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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원 Jul 12. 2020

김이나의 작사법

"남의 진심을 통해 내가 쓴 말을 들을 수 있으니까"


평소 읽어보고 싶었던 김이나 작사가의 책.

꽤 두꺼운 책의 분량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성실히 작업해온 똑 부러지는 작사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가 쓴 노래들은 작사를 설명하는 모든 파트의 예시로 쓰이고도 남을 정도로 많았다.


한 번도 내가 예술을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만 좋은 일꾼이라고는 생각해왔다. p.5


'작가의 말' 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예술가가 아니라 좋은 일꾼이라고 말한다. 작사가란 자신의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가사로써 음악이 잘 팔리게(대중의 공감을 얻게) 돕는 역할을 하는 거라고 꼭 말해주고 싶은 듯했다.

음악 일을 하면 예술을 한다고 느낄 법도 한데, 굳이 마다하고 좋은 일꾼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다니 굉장히 철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마음으로 곡에 맞는 가사를 쓰는 거구나. 대중음악 작사가의 작사는 싱어송라이터의 작사와는 분명 다르니까.


그는 가사의 역할을 분명히 알고 있고, 그래서 오래 사랑받는 노래가 되기 위한 가사를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일을 매우 사랑해서 노래를 부를 가수와 멜로디에 맞는 가사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다. 자신이 쓴 가사이지만 결국 가사는 '가수가 부르는 이야기'라며 노래를 통해 위로를 받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가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힐링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씩은 왠지 모를 책임감 같은 게 문득문득 들었던 건 사실이다. 한데 ‘이선희’라는 보컬리스트가 불러준 이 운명론에 관한 곡은, 내가 쓴 어떤 가사보다 진실된 위로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움츠러드는 마음을 해방시켜주는 것 같았다. 역시 가사는 ‘가수가 부르는 이야기’이지, ‘작사가가 쓰는 글’이 아니라는 점을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p.136
작사가라는 직업이 이럴 때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의 말을 가사로 쓰면, 남의 진심을 통해 내가 쓴 말을 들을 수 있으니까. p.208


<모두의 작사> 수업을 들으며 나는 잠시 작사에 폭 빠져있었다. 아주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고통스러우면서 재밌는 작업이라는 것도 알아버렸다. 이 책도 마치 내가 작사가 지망생이 된 것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작사 수업이 싱어송라이터의 작사, 예술에 가까웠다면 김이나의 작사법은 철저히 대중음악의 작사법이다.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멜로디'가 외모라면 '가사'는 성격과 같다는 말은 동일하다. 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든지 간에 노래의 완성을 위해 가사의 단어와 발음은 수정수정 다듬다듬어져야 된다는 것도.. (경험담)


멜로디가 얼굴이라면 가사는 성격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멜로디는 말 그대로 얼굴과도 같아서, 첫 호감을 끌어오는 역할을 한다. 대중들은 대게 멜로디로 곡을 인지하고, 반복해서 듣다가 그제야 가사에 귀 기울인다. 남녀관계에서는 상대가 아무리 잘생기고 예뻐도 성격이 별로 좋지 않으면 감정이 금방 식고, 외모도 호감인데 알아갈수록 성격까지 좋으면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가사가 좋으면 곡은 롱런한다. p.21
다양한 테마와 캐릭터를 위해서라도, 자꾸 눌러만 놓는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보자. ‘이불 차고 하이킥’하는 순간을 빨리 지나쳐 버리려고만 하지 말고, 지금 내가 얼마나 구질구질한지, 이 구질구질한 감정의 원인은 정확히 뭔지, 지금 심경이 어떤지 등등을 세밀하게 살펴보자. 그 누구보다 우선 나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응시할 줄 알아야 대중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다. p.271


요즘 내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것 같다’ 는 생각과 동시에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가?’ 생각도 든다. 말로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정작 꾸준히 하는 것은 없지 않나? 하며 자책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사 수업을 듣고 이 책을 읽기를 잘한 것 같다.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가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때로는 구질구질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마음을 잘 살펴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 내 말이 글이나 가사가 될 때, 누군가가 속으로 반짝 반겨줄 공감의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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