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SD와 함께 살아가기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30대 언젠가부터 내 삶의 흔적을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 깨달은 점, 이해하기 어려웠고 이해할 시도조차 못 했던 나 자신에 대해 탐구해왔던 여정들... 지금도 '나와 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과정들을 글로 남겨 혹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거나 자기돌봄을 실천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울 듯 하다.
30대 시절, 당시에는 주어진 내 삶의 조건에 최선을 다하는게, 그저 하루하루 적응해 살아가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글을 통해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다는, 공감하고 공감받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 게 최근의 일이기에 이제야 글을 써보려 한다. 여전히 '단지 나의 이야기가 하고 싶다'에 머물렀다면 이런 시도를 하기 어려웠을거다. 나의 귀차니즘 성향상...
한편으론 아마 익숙치 않았던 것 같다. 뭔가 내가 원하는 걸 '지금 당장' 시도해보는게... 어릴 적 부터 그게 나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상자 속에 갇혀서 살아온 기분이랄까.. 다행히도 주어진 일은 늘 최선을 다해 해냈고 (때로는 내가 가진 에너지 한계를 넘어서는 일들까지) 기본적으로 뭔가를 새로이 알게 되는 기쁨을 즐기는 학문적 탐구심이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던 나였기에 사회적으로는 나름의 성과를 이루어내고 살아왔지만, 내 안의 원인모를 붕 뜬 기분, 어딘가에 닻을 내리지 못한 듯한 내 존재에 대한 불안정성은 내 평생 나를 따라다닌 감정이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불안', '두려움', '공포'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하지만 놀랍게도 고등학생 시절 나는 내가 불안을 느끼지 않는 용감한 사람이라고 으스대며 다녔었다. 사람들을 웃기는 캐릭터로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가벼운 관계들을 이어나갔다.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게 아니었다면 내 상황에서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영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덕분에, 선생님들과도 학생들과도 무리없이 '재밌는 친구'로 불리우며 잘 지낼 수 있었기도 하다.
이쯤되면 이 사람 뭔가 사연있네 싶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순탄한 삶을 살아오진 않았다. 어찌보면 꽤나 굴곡진 삶의 여정을 지금도 지나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 오늘의 나는 내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고, 나에게 맞는 삶의 방향으로 조금씩 방향을 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의 아름다움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매일 산책을 하러 나가고 동네 산책로의 알록달록 단풍든 나뭇잎들과 연녹색 여린 잎들의 조화에 미소지을 수 있으며 그 길 위에서 만나는 귀여운 동물 친구들을 바라보며 (오리들, 까치들, 비둘기들, 심지어 오늘은 얕은 언덕 위에서 햇살 즐기는 너구리를 만남) 아름다운 자연 속에 나와 저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구나 싶어 자못 행복해진다.
물론, 여전히 때때로 깊고 어두운 나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갈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게 나의 전부가 아님을.. 그저 잘 살아내려 애써온 과정 중에 생긴 생채기이므로, 그럴 땐 그냥 그대로 잠깐 주저앉아 쉬어가도 됨을.. 나에게 이런 '쉼'을 허락하기까지, 원하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인생에서 이런저런 '시도'해보는 것을 허락하기까지 족히 30여 년이 걸린 것 같다. 사실 그 이후로도 시행착오가 많았고 이제야 좀 내 삶을 내가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 지 모르는 가장 불안정한 현재의 상황에서 나름의 안온함을 느낀다. 내가 나의 불완전함을 드디어 받아들여서일까.. 그래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안할 수 있게 되어서일까..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다른 나라에서의 삶을 계획 중인 지금, 이상하리만치 차분하다. 다른 언어로 직장생활을 하고 동료들과 고객들과(?) 소통할 것에 대해 많이 걱정되고 두렵지만, 내게 인생엔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허용하는 내가 너무 생소하면서도 고맙다. 늘 안정된 삶을 추구해왔지만, 15년여 직장생활 끝에 아무리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나 자신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이제는 오래 전부터 마음 속에 꼭꼭 숨겨뒀던 나의 호기심과 탐구심을 채워줄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 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삶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색깔과 차곡차곡 쌓아올린 개성있는 모양으로 생생하게 빛나길 바라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