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워서 더 '족(적)'같은 '가족'이라는 병
이수근과 서장훈이 동자와 선녀로 분장해 일반인 출연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해 주는 KBS N의 <물어보살> 프로그램이 있다. 두 사람은 웬만한 상담가보다 더 핵심을 잘 짚어내며 마라맛(?) 조언도 잊지 않는다.
그중 기억에 남는 출연자들이 있는데 문 여섯 개를 부순 분노조절 장애 아내와 손찌검을 한 남편의 사연이다. 아내는 집안일과 관련해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인데 남편이 듣기 싫어하고 대화를 피하고 방에 숨어버려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문을 부쉈다고 한다. 이에 남편은 아내가 잔소리를 4시간이나 한다면 혹시라도 심한 말이 나올까 봐 화를 참으려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도 있는데 아내의 계속된 잔소리와 폭력적인 모습에 화를 참지 못하고 아내에게 손찌검을 했다고 한다.
폭언과 폭력을 쏟아내며 마치 적같이 구는 가족은 이 두 부부만의 이야기 일까.
시댁에 가기 싫다는 아내에게 칼을 들고 위협한 남편도 있었으며 최근에는 직장을 잃은 남편이 돈 문제로 아내와 다툼을 벌이다 살인을 한 사건도 있었다.
부부만의 문제일까.
청소년들의 자살, 자해의 원인 1위가 '가족문제'라는 것에 나는 다소 충격을 받았다. 이유인즉슨 최근 '내가 어려울 때 가장 의지하고 싶은 사람' 1위가 가족이라는 설문조사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렵고 힘들 때 가장 의지하고 싶은 사람인데 폭언, 폭력으로 서로를 상처 내고 심지어는 자살의 이유가 가족이라는 것이 참 안타깝다. 한국보건사회 연구원의 조사 결과 3 가구 중 1 가구는 가족갈등을 겪고 있다고 한다.
<가족이라는 병>의 저자 시모주 아키코는
"누구나 그림 같은 가정을 바라지만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깊이의 차이가 있을 뿐 가족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라고 말했다. 누구나 바라는 건 행복한 가정인데 왜 우리는 가족을 적처럼 대하며 가족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가족의 '족'자에 'ㄱ'이 아닌 'ㅅ' 받침을 찾마 쓰지 못하고 '적'이라고 표현했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단어에는 ㅅ받침으로 가족을 욕으로 표현한다. 이 단어만 봐도 가족갈등의 심각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듯하다.
가족치료학자들은 가족 간의 갈등을 돈, 자녀, 의사결정, 관심과 보살핌등의 애정부족이나 부적절한 애정표현, 가사의 분담과 수행, 게으름, 알코올중독, 혼외정사와 같은 개인의 특성 때문에 주로 일어난다고 했으며 가족갈등원인의 첫 번째 요인을 의사소통 문제로 꼽았다.
하지만 갈등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갈등이 있음으로 인해서 위와 같은 문제들의 합의점을 찾을 수 있게 되고 자신과 가족에 대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갈등상황에서 문제의 해결에 집중하기보다는 분노나 적대감을 표출하거나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며 상대를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등 말투, 말 꼬라지가 좋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대하게 되면 가족관계는 더 이상 긍정적으로 형성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가족관계가 병들어 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70퍼센트 이상이 가족대화 시간이 하루 30분도 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족과의 대화가 단절된 이유로는 부모의 늦은 귀가와 주말 근무, TV나 컴퓨터, 스마트폰 등의 기계를 사용하는 것, 자녀양육에 따른 시간이 부족하고 대화경험이나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로를 이해하고 관심을 갖으려면 가족과의 대화의 시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대화시간이 무조건 길어야만 가족관계가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하루 30분이 되지 않는 대화시간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대화에서 가족들이 서로 어떤 정서를 느꼈는지,
"감성지능이 높은 대화의 질"이 더욱 중요하다.
대화가 많지 않은 부부들도 유독 많은 시간 대화를 하는 경우가 바로 다툴 때다. 대화보다는 다툼이겠지만 어쨌든 서로 말을 주고받고 의사소통을 많은 시간을 했는데도 가족관계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것만 보더라도 대화의 시간보다는 대화의 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부부는 함께 일을 하기 때문에 24시간 거의 딱 붙어 있다 보니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렇게 하루종일 많이 붙어 있으면 싸울 일이 많지 않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3달에 1번 정도 갈등을 겪는 것 같지만 그것도 아주 짧게 마무리된다. 그 갈등에서도 서로 갈등의 상황이 싫어서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말로 다독이며 앞으로 반복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갈등을 더 이상 일으키지 않을지를 서로 합의하고 아름답게(?) 마무리한다.
자녀와도 마찬가지다.
일 때문에 많은 시간을 대화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저녁식사 시간이나 주말에 짧게라도 거실 소파에 앉아서 대화한다. 사실 가족과의 대화에 대해 아이는 늘 자신의 편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부모라는 라벨링이 잘 되어 있어
"우리 가족끼리 대화 좀 할까?"
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곁에 와서 재잘거린다. 가족대화에 대한 좋은 정서를 계속해서 느끼게 해주는 것이 좋다. 대화의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저녁식사 시간을 활용할 수도 있고 주말 가족과 한 공간에 앉아 자신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질문을 통해 상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시간을 잠깐이라도 내며 잔소리보다는 상대의 이야기에 긍정적인 리액션과 공감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미디어 심리학자 조연주 소장은 YTN사이언스에 출연해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민감한 이야기에 대한 질문을 하거나 참견을 당연시하고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다"
는 말로 지나친 간섭을 하며 상처 주는 말을 쉽게 내뱉게 되는 경우에도 가족관계의 갈등의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또 답이 정해진 닫힌 질문을 하거나 관심과 걱정에서 비롯되나 질문과 대화가 불편해서 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족과의 소통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닫힌 질문이란 예를 들면 "너 공부했어, 안 했어"라는 등 '네', '아니요'로 답하게 되는 질문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공부를 하고 안 하고는 자녀의 결정이라 지나친 간섭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을 부모가 인지했으면 좋겠다. 아이와의 규칙으로 정한 부분이 있다면
"오늘 엄마랑
같이 하기로 한 일이 있었는데
혹시 하지 못했던 이유를
엄마가 들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열린 질문이다. 쉽게 말해 닫힌 질문은 대답이 객관식이고 열린 질문은 대답이 주관식이라고 보면 된다. 상대를 더욱 이해하기 위해서는 열린 질문을 활용해 자신의 상태와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족상담 분야의 선구자인 버지니아 사티어(Virginia Satir) 박사는
"한 사람이 자신의 가치에 대해 스스로 내리는 판단,
즉 '자존감'은 의사소통 방식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언어와 비언어가 일치하지 않는, 즉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마음과는 다르게 표현하는 '비일치적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자아가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껴 의사소통에서도 방어기제를 많이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또 사티어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비일치적 의사소통인 회유형, 비난형, 초이성형, 부적절한(산만, 회피, 철회) 의사소통 네 가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회유하다는 국어사전에서 '어루만지고 잘 달래어 시키는 말을 듣도록 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내가 희생하지 뭐,
내가 다 잘못해서 그런 거지 뭐,
그냥 내가 참으면 되는데 싸울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감정을 참고 갈등의 상황을 만드는 것을 힘들어해 자신이 희생하고 양보하는 식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회유형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들과는 많은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지 않지만 늘 자신만 참고 버티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작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고 돌보지 못해 우울감을 겪게 될 수도 있으며 상처를 주는 말을 듣고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별다른 반응을 상대에게 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 상대가 무시하거나 이를 악용할 수 있다.
모든 잘못을 자신이 아닌 상대에게서만 찾으려 한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애초에 네가 그러지 않았으면
나도 안 그랬어"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나는 이런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던 거고 너는 그러면 안 됐다는 내로남불의 무의식적인 신념이 있다. 비난형의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상대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 공감, 존중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시키려고만 하고 늘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먹통, 불통, 울화통이 터질 수밖에 없는 가장 힘든 유형의 사람이기도 하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MBTI에서 극 T다.
그래서 욕을 교묘히 붙여 T발 놈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게 뭐가 힘들어.
그만큼 네가 나약하다는 증거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여야지,
그렇게 힘들어한다고 뭐 달라지는 거 있어?
라떼는 말이야~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라는 말로 그저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었던 사람의 마음에 더욱 흠집을 낸다. 이러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들 역시 감정 공감능력이 거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내면의 깊은 곳에 상처가 많다. 그 상처를 스스로가 건드릴까 두려워 방어기제로 감정을 스스로 억압하고 자신도 상대도 이성적으로만 대한다. 다소 차갑고 냉정해 보이지만 이러한 사람들은 의외로 외로움을 잘 느끼며 상처도 잘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유형의 소통방식을 쓰는 사람들이 때로는 억압된 감정 때문에 음주, 성문제등 부적절한 방식으로 표츌되기도 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존감이 낮으면 의사소통을 할 때
갈등이 일어날 상황 같으면 자리를 피하거나 다른 말로 이야기의 화제를 돌리는 경우도 있고 산만한 행동으로 대화에 집중을 하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그래 알았어.
내가 미안해.
이제 그만 이야기하자"
라며 진지한 대화를 원하는 상대에게 농담을 건네거나 장난을 치고 엉뚱한 행동들로 갈등의 상황에서 도망치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람들이 내면이 공허하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외로움에 시달리며 때로는 자살충동을 느끼기도 한다고 한다.
낮은 자존감으로 비일치적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강하게 보이려 하지만 여린 내면을 스스로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보호하고 싶은 자기 방어 욕구 때문이다.
만약 내 가족이 위 네 가지의 방어적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면 '여리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 때문이구나'라는 생각으로 더 이상 '적'이 아닌 우리는 '가족이라는 영원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상대를 이해하는 말과 존중으로 더 이상 병이 든 가족이 없도록, 가족이라는 이름이 병에 들지 않도록 감성지능을 높이는 의사소통으로 서로 노력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