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곤도 세 개의 뇌를 쓴다

by 아키비스트J

지난 12월 9일, 미국 국방부가 구글의 제미나이를 기반으로 한 'GenAI.mil' 플랫폼을 공식 출범했습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미국 전쟁의 미래는 AI"라고 선언하며, 300만 명의 군인과 민간 직원 모두에게 생성형 AI 도구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언뜻 보면 또 하나의 빅테크 기술 도입 뉴스에 불과해 보입니다.


2560px-The_Pentagon_January_2008.jpg By David B. Gleason from Chicago, IL - The Pentagon, CC BY-SA 2.0, https://commons.wikimedia.org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펜타곤에는 이미 팔란티어라는 강력한 AI 시스템이 있지 않았던가요?


팔란티어의 '고담(Gotham)'과 'AIP'는 수년간 미군의 데이터 분석과 의사결정을 지원해왔습니다. 전장의 모든 데이터를 연결하고, 표적을 식별하며, 작전을 최적화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렇다면 왜 펜타곤은 환각(hallucination)이라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또 다른 AI를 도입했을까요?



What을 아는 시스템, Why를 읽는 시스템


두 시스템이 공존해야 하는 이유는 기능의 중복이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팔란티어는 '사실의 세계'를 다룹니다. 이 시스템에서 탱크, 소대, 미사일, 보급품은 모두 고유한 식별 코드를 가진 객체이며, 명확한 속성과 관계로 정의됩니다. 센서가 적을 감지했다는 데이터는 참 아니면 거짓이고, 연료가 부족하면 전차는 멈추며, 재고가 없으면 발사할 수 없다는 물리적 법칙이 지배하는 공간입니다. 팔란티어는 'What'에 대한 정확한 답을 제공합니다.


반면 구글의 GenAI.mil은 '해석의 세계'를 다룹니다. 전쟁의 상당 부분은 숫자보다 모호한 언어와 맥락 속에 존재합니다. 적군 지도부의 사기 변화, 동맹국 외교 전문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 감청된 통신의 맥락. 이런 것들은 데이터베이스의 행과 열에 담기 어려운 비정형 정보입니다.


팔란티어가 '좌표 37.5, 127.0 지점에 적 전차 5대 확인'이라는 사실을 보고할 때, 구글의 AI는 '왜 이 시점에 이 위치인가'를 해석합니다. 과거 패턴과 문서를 분석하여 '이 기동은 실제 공격보다 정치적 압박 목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론하는 것이죠.



서류 캐비닛과 도서관, 기억의 두 가지 건축


이러한 차이는 정보를 저장하고 검색하는 기술적 구조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바로 온톨로지(Ontology)와 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의 차이입니다.


온톨로지는 완벽하게 정리된 서류 캐비닛과 같습니다. 모든 정보는 미리 정의된 칸에 들어가야 하며, 이를 통해 데이터 간의 관계를 정확하게 추적할 수 있습니다. '이 전차 부대가 멈추면 어떤 작전에 차질이 생기는가'라는 질문에, 연결된 관계를 따라가며 '3일 뒤 도하 작전 불가, 5군단 측면 노출'이라는 정확한 답을 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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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류 캐비닛에는 사각지대가 있습니다. 미리 만들어둔 칸에 맞지 않는 정보는 저장할 곳이 없습니다. '해당 부대장이 최근 개인적 문제로 판단력이 흐려져 있다'는 정보는 어디에 넣어야 할까요? 온톨로지 시스템은 장비의 상태는 완벽히 파악하지만, 그 장비를 운용하는 인간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RAG는 거대한 도서관에 가깝습니다. 수백만 건의 문서를 의미 단위로 색인해 두었다가, 질문과 유사한 맥락의 문서를 찾아 답을 생성합니다. 정비병이 '엔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입력하면, 10년 전 다른 부대의 비공식 메모에서 비슷한 증상과 해결책을 찾아 연결해줍니다. 미리 정의된 구조 없이도 새로운 지식을 즉시 흡수할 수 있는 유연함이 강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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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세컨드 브레인과 펜타곤의 공통점


흥미로운 점은 이 구조가 개인의 지식 관리 시스템과 닮아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3 Brains'라는 프레임으로 이 구조를 탐구해왔습니다.


제1뇌는 인간입니다. 동기를 부여하고, 판단하며, 최종 책임을 집니다. 제2뇌는 디지털 아카이브입니다. 옵시디언 같은 도구로 정보를 구조화하여 보존합니다. 제3뇌는 AI입니다. 패턴을 찾고, 연결하며, 해석을 제공합니다.


펜타곤의 이중 전략을 이 프레임으로 다시 보면 어떨까요?


팔란티어는 제2뇌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전장의 모든 엔티티를 구조화하고, 관계를 정의하며, '이것이 사실이다'라는 기록을 남깁니다. GenAI.mil은 제3뇌입니다. 맥락을 읽고, 패턴을 발견하며, '이것은 이런 의미일 수 있다'는 해석을 제공합니다. 지휘관이라는 제1뇌가 두 시스템의 정보를 종합하여 최종 결정을 내립니다.



제안하는 AI와 실행하는 AI


여기서 결정적인 분리가 일어납니다. GenAI.mil은 'Soft Decision'을 담당합니다. 상황을 해석하고 시나리오를 제안하지만, 물리적 행위를 직접 수행하지는 않습니다.


반면 팔란티어 AIP는 'Hard Decision'을 실행합니다. 무기 통제, 보급, 병참 시스템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 승인이 떨어지면 현실 세계가 변화합니다. '트럭 5대를 A지역으로 배차하고 드론 2기를 띄운다'는 제안이 곧바로 명령이 되는 구조입니다.


이런 분리가 필요한 이유는 책임 추적 때문입니다. 생성형 AI는 확률적으로 답하고, 때로 환각을 일으킵니다. '왜 미사일을 발사했는가'라는 질문에 'AI가 그렇게 추천해서'라는 답변은 군사 작전에서 용납될 수 없습니다. 팔란티어는 센서 데이터, 규칙, 승인 기록에 의거한 완벽한 감사 추적(Audit Trail)을 남깁니다.



도구의 오케스트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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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방부는 하나의 만능 AI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지능을 조합하려는 것입니다. 국방부 CDAO의 에밀 마이클 CTO는 "구글 외에도 오픈AI, 앤트로픽, xAI 등 다른 AI 모델들도 GenAI.mil에 추가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단일 벤더에 종속되지 않고, 각 AI의 강점을 조합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이 전략은 개인의 지식 관리에도 시사점을 던집니다. 우리는 흔히 '최고의 도구 하나'를 찾으려 합니다. 최고의 노트 앱, 최고의 AI를 갈망하죠. 하지만 펜타곤의 사례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진정한 지적 생산성은 가장 뛰어난 도구 하나가 아니라, 서로 다른 도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연결하는 능력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아카이브로 사실을 구조화하고, AI로 맥락을 해석하며, 인간이 최종 판단을 내리는 것. 이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우리는 정보를 지식으로, 지식을 통찰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강의 군대가 선택한 AI 전략의 핵심이, 한 개인이 노트 앱과 AI를 엮어 만드는 세컨드 브레인의 원리와 본질적으로 같다는 사실. 이것이 AI 시대가 보여주는 흥미로운 수렴인 것 같습니다.





[참고]


- [Pentagon rolls out GenAI platform to all personnel, using Google's Gemini](https://breakingdefense.com/2025/12/pentagon-rolls-out-genai-platform-to-all-personnel-using-googles-gemini/) - Breaking Defense (2025.12.9)


- [Pentagon taps Google Gemini, launches new site to boost AI use](https://www.defensenews.com/pentagon/2025/12/09/pentagon-taps-google-gemini-launches-new-site-to-boost-ai-use/) - Defense News (2025.12.9)


- [美 국방부, 구글 제미나이 전면 도입…AI 전력 본격화](https://www.seoul.co.kr/news/international/USA-amrica/2025/12/10/20251210500037) - 서울신문 (2025.12.10)


- 이승현, '왜 美 국방부는 팔란티어가 있는데, 구글을 도입했을까?' (Facebook, 2025.12.15) - 본 글의 문제의식에 영감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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