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에 대한 믿음

좌절은 조용해야 한다.

by 김민영

사회가 바뀔 것이라는 희망이 무너졌을 때, 나의 사회불안증은 조용히 발아했다.


끔찍한 뉴스가 매일같이 쏟아진다. 구독자가 1,000만 명이 넘는 유명 유튜버는 데이트폭력 피해자로 4년간 맞으며 방송을 했고, 폭우에도 작업중지권을 보장 받지 못한 배달 노동자는 결국 사망했다. 고통이 난무하는 뉴스 속에서 정치인의 로비 의혹은 기삿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아픔을 고발하고 권리를 주장할 대상에 대한 신뢰는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데, 이제는 그 대상이 존재하긴 하는지 의문스럽다.


여성이자 청년으로 한국 사회를 살아가면서 내가 마주한 것은 '좌절'이었다. 침몰하는 배 속에서 아이들이 죽어가고 캡사이신이 들어간 물대포를 온몸으로 맞아가며 정의를 울부짖었을 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라는 구호는 10년이라는 세월을 메아리처럼 떠돌고 있다. 지하철에 붙은 '불법촬영 금지' 포스터는 언제까지고 거기에 붙어있을 것만 같다. 불법촬영으로 여성들이 죽고, 버닝썬 게이트라는 큰 파문이 일어났어도 사건이 남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가해자가 풀려나는 세상이니까. 내가 발 딛고 있는 땅이 언제든 구덩이로 변할 수 있는 사회에서 불안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고통에 무감해져야 한다. 불신해야 한다. 의심해야 한다. 부당과 불의에 익숙해져야 한다. 희망과 기대는 멀리해야 한다. 노력과 정당은 함께 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믿으면 안 된다. 더 나은 사회를 꿈꾸면 안 된다. 조용히 좌절해야 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두려운 것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다. 매일 공고해지는 불신에 대한 믿음과 함께 나의 병도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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