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청각 아카이브 기업 Archipop 탐방기
근대 아카이브는 권리, 권력을 민(民)에게 부여한 가장 상징적인 개념이자 공간입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실현되었죠. 이후 프랑스는 아카이브 문화가 대중에게 널리 퍼져 있는 ‘아카이브 문화 선진국’으로 각인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일부 번역되는 몇몇 논문이나 도서를 제외하면 아직은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일선의 사람들, 그 속에서의 요즘 분위기들, 사용하는 툴이나 프로그램 마음가짐들... 어느 하나 명확히 아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아카이브 환경이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아주 일부이지만 직접 방문하고 들어 본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아치팝이 자체 프로젝트로 수집한 컬렉션 중 일부 자료를 웹사이트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DIAZ에서 공개 설정한 데이터가 웹사이트에서 검색되는 구조입니다. 주목할 만 한 점으로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디지털 아카이브의 것보다 메타데이터 항목이 좀 소략합니다. 처음엔 이렇게 적은 정보를 제공하면 사람들이 맥락정보를 충분히 얻기에 부족함이 있을 것 같아 걱정도 되었습니다. 필름 제작자, 연도, 장소, 재생길이, 흑백여부, 포맷, 음성, 장르, 컬렉션, ID번호 정도가 웹사이트에서 제공되는 메타데이터입니다. 이 메타데이터는 태그로도 활용해서 검색에 쓰이고요. 우리나라에서는 기록물 한 건을 조회하면 참조정보, 계층정보, 출처정보, 내용정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는 게 미덕처럼 여겨지는데, 좀 신기했습니다.
https://lesfilms.archipop.org/les-films-salle-de-bal-robinson-570-4301-1-0.html?
그런데 아치팝의 작업자들은 자료를 입수하면서 매우 상세한 기술 작업을 합니다. 관리타입도 앞서 설명한 엔티티 8가지 이상으로, 각 타입마다 수십 가지의 메타데이터를 입력해야 합니다. 포맷정보, 내용정보, 맥락정보를 철저히 획득하기 위해 필름 동영상을 며칠씩 돌려 봅니다. 돌려본 동영상이 수집 정책에 맞지 않으면 수십 시간에 걸쳐 파악한 내용이라도 과감히 인덱싱 목록에서 삭제합니다. 인덱싱 작업에서 개인정보나 초상권, 인권 침해에 대한 내용이 발견되면 편집 작업도 합니다. 이런 수고로움으로 등록한 정보를 왜 다 보여주지 않는 걸까요? 좀 많이 아까운 데요.
“굳이 사이트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든 메타데이터를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어요. 자세한 정보가 더 알고 싶은 사람은 이 동영상을 어딘가에 사용하려는 목적이 있을 거고, 그런 사람을 원본을 쓰기 위해서 어쨌든 우리에게 직접 연락할 수밖에 없어요.”
다큐멘터리스트 보나미(Bonamy) 씨가 한 말은 아카이브 자료에 대한 서비스 관점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리해 보면 아치팝의 웹사이트는 일종의 상당히 고도화, 조직화된 인덱스입니다. 여길 통해 사람들이 자료의 존재를 확인하는 게 1단계고요. 그 다음 2단계, 즉 실질적 활용을 위한 요청은 별도로 하라는 겁니다.
아치팝은 디지털 아카이브를 방문하는 이용자에 대해 간단하고도 명료한 구분과 그에 따른 서비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료 한 건에는 메타데이터 몇 가지, 컬렉션에는 이해하기 쉬운 수준의 몇 줄짜리 설명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웹사이트에 접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료의 분석이나 연구같은 본격적 니즈를 갖기보다는 옛 프랑스의 일상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온 방문자나 내 기록을 구경하기 위해 접속한 기증자일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은 정보의 홍수에 압도되면 오히려 한두 번 클릭하다 자료의 유용함을 만끽하지 못한 채 창을 꺼버릴 수도 있습니다. 며칠씩 걸려 한 땀 한 땀 기술한 노고가 아까워, 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는 심리에 그만 모든 메타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 디지털 서비스 환경에 과연 적합할지 의문이 생깁니다.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아치팝은 이용자가 느끼기에 덜 부담스럽고 더 이해가 빠른 방식을 채택한 것입니다.
물론 아치팝의 심플한 접근법이 정답은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 자료에 대한 정보가 충실하고 풍부하게 달려야만 활용도가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다만, 아카이브는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나열’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압도’되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자료를 카탈로그처럼 둘러볼 수 있도록 열어두고, 자신이 필요한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배려의 테크닉과 그 이면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이 포인트라고 할까요. 또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불특정 이용자와 실질적 소비자를 구분하여 자료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적합한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