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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채록 Oct 30. 2023

서로 연결된 우리

UMFF 2023에서 만난 8편의 작품

산악영화를 중심으로 자연과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여덟 번째 해를 맞이했다. 울주는 ‘영남알프스’라는 지역적 특색을 포착해 산악영화제를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워 그동안 관심을 갖고 지켜본 영화제 중 한 곳이지만, 아직 영화제 현장을 찾아가보진 못했다.


올해는 영화제 현장을 찾아가 보려 했지만, 여러 이유로 이번에도 다음을 기약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홈페이지를 살피던 중 온라인에서도 상영작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현장의 분위기를 느낄 순 없지만, 영화제를 찾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엔 충분하였다.


영화제 기간 중 온라인 상영관에서 볼 수 있는 40여 편 중 8편의 국내 단편영화를 보았다.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작품 속에서 섬처럼 존재했던 이들이 하나의 계기로 연결되고, 또 닿고자 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한다는 영화제의 방향성을 함께 읽을 수 있었다.


가정동 (허지윤, 20min, 2022)

<가정동>은 시라는 매개를 통해 이어진 이들의 이야기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시의 구절처럼 투박하지만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급처합니다…네고 불가 (박현웅, 14min, 2022)

중고거래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기타를 사고파는 순간의 이야기다. 일상적인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가 쌓이고 쌓이면서 영화가 끝나는 순간,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게 하는 묘한 작품이다.


두 여인 (장선희, 21min, 2022)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담아내었다. 먼저 엄청난 대사량을 소화해 낸 두 배우에게 박수를 보낸다. 카메라가 고정된 상태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롱테이크로 선보이는데, 과연 적절한 방식이었는가는 의문이다. 일상적인 대화도 굳이 나누자면 서론과 본론 그리고 결론이 있기 마련이고, 강조하고픈 내용은 힘주어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두 사람의 대화에 힘주어 말하고 싶었던 구간은 없었을까. 고저가 잘 느껴지지 않는 대화를 20분 가까운 시간을 온전히 집중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떠한 개입 없이 두 사람의 대화를 온전히 들어달라는 의도는 알겠으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 관객에게 환기와 집중을 유도할 어떠한 장치들을 마련했다면 의도한 바가 잘 드러나지 않았을까. 여담으로, 두 사람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대화하는데 촬영하는 동안 배우들은 몇 개의 아이스크림을 먹었을까가 궁금해졌다.


오늘의 영화 (이승현, 30min, 2023)

“오늘 정말 인상 깊은 하루네요”라는 대사로 시작해 같은 대사로 마무리하는 수미상관 형식이 돋보이는 <오늘의 영화>는 꿈을 꾸는 이들에게 응원과 위로를 전하고 영화 같은 순간은 우리의 일상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멋지십니다. 잘하고 계신 것도 같고.” 이런 대사는 어떤 톤으로, 어떤 식으로 뱉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형성될 수 있는 지점인데 담담하게 또 자연스럽게 소화한 혜랑 역의 문혜인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sub)구독과조아영#일상 (김국희, 18min, 2022)

브이로그 형식을 통해 유튜버로 성공하고 싶은 아영의 일상을 담은 작품.

특이한 제목부터 눈에 띄는 이 작품은 인물의 일상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브이로그를 택하여 형식 면에서 신선하게 다가오지만 남다른 촬영방식이 있을 뿐, 스토리는 부재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를 비롯해 많은 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다. ‘이 작품의 무엇에 주목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남았지만, 작품 너머에 있는 타인의 생각을 짐작할 순 없었다.


같이 살기 (민다홍·김새롬. 24min, 2023)

<같이 살기>는 성별은 같지만 성격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이 함께 하며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청력 손실과 실직, 좌절의 순간을 겪은 두 사람이 서로의 재기에 힘이 되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둘의 모습을 보며 사람은 혼자 설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홍에게 많은 상처를 준 그의 가족, 홍의 재기를 돕는 새롬의 가족을 보며 가족, 혈연으로 이뤄진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가족의 사전적 정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림자 원형 (황주영, 18min, 2023)

특수교사 주영과 학생 준영, 두 사람의 대화 위에 주영과 준영을 비롯해 여러 학생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하지만 대화와 이미지가 하나의 맥락 아래 엮이진 않는다. 제시되는 이미지와 소리가 서로 붙지 않아 작품을 한발 물러서 보게 한다. 주어진 것 안에서 연출자의 의도를 짐작해 보지만, 미완의 상태에서 작품은 끝을 맺는다.


벼루장의 길 (강미희·이병희·임석, 17min, 2023)

언양 반구대에서 녹석(綠石) 벼루를 만드는 유길훈 장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벼루를 만드는 모습을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보았는데 팔과 어깨로 돌을 깨고, 깎아내는 모습을 보며 온몸으로 겪었을 고생이 느껴졌다. 또, 사회에선 무형문화재 혹은 장인으로 불리지만, 가족에겐 노숙자나 다름없다는 그의 말은 현대사회에서 ‘장인정신’을 지키고 이어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외로운 일인지를 실감하게 하였다. 두 달 넘는 시간 끝에 자신의 첫 벼루를 만들었을 때의 그 감정과 스승에게 처음 받은 격려가 지금을 있게 한 동력이 되었다는 장인의 말은 나를 살아있게 하는 순간들이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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