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뉴욕여행에 필름 카메라를 챙겨갔다. 사진을 많이 찍을 요량으로 필름 두 롤을 챙겨갔지만,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한 롤도 다 채우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오니 가방 속 카메라의 무게를 감당할 여유도, 담아낼 장면도 없어서 몇 달을 묵히다가 어제 겨우 현상소에 다녀왔다. 그간 사진을 찍지 못한 나름의 변명도 있었다. 내가 가져간 카메라는 파노라마 모드가 가능한 똑딱이 필름카메라인데, 여행 중 카메라를 떨어뜨리는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지만 모드를 전환하는 버튼이 고장이 나서, 파노라마 모드로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는 나의 시야를 반영한다. 나는 전체를 이루는 작은 사물들에 관심이 있다. 거대한 세상 속에 하나의 사물이 딱 그만큼의 부피를 차지하고 거기 존재한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는다. 파노라마로 보는 풍경에는 지저귀는 새소리도, 나무를 타고 내려오는 청설모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점처럼 하나의 풍경에 새겨지는 것을 견디기 어렵다. 파노라마로 세상을 보고 싶지 않아서 나는 사진 찍기를 그만두었다.
뉴욕에 다녀온 지 네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이 그리워서 남은 컷을 겨우 채워 필름을 현상했다. 파노라마로 찍은 사진은,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평소에 찍던 사진보다 훨씬 멋있었다. 넓은 시야각은 나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던 존재들을 포착해서 그 순간 속에 간직해 두었다. 영화와 비슷한 비율 덕인지 풍경 속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고, 핸드폰을 들고 혼자 길을 헤매던 내가 이 장면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 같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 무거운 가방을 메고도 들뜬 표정의 여행객, 함께 사진을 찍는 연인. 사진 속에서 그들의 표정을 자세히 살필 수는 없지만 나는 하나하나 그려볼 수 있다. 상상할 수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 같은 외로움을 느낀다. 길가에 쌓인 낙엽을 밟으며 부스럭 소리를 내고 푸른 하늘을 보며 힘껏 숨을 들이쉬는 일도 나의 몫이 아니다. 하늘을 찌르며 늘어선 고층 빌딩을 계속 쳐다보면 그 안에 점처럼 새겨질 수 있을까. 나도 세계의 일부인양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