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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키비스트J May 15. 2023

오래된 사진 보존하기

이 맛에 아카이빙 하는 뿌듯함

오래된 앨범에서 사진을 꺼내어 모두 스캔했습니다. 일단 스캔이 끝난 사진 기록들은 원래 들어 있던 앨범에 원래의 질서 그대로 넣어두었습니다. 그런데, 스캔하다 보니 부식되고 눌어붙은 사진이 꽤 많더라고요. 또 앨범에 보관된 게 아닌 낱장의 사진들은 그냥 종이봉투에 넣어두면 상할 것 같고...


역시 어디에선가 보고 배운 건 있는 이 초짜 아키비스트는 단기노동자로 대학기록관에 근무하던 시절 만져 보았던 사진보존 필름이 떠올랐습니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는 기록물 보존용품 전문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기본에 충실한 아카이브 보존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여느 날처럼 아카이빙 뽐뿌가 샘솟았던 주말 오후에 말이죠.



1. 사진의 원래 보관상태

앨범의 사진들은 통기가 잘 되는 얇은 에코백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무덥고 습한 여름날에도 사진들에 크게 손상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앨범이 세로로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주의 깊게 꺼내지 않으면 접착력이 떨어진 비닐면이 줄줄 새어 떨어져 나오기 일쑤였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시듯이, 인화된 흑백사진들은 저마다 겹쳐져서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들도 있었죠. 또 곰팡이 같은 징그러운 것들도 많이 붙어 있었어요.

처음 앨범을 받았을 때의 상태. 순서도 뒤죽박죽, 마구잡이로 비닐에 끼워져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 있는 상태가 끔찍하다.


2. 사진의 규격 정량화

아카이브코리아라는 쇼핑몰을 찾아보니 사진 사이즈별로 다양한 사진보존필름 내지가 있어서, 지금 가지고 있는 사진들의 규격을 어느 정도 정량화하기로 했습니다. 사진의 가로와 세로를 센티미터로 재고 비슷한 크기의 사진들을 모아 수량을 체크했어요. 이렇게 만든 목록을 엑셀 파일에 옮기고, 사진보존필름 품목별 규격과 맞추는 작업을 했죠.

옛 사진들은 크기가 제각각인 것들이 많아서, 대충 비슷한 것들끼리 묶기도 했다.
대충 손으로 쓴 규격들을 표로 정리해 보았다. 생각보다 종류가 많다.


3. 보존용품 주문

가격대가 꽤 나갔지만 앞으로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 보존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투자라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결제버튼을 눌렀습니다. 사진보존필름 4종과 내지 50장이 들어가는 중성보존상자를 구매했는데요, 13만 원이 넘는 가격에 손발이 떨렸습니다. 부디 헛되게 쓰는 돈이 아니어야 할 텐데, 사진 크기가 맞지 않으면 어떡하지? 규격을 잘못 계산해서 필름이 모자라면 어떡하지? 배송은 하루 만에 왔습니다. 주문을 전날 오전에 했는데 1시간도 안되어 발송완료 처리 문자가 오더군요.

사진보존용 필름은 이렇게 생겼다.


4. 사진기록물을 필름에 배치

최대한 원래 앨범에 있었던 순서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작은 사진들이 많았는데 빈 공간이 아까워 한 포켓에 두 장을 넣은 것도 있어요. 앨범 없이 낱장으로 있던 사진들은 최대한 시간 순서대로 넣었습니다. 부식 방지 처리를 하지 않은 게 흠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큰 작업을 하기엔 부담이 컸어요. 그래도 이 필름들은 보존을 목적으로 특수 원재료를 써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단은 안심입니다. 필름은 반들반들하고 부드러운 재질이지만 적당히 탄탄해 사진 인화지를 잘 받쳐주고, 녹아서 달라붙지 않도록 코팅이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 사진들.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보통 실물 기록물을 정리하게 되면 아카이브에 등록된 등록번호를 라벨링 해주어 나중에 찾기 편하게 하는 게 정석인데요. 이 작업을 할지는 아직 고민 중입니다. 중성 라벨지도 구입해야 하고, 작업이 많아 부담스럽기보다는 이렇게 적은 양의 사진에 꼭 필요한 작업인지 재어보는 중입니다. 어쨌거나 걱정거리 하나는 덜었습니다. 눕혀서 보관하니 사진도 쏟아지지 않고, 펼칠 때마다 떨어지던 70년 된 부스러기를 더 이상 치우지 않아도 되니까요. 무엇보다도 사진들이 더 이상 손상되지 않도록 잘 보관해 두니 안심이기도 하고 뿌듯합니다. 아무리 목록을 잘 작성해 둔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이 정리된 상태 그 자체가 바로 아카이빙의 참맛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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