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비스트 눈으로 본 건물 서사 [힐튼서울 자서전]

전시 답사기

by 아키비스트J

서울 중구 퇴계로6가길 30, 피크닉 전시공간에서 '힐튼서울 자서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12월 13일 토요일, 이 전시장 4개 층을 아우르는 한 권의 자서전을 마주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건물입니다. 1983년 남산 아래 세워져 40여 년 동안 한국을 대표했던 힐튼서울(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 그 건물의 일대기입니다.






철거되는 건물이 남긴 이야기


2025년 12월 13일 토요일 오늘, 한국기록전문가협회 전시분과 모임으로 힐튼서울 전시를 찾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오전 11시부터 정성규 큐레이터의 도슨트가 시작된다고 하더군요. 이런 행운이! 유해(遺骸)와도 같은 건물의 조각과 기록, 그리고 그것을 재해석한 작품들 사이를 걸으며, 한 건물의 일대기를 따라 시간을 거슬렀습니다.



전시장 곳곳에 걸린 철거 현장의 사진들, 무너져 내리는 콘크리트와 뜯겨 나가는 커튼월(건물 바깥 유리외벽을 뜻함), 드러난 철골 구조는 폐허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정성규 큐레이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철거는 힐튼서울의 속살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 당시 기술력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역으로 볼 수 있었어요."


김종성 건축가와 힐튼인터내셔널이 주고받은 서신들, 손으로 그린 5,000장이 넘는 청사진들, 승강기 버튼 하나까지 디자인한 흔적들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김종성 건축가,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첫 한국 제자이자 MIT 교수였던 그는 힐튼서울을 맡기 위해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건물을 자신의 첫 한국 프로젝트로 삼았습니다. '마스터 아키텍터', 즉 토탈 디자이너로서 건물의 모든 디테일을 직접 설계했다고 합니다. 분수대와 조명, 심지어 서체까지 그의 손을 거쳤습니다. 힐튼서울은 단순한 건축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의 철학을 담은 작품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건물이 완공된 이후에도 이 관계가 계속되었다는 점입니다. 90년대, 2000년대 리노베이션이 있을 때마다 힐튼 측은 김종성에게 연락했고, 건축가는 가이드를 제공했습니다. 설계자가 40년 넘게 건물의 생애를 함께한 것입니다.


이 전시는 힐튼서울의 자서전인 동시에, 건축가 김종성에 대한 헌정이기도 했습니다.






아카이브가 없으면 서사도 없다


벽면에 전시된 객실 카펫 조각들을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이랬습니다. 만약 이 전시가 없었다면, 이 모든 이야기는 그냥 사라졌을 것입니다.


정성규 큐레이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지하 창고의 캐비넷을 열어서 찾아낸 자료들이 많습니다. 이지스자산운용(당시 힐튼호텔 건물 소유주)에서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자재들과 오브제들을 저희가 공사 전에 구출해 왔고요."



지하 창고의 캐비넷을 여는 순간은 어땠을까요. 고대 무덤을 여는 고고학자처럼, 전시팀이 마주한 것은 먼지 쌓인 창고였을까요, 아니면 깔끔한 호텔 지배인이 캐비닛에 반듯하게 정리해둔 자료들이었을까요. 혹은 철거가 시작된 혼란 속에서 여기저기 깨지고 나뒹굴고 흩어진 파편들이었을까요.


전시팀은 건축가와 운영진을 인터뷰하고, 40년 동안 힐튼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기억을 수집했습니다. 개인이 갖고 있던 필름 자료들, 사진들, 서류들이 인터뷰를 계기로 하나둘 세상에 나왔습니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말이죠.



하지만 큐레이터의 말에는 아쉬움도 담겨 있었습니다.


"내일 부서진다고 해서 급하게 들어가 뜯어온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놓친 부분들도 많았을 겁니다. 전시가 끝나고 이 자료들이 어디로 이관되지 않으면 또 없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의 건축 아카이브는 늘 전시가 먼저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한국과 일본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일본은 이미 아카이브가 존재하고, 그걸 전시로 보여줍니다. 근데 한국은 전시를 통해서 아카이브를 만들어냅니다. 전시가 아카이브의 필요성을 촉발해야 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어요. 책무가 너무 많은 거죠."


70-80년대 지어진 건물들이 지금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100년이 넘어야 문화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고, 50년 된 건물에 대한 보호 규정은 없습니다. 30년이면 재개발할 수 있는 시기로 보는 한국에서, 건물은 그저 자산일 뿐입니다.



하지만 정성규 큐레이터는 전시의 목적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저희는 힐튼서울을 보존해야 된다, 철거해야 된다, 그런 입장이 아닙니다. 이 전시를 통해서 40, 50년 된 건물들을 우리가 그냥 부순다가 아니라, 관심을 더 갖게끔,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자리들이 앞으로 촉발되길 바랍니다."





모든 정체성에는 서사가 있다


힐튼서울의 3D 스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AI로 재구성한 아트리움 공간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건물도, 사람도,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체성이 뚜렷한 모든 것에는 반드시 서사가 있습니다.


힐튼서울은 단순히 호텔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1980년대 한국이 국제화를 꿈꾸던 시대의 상징이었고,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뷔페 문화를 전파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술 혁신의 현장이었습니다. 김종성은 해외 기술을 단순히 수입하는 대신, 국내 기술자들과 협업하며 커튼월을 국산화했습니다. 남산알루미늄, 효성알루미늄 등과 함께 새로운 건축 기술을 개발했고, 그곳에서 배운 기술자들이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40년 동안 그곳에서 일한 사람들은 '국제 기준의 서비스를 한국에 알린다'는 자부심으로 매일을 살았습니다.



그 서사가 없었다면, 힐튼서울은 그저 철거 대상 1호로만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아카이브는 관심이다


그렇다면 아카이브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정성규 큐레이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관점에서는 결국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이 딱딱하고 무거운 형체일 수도 있는데, 이 속에서 벌어진 다양한 만남, 기억, 추억, 이 건물 자체에 대한 인상...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계속 모으고 가져가는 시점이 이제는 필요하지 않을까."


아카이브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관심입니다.



저장 가능성이 커졌다고 해서 기록이 더 오래 살아남는 것은 아닙니다. 디지털 시대에 핵심은 보존 그 자체보다, 보존된 것에 접근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다시 말해, ‘남아 있음’과 ‘쓰임’은 다른 문제입니다. 정보가 늘어나는 만큼, 그것을 읽고 의미를 부여할 주의는 더 희소해집니다.


그래서 관심은 단순한 감상이 아닙니다. 관심은 기록을 활성화하는 조건이며, 물리적 보존 상태에 머물던 기록을 사회적 기억의 층위로 ‘올려’ 작동하게 만드는 전환 장치입니다.



힐튼서울이 바로 그 과정을 보여줍니다. 40년 동안 지하 창고에 잠들어 있던 자료들은 물리적으로는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접근 불가능했고, 의미도 활성화되지 않았으며, 누구의 기억도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이 건물의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캐비넷을 열어 자료를 찾았고, 건축가를 찾아가 인터뷰를 기록했으며, 철거 현장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관심이 1년간의 전시 준비로 이어졌고, 지금 우리는 한 건물의 자서전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가 기억을 만드는가


전시장을 나서기 전, 한 텍스트 패널 앞에서 다시 한번 멈춰 섰습니다.


"건축기록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동일한 도면이라도 의도와 실현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전시는 종종 이 불완전성을 덮고 통일된 서사를 만들어내려 한다. 결국 아카이빙은 사실의 저장이 아니라 해석의 정치다."



'누가 기록을 남기고, 누가 해석하며, 누가 전시하는가.' 아카이브는 중립적 저장소가 아닙니다. 무엇을 남기고 버릴지, 어떻게 배치하고 설명할지, 그 모든 선택이 권력이자 해석입니다.


관심은 구원인가, 권력인가. 양쪽 모두입니다. 관심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케어(care)로서의 관심입니다. 망각을 막고 잠든 과거를 깨우는 힘. 다른 하나는 권력(power)으로서의 관심입니다. 무엇을 남길지 선택하고 어떻게 해석할지 결정하는 힘.


힐튼서울 전시가 전시 안에 '건축기록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메타 비평을 포함시킨 것은 바로 이런 성찰입니다. 큐레이션의 권력을 감추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관람객은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능동적 해석자가 됩니다. 완벽한 중립성은 불가능하지만, 성찰적 실천은 가능합니다.





기억의 위계


디지털 시대, 저장할 수 있는 기억은 무한하지만 그것에 접근할 관심은 여전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기억에도 위계가 생깁니다. 일부는 '기억될 권력'을 갖고, 다른 일부는 '망각될 운명'을 지닙니다.


힐튼서울은 거의 망각될 뻔했습니다. 50년 된 건물은 법적 보호 대상이 아니고, 30년이면 재개발 대상인 한국에서 누군가의 관심이 없었다면 조용히 사라졌을 것입니다.



이 전시는 '집단 메모리얼'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도면, 건축가의 개인 자료, 호텔 직원들의 구술 증언, 민간 자본의 소유권, 큐레이터의 해석, 관람객의 시선이 모두 겹쳐지면서 만들어진 기억입니다. 국가기록원처럼 완전한 레거시 메모리얼도 아니고, 개인 단위로 분절된 온전한 마이크로 메모리얼도 아닙니다.



이것이 21세기 아카이브의 새로운 가능성입니다. 아카이브가 더 이상 국가나 기관의 전유물이 아니라,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공유지(commons)'가 될 수 있다는 것. 기억의 위계를 완전히 허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위계를 가시화하고 다시 쓸 가능성을 엽니다.





자서전은 쓰여진다


건물에도 자서전이 있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건물에는 자서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관심에 의해 '쓰여집니다'.


힐튼서울의 40년 서사는 지하 캐비넷 속에 잠들어 있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존재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과 같았습니다. 전시팀이 캐비넷을 열고, 건축가를 찾아가고, 철거 현장에 들어간 순간, 그 자료들은 비로소 '읽힐 수 있는'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 자서전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요. 김종성 건축가인가요, 전시팀인가요, 호텔 직원들인가요, 관람객인가요. 정답은 '모두'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제도적 권위, 건축가의 개인 기억, 민간 자본의 소유권, 큐레이터의 해석, 관람객의 시선이 모두 겹쳐지면서 만들어진 서사입니다.


저장할 수 있는 기억은 무한하지만, 그것에 접근할 관심은 여전히 희소합니다. 내가 만드는 것, 내가 속한 조직, 내가 관계하는 모든 것들의 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들은 저절로 남지 않습니다. 누군가 캐비넷을 열어야 하고, 인터뷰를 기록해야 하며,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그 관심이 있을 때 비로소, 건물에도 자서전이 '쓰여집니다'.




힐튼서울 전시: https://www.piknic.kr/home/include/board_view.php?SEQ=CATEEXHIBITION0015&PROGRAM_CD=&page=1&search_text=

전시기간: 2025.9.25~2026.1.4

티켓정보: https://booking.naver.com/booking/5/bizes/619865/items/7080810?preview=1&startDateTime=2025-12-13T00%3A00%3A00%2B09%3A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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