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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jeong Feb 09. 2023

'Creme de la creme'

자네 머리는 말일세, 어려운 걸 생각하라고 있는 거야.

방치된 브런치를 뒤적거리다 보니 참 신기하다. 지금은 모든 글이 서랍에 들어가 있지만, 미래가 없을까 불안해하던 취업준비생, 잘하고 있나 눈치만 보던 첫 입사 때의 글들이 남았다. 이직이라는 이름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때 또다시 브런치를 찾아온 것까지 보면, 나에게 브런치는 불안정한 마음을 어떻게든 안정된 글자로 새겨보려는, 그런 다급한 욕망이 담긴 공간인가 보다.


다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매번 공허한 다짐이 민망하지만.. 이번엔 좀 다른 의미가 있다. 이전에는 그냥 멋진 글을 써보고 싶었던 거라면 이번에는, 혹시 내가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지는 않을까? 그 작은 가능성을 테스트해보려고 한다.



│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한 대행사에서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마케팅 AE로 근무했다. 생각보다 큰 프로젝트도 만나고, 분명 즐거운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말은 혼란과 퇴사였다. 정말 내 일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직업이었던가, 늘 더 잘하고 싶어서 설레었던가. 어떤 가사처럼, 나는 겨우 이런 내가 되려고 그렇게 아팠던 걸까. 퇴사를 한 후에도 그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게 다시 글을 쓰고 싶은 이유가 됐다.


최근 UX writer라는 직무에 흥미가 생겼다. 글을 통해 사용자 경험을 바꾸는 일이다. 이제 막 그 영향력이 생기기 시작한 분야라서, 글을 업으로 삼았던 분들이 첫 시작을 일구는 단계인 것 같았다. 늘 어딘가 한 구석에 남아있던 글에 대한 욕심과 처음 마케팅을 시작했던 이유를 모두 찾을 수 있는 직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벤트용 마이크로사이트를 구성해 봤던 경험들, 수용자를 생각했던 다양한 기획의 경험을 녹여 호기롭게 지원도 해봤지만 당연히 떨어졌다. 지원자격과 우대사항을 꽉 채웠던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글 쓰는 역량을 키워두면 언젠간 UX writer로 날 소개하는 날이 생기기도 할까?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

   "자네 머리는 말일세, 어려운 걸 생각하라고 있는 거야.

    모르는 걸 어떻게든 알아내라고 있는 거라고."


   "그래도 말이야,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 않은 일을 이루어내고 나면,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인칭단수>에 나오는 이 크림 이야기가 나를 강타했었다. 늘 무언가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일이 나는 너무 괴롭다. 항상 결론은 '늦었음', '답이 없음'으로만 나오는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나는 어려운 걸 생각하라고 존재한다.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필요한 정답들을 찾아가야만 한다.


지금 내가 찾고 있는 답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이다. 글을 쓰고 싶고 또 그만한 능력이 되는 사람인지, 솔직히 글에 대해 별생각 없는 건 아닌지 같은 것들. 더 넓게는 그저 유망한 회사를 다니고 싶은 건지, 재밌는 일을 하고 싶은 건지, 회사는 됐고 취미나 여러 개 갖고 싶은지.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겠다는 목표보다는, 그래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건지 모르겠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찾는 중이라는 게 다시 불안하기도 하다. 또 '늦었음', '답이 없음' 에러창이라도 뜨면 어떡하나 싶지만, 그럼에도 내 머리는 어려운 걸 생각하라고 있는 거니까.


그 답을 생각해 내는 과정들을 브런치로 남겨보고 싶다.



   -

   "프랑스어로 '크렘 드 라 크렘'이라는 말이 있는데 크림 중의 크림,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뜻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에센스.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_



솔직히 미래에 대한 고민이 내 생에서 가장 중요한 에센스,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사람, 문장, 행복 같은 것들이다. 그래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일단 돈 버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만들 크림들부터 찾아 나서야 하지 않겠나. 아니다 이걸 찾아나가는 과정 자체가 소중한 크림이지. 어떤 사람들과, 어떤 문장을 그리며,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거니까..?


글을 쓰면 좀 명확해질 줄 알았는데 더 헷갈리는 기분이다. 참나 지금 이러고 있는 게 맞나? 자기소개서 하나라도 더 써야 되는 거 아닐까? 너 다음 달부터 바로 굶어야 되는데.. 하는 생각이 방금 스쳤는데, 오늘은 그냥 이렇게 크림을 생각하는 날로 보내기로 했다.


앞으로 브런치에 계속 글을 남길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크림을 찾아가는 과정들도 쓰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문장들에 대한 글도 쓰고 싶다. 책 리뷰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일상을 담는 블로그랑은 어떻게 분리해 관리해야 할지도 고민된다. 일단은 첫 글을 남기면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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