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채록 Jul 16. 2022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BIFAN2022 <붉은 장미의 추억> 리뷰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된 <붉은 장미의 추억>(2022, 백재호)은 필름이 유실돼 시나리오만 남은 고전을 낭독극으로 준비하는 배우들의 연습 과정과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으로 갑작스럽게 공연 대신 비대면 영상 기록으로 대체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동명의 원작은 노필 감독의 1962년 작품으로 형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남자가 진범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았다.

<붉은 장미의 추억>은 당초 2021 용마폭포문화예술축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용마폭포공원의 야외무대에서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오프라인 공연이 어려워지자 영상으로 첫선을 보이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공연실황을 카메라로 담아내는 차원을 넘어 영화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여러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며 공연영상이 아닌 한 편의 영화로 거듭났다.


낭독극은 기존의 연극과 달리 배우들이 고정된 자세로 대본을 읽으며 진행되는데, 역동성을 더하기 위해 배우들은 마이크로 구획된 공간을 오가며 연기를 하고, 조연출 역을 맡은 배우는 종소리로 장면 전환을 알리고, 폴리(Foley) 아티스트가 되어 각종 도구를 활용해 작품에 필요한 소리를 채워 넣는다.


마이크 앞에서 대본을 보며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한 편의 오디오 드라마 녹음 현장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두 개의 마이크를 오가며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카메라가 연기하는 배우가 아닌 조연출의 모습 등을 비출 때는 또 영상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한다. 이러한 연출은 연극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을까?


대사 외에 어떠한 이미지 정보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배우의 연기를 보며 사라진 영화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퍼즐을 하나둘 맞추며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가는 듯한 오묘한 경험을 안긴다. 보는 이에 따라 저마다 다른 이미지를 그리며 영화는 수없이 새로 그려질 것이다. 어쩌면 이 작품을 연극, 영화처럼 특정 장르에 가두기보단 인터랙티브(interactive) 콘텐츠라 하는 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전염병의 세계적 유행이라는 뜻하지 않은 상황이 연극과 영화의 결합이라는 시도로 이르게 되었는데, 1949년 <안창남 비행사>로 데뷔해 17년간 30편의 영화를 만들고, <밤하늘의 부르스>와 같은 흥행작을 남겼지만, 한국영화사에서 낯선 이름이 된 노필 감독. 그를 다시금 조명하는데 가장 적합한 방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