번째 부인 강씨의 계략으로 막내 방석이를 왕세자로 1392년 등극. 이제 11살. 후견인은 삼봉.
셋째아들 이방원 열 받아 사병 양성.
1396년 왕세자 엄마 강씨 소천. 향년 41살.
1398년 삼봉은 이방원이 무섭다.
죽이려하지만 이방원이 선수를 쳐 삼봉 목을 친다.
왕세자 이방석, 이방번 역시 사살.
삼봉 유언은 이렇다.
30년 긴 세월 온갖 고난 겪으면서 쉬지 않고 이룩한 공업.
송현방 정자에서 한 잔 술 나누는 새 다 허사가 되었구나.
삼봉 후손들은 평택으로 숨었다.
1865년 신원되고 1870년 고 종은 문헌文憲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473년 만에 조선에 큰 가르침을 준 선비 였음을 왕이 보증하는것이다.
1912년 후손들이 삼봉 사당인 문헌사 건립하고 현판을 걸었다.
유종공종儒宗功宗.
선비에서도 으뜸이요, 공적에서도 으뜸
2004년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에 <삼봉 정도전 기념관>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