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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읽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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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원 Jun 12. 2020

기자포기, 석경

어느 기자 지망생 내 친구의 일 년

석경의 두 번째 책 ‘기자포기’를 읽었다.

‘사막에 누워 별을 봐야지’, ‘사막에 누워 별을 봐야지 개정판’도 나왔으니 정확히 말하면 세 번째인가!

정말 꾸준히 읽고 쓰고 편집하는 당신.. 대단해.

나는 요즘 일기도 자꾸 미루고 쓰는 게 너무 힘든데, 대단하고 부럽다..!


책을 읽으며 돌이켜보니, 2016년의 석경은 내가 같이 학교를 다니면서 어렴풋이 알았던 것보다 훨씬 더 촘촘하게 살았던 것 같다.

지금도 그때의 석경이 광화문 한복판을 뛰어다니는 것 같은 광경이 눈에 선하다. (실제로 광화문에서 나도 인터뷰한다고 만났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나아지지 않는다고,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자책했던 매 순간 사실 난 제법 잘 하고 있었다는 것을. 초조와 불안이 주는 착각이 일시적이라는 걸 몰랐을 뿐이라는 것을. 좀 어리고 경험이 없어 우울을 다룰 줄 몰랐을 뿐이라는 것을. p.8


모두 무의미하더라도 끝까지 의미를 부여하려 애써보자.
의미 과잉. 나는 평론의 언어들을 좋아하지만 그것들을 종이 밖으로 꺼내 입에 머금기에는 민망할 때가 있다. 별별 담론들을 언급해 가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보던 평론가, 교수님들의 표정. 그들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이들을 보던 나의 감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살릴 것은 의미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p.108


나는 항상 ‘할 거야’라고 말한다. 그래서 친구들이 나를 활기차게 보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지 않아. 전혀 그렇지 않아. p.143


불확실함 앞에 서는 것, 불완전한 나의 모습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

그게 과거 한 때의 모습일지라도 그건 큰 용기다.

2016년, 기자 준비생으로서 직장인도 대학생도 아닌 그 사이에 있었던 석경. 어떤 직업을 갖고 사회적으로 ‘안정’ 도장을 받는 다고 정말 안정한가. 그게 아닌데도 그 안정 도장이 없을 때는 왜 그토록 불안했을까.

석경이 말하는 ‘1인분을 못하는 애’가 되는 기분에 너무 공감이 된다. 이쯤 되면 무슨 명함을 내밀어야 하는 게 정답인 것처럼, 그게 사회에 발 디딘 인간으로서의 도리인 것처럼 느껴졌다. 취업 준비 시절이 꽤 짧았던 나도 잠시지만 강렬하게 불안했다. 그게 뭐라고 눈물이 다 나고 그랬다.


그런데 책 속의 석경은 취업이 안돼서 힘든 것만이 아니었다.

더 큰 고민은 ‘무엇이 자신을 살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

석경은 대학생활 내내 이것저것 재밌는 일에 열성을 다했다. 나는 한 편으로 생각했다. 그가 그렇게 자신을 채울 거리를 만든다는 건 공허하다는 것 아닐까, 어찌하든 내가 채워줄 수는 없는 것 같아 적당히 그의 세상을 관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나 연애, 술 같은 걸로 채우기에는 그의 세상이 너무 컸던 것 같다. 깊고 깊어서 그 우물을 채울 어떤 폭우가 간절했던 것 같다.


그 긴 한 해를 버텨내고 무려 그 기록을 내어준 석경이 멋지고 기특하다. 지금 석경은 아주 부러운 백수의 신분이다. 신분은 백수인데 계속 무언가 ‘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러기를 바란다. 꼭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늘 그가 말하는 것처럼 ‘신분’이 아닌 ‘행위’를 실현하는 그 지속이 계속 너를 살게 하고 행복하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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