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서편제>
뮤지컬 <서편제>는 2010년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와 임권택의 영화 <서편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한국 창작뮤지컬이다. 2012년도 재연, 2014년도 삼연, 2017년 사연이 진행되었으며, 올해가 오연이다. 영화와 소설은 득음을 위해 유랑 길에 오르는 부녀의 이야기를 동호가 들려주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 반면, 뮤지컬은 송화, 유봉(송화의 아버지), 동호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
본 작품은 오랜 시간 관객에게 사랑받아왔지만, 매 시즌 적자가 나거나 가까스로 적자를 면했다. 그 이유로 한국적인 소재, 판소리와 국악이라는 비대중적인 장르와 동시대성의 감수성과 맞지 않는 ‘한’ 등이 그 이유로 손꼽힌다. 작년 10주년 공연을 준비 중이었으나 팬데믹으로 인해 취소되었고, 원작 저작권 사용 기간이 만료되어 올해 공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무대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작품의 제목인 ‘서편제’는 판소리의 한 유파로서 광주광역시를 비롯한 전라남도 나주시, 보성군, 강진군, 해남군 등지에서 성행했으며 특히 섬진강 서부에 위치한 지역을 중심으로 행해졌다. 동편제와 서편제는 섬진강을 기준으로 하여 나뉘는 유파로서 동편제(東便制)는 엄하고 강한 반면, 서편제는 부드러우면서도 세심한 것이 특징이다. 전반적으로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계면조적 경향이 강한 서편제는 슬프고 원망스러운 느낌을 처절하게 잘 그려내고, 정교한데 이것이 송화의 소리에 녹아있다.
본 평에서는 서편제가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만들어짐으로써 갖게 되는 의미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때, 송화와 동화의 관계, 그들의 음악을 통해 이 점이 대두된다.
우리 소리인 판소리를 하는 송화와 그의 아버지 유봉, 그리고 서양 소리를 하고자 하는 동호가 주요 인물로서 극을 이끌어간다. 송화와 동호는 유봉과 동호의 어머니가 결혼하게 되면서 가족(이복남매)으로 묶이게 된다. 이때, 한 가족이 된 남매가 서로 다른 소리의 길을 걷는 것은 근현대화를 거치며 변해가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의 변화를 보여준다. 송화와 동호는 유년 시절 유봉의 밑에서 판소리를 배운다. 하지만, 판소리가 자신의 소리라고 믿는 송화와 달리 동호는 이 소리가 자신의 엄마를 죽였다고 생각하여 싫어하며, 자신에게 판소리만을 강조하는 유봉은 따뜻한 태양이 아니라 ‘뜨거운’ 태양이며 자신을 불태운다고 이야기한다. 동호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서양의 소리를 좋아했고, 결국 그는 자신의 소리를 찾아 송화의 만류에도 송화와 유봉을 떠난다.
반면, 송화에게 자신의 소리는 우리 소리인 판소리이기 때문에 그는 유봉과 끊임없는 유랑생활을 하며,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며 연습에 매진한다. 세월이 지나고 동호는 밴드를 거쳐, 유명 레코드사의 대표이자 프로듀서가 되어 사회적 성공을 거머쥔다. 반면, 송화는 여러 유파의 구원에도 불구하고, 명창이라는 명칭을 뒤로한 채, 자신의 소리를 완성하는 것에만 목표를 두고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며 속세와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주요 흐름이 된 동호의 소리와, 사회에서 도태된 또는 잊힌 송화의 소리 사이의 위상 변화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쇠퇴한 판소리와 새로운 대중 장르로 떠오른 대중가요의 모습을 표상한다. 송화와 동호가 살던 시기는 그 당시에는 인기 있었던 판소리가 창극으로 그 모습을 변해가는 동시에 여성국극, 신파 창극 등 여러 장르로 발전해 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서양에서 음악과 영화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극적인 문화예술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기에 판소리에서 발전한 창극은 ‘잡탕 쓰레기’의 저급한 예술로, 서양음악은 “양놈의 깽깽이 소리”로 비하하며 오직 판소리만이 진정한 소리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유봉의 모습은 결국 시대에 뒤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송화와 동호의 각자 다른 정체성은 그들의 넘버를 구성하는 멜로디와 의상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송화의 넘버는 한국의 전통 음악을, 동호의 넘버는 서양 음악을 기반으로 한다. 동호가 전통음악의 멜로디로 노래를 부르는 순간은 합창을 하거나, 자기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할 때뿐이다. 동호가 자신을 위해서 노래하기 시작하는 것은 스프링 보이즈(Spring Boys)를 마주하면서부터이다. 처음 그가 쭈뼛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시작하는 것은 자신의 소리를 하기 위해 용기 내 스프링 보이즈 오디션에서 ‘In His Eyes’를 부르는 순간이다. 이때부터 동호의 음악은 유봉의 판소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멜로디에서 벗어나, 팝을 기반으로 한 멜로디를 구축한다. 처음 자신의 멜로디를 구축하는 순간, 동호는 유봉과 직접적으로 대립하게 되며, 이것이 넘버 ‘철없는 혈기’를 통해 보여진다. 대립은 절정으로 치닫고, 결국 동호는 자신의 소리를 유지하고, 찾기 위해 유봉과 송화를 떠난다. 하지만, 동호는 평생 송화를 그리워한다. 이에 그가 심리적으로 힘들 때 그의 서양 음악에 송화의 소리가 덧씌워져 전개된다.
대중 음악의 프로듀서가 된 동호는 마지막에 “너는 한 번도 그 소리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지. 지금까지도 너를 붙들고 있는 건 그 햇덩이가 아니라 니 누이의 소리였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송화를 다시 찾아가 고수로서 연주를 시작한다. 바로 직전에, 그는 넘버 ‘사랑이여’를 부르며 “내 사랑이여, 나의 꿈이여 이제 안녕”이라고 말한다. 이때 사랑은 동호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소리를 의미하며, 꿈은 자신의 소리를 찾고 싶다는 마음으로 해석된다. 이에 자신의 사랑에게 이별을 고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 그토록 그리워하던 누이 송화의 곁으로 되돌아 가겠다는 결심이 엿보인다. 즉, 한국 음악에서 시작해서 서양 음악으로 갔다가 한국 음악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의 모습은 한국인으로서 서양소리를 하더라도 전통음악을 버릴 수 없는 한국인에게 내재되어 있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송화와 유봉의 넘버는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팝과 록 창법을 이용하는 동호의 음악과 달리 판소리의 창법을 사용한다. 유봉의 음악적 모티프는 ‘한이 쌓일 시간’이고, 송화의 음악적 모티프는 ‘살다보면’이다. 유봉의 음악적 모티프는 어린 시절의 자만심으로 촉발된 과오로 인해 명창이 되지 못한 한을 드러내며, 송화의 경우 체념과 한의 정서가 서려 있다. 이에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대비와 결합을 보여줌으로써 한국 근현대사의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지위 변화를 음악적으로 드러낸다.
동호는 한 장면을 제외하고는 한복을 입고 있는 송화와 유봉의 모습과 달리, 서양식 복장을 하고 있다. 이는 곧 한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있지만, 동호는 송화와 유봉의 길은 달라질 것임을 의미한다. 이들을 제외하고도 한복을 입은 앙상블과 현대 복식을 입은 앙상블의 대비, 살풀이춤과 무무(巫舞)를 떠올리게 하는 움직임과 현대 무대의 대립은 서양 문화의 유입으로 인해 한국의 전통문화가 급격하게 변화해 가던 혼란스러운 시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원형 회전 무대를 이용함으로써 끊임없이 이동하는 소리꾼의 모습을 보여주는 측면에서 원형은 절대 끝나지 않는 소리꾼으로서의 길과 실제 방랑하는 삶의 이중적인 의미를 표현한다. 동시에, 원형의 순환성과 이로 인한 일원화를 의미하며, 동호와 송화의 결합과 이를 통해 서양의 소리와 한국의 소리의 일원화가 진행됨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각자의 소리를 찾은 동호와 송화가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 함께 심청가를 부르는 대목에서 무대는 계속해서 회전함으로써 서로의 소리가 하나로 융화됨을 보여준다.
전반적인 무대는 한지를 여러 개 덧대어 만들어진 대도구를 이용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배경에 먹으로 수묵화가 그려진다. 무대는 열리거나 닫힐 때 항상 수직과 수평으로 함께 움직인다. 수직과 수평이 만남으로써 서로 다른 것이 교차되어 합쳐지는 모습은 서양과 동양의 결합, 우리의 소리와 서양의 소리의 결합, 동호와 송화의 결합을 보여준다.
서양 노래가 나올 때는 주로 보라색, 연두색, 분홍색 등 선명한 원색의 조명이 사용된다. 특히 동호의 주 조명은 보라색이며, 그가 자신의 누이, 송화를 생각할 때는 분홍색 조명으로 전환된다. 반면, 한국의 전통적인 노래가 나올 때는 주황색과 파란색이 주 조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기에 판소리를 하는 송화의 주 조명은 주황색과 파란색이다. 주황색은 따뜻하면서도 길 위를 방랑하며 살아가는 소리꾼의 인생이 흙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유봉의 조명이 붉은색이라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유봉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송화의 처지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파란색은 시퍼런 파란색을 사용함으로써 송화의 피맺힌 한 서림을 표현함과 동시에 유봉과 동화의 우울감과 한(恨) 또한 상징한다. 백색 조명은 송화의 아버지, 동호의 어머니가 죽을 때와 송화의 소리가 완성되었을 때 사용된다. 예로부터 제사와 굿에 흰색이 상징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하얀색은 가장 밝은 빛으로서 궁극의 상태에 도달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흰색은 죽음과 초월을 동시에 나타낸다.
오랜 시간 찾아 헤매던 송화를 드디어 만난 동호. 소리가 싫어, 자신만의 소리를 찾아 떠났던 동호는 고수로서 북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이때, 동호는 서양식 복장인 양복을 입고 북을 치기 시작한다. 반면, 송화는 여전히 한복을 입고 있다. 이를 통해 서양 음악을 하는 동호가 한국 음악으로 일시적이나마 돌아옴으로써 분리되었던 송화와 다시 일원화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 송화와 동호는 심청가를 부른다. 동호가 떠나기 전 이들은 같이 춘향전을 불렀다. 이때, 그들은 춘향과 이몽룡 역할을 서로 바꿔서 했다. 그리고 마지막 심청가에서는 심청이 아버지를 찾아 기뻐하는 장면을 송화가 소리로 표현하지만, 여기서 심청은 동호가, 아버지는 송화가 된다. 동시에 심 봉사의 이미지는 눈이 먼 송화로, 황후가 된 심청의 모습은 프로듀서로서 성공한 동호의 모습으로 투영된다.
판소리가 극의 후반부로 향하면서 동호의 소리와 송화의 소리가 합쳐지면서, 심 봉사가 눈을 뜨는 대목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아무 말 없이 정면으로 마주한다. 이때, 조명이 ‘노랑’이라는 하나의 색으로 합쳐지며, 이 조명은 원형으로 압축되어 표현된다. 송화와 동호는 계속해서 회전 무대에서 회전하고 있고, 두 사람만을 비추던 원형 조명이 무대로, 관객으로 점차적으로 빠르게 확장된다. 즉, 동호와 송화의 소리가 합쳐졌음을 나타내며, 이는 곧 서양의 소리와 한국의 소리가 합쳐졌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합쳐진 소리가 바로 '뮤지컬'이란 장르이고, 뮤지컬 음악이다. 그리고 이 조명이 관객에게까지 점차 확장되어 관객은 송화와 동화가 하나 됨에 융화되게 된다. 이로써 이들이 합쳐진 장르인 뮤지컬을 보고 있는 관객이 한국의 소리와 서양의 소리가 합쳐져 발전된 음악(극) 장르를 향유하고 있음을 인지시켜줌과 동시에 이들이 곧 한국 현대극의 발전과정에 있는 주체임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영화 <서편제>를 다른 장르가 아닌 ‘뮤지컬’이란 장르로 만들어야 했던 이유 아닐까. 판소리를 주요 소재와 음악으로 사용하지만, 창극이나 판소리극이 아닌, 뮤지컬 극으로 진행된다. 뮤지컬은 여성국극, 악극 등 근현대화를 거치며 한국적 소리와 서양의 음악(팝, 재즈, 블루스 등)이 합쳐지며 발전해 온 장르이기 때문이다.
물론, 본 작품은 현재의 시선에서 바라보았을 때 유봉이 소리를 위해,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송화의 눈을 멀게 하는 행위의 옳고 그름에 대한 문제 제기, 그리고 정당성에 관한 비판이 이어진다. 또한, 본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인 ‘한(恨)’은 우리 민족의 지배적인 정서로 흔히 이야기되지만, 사실 일제 강점기 일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 민족의 감수성이라는 한계 또한 있다. 하지만, 본 작품이 뮤지컬이란 장르의 필요성과 예술성, 그리고 현재 뮤지컬이 한국 공연예술 장르 중 가장 흥행하고 있는 이유를 보여주는 것은 틀림없다.
* 참고문헌
김보라, “뮤지컬 <서편제>의 음악적 특징 연구”, 한국예술종합학교, 2017
김민경, “영화 「서편제」와 뮤지컬<서편제>의 비교분석 : 극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국민대학교 종합예술대학원,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