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다름'을 인정하면 높은 감성지능에 '다다름'

by 김인희

우리 가족 '다 다름'을 인정하면 높은 감성지능 가족에 '다다름'


남녀가 함께 출연하는 서바이벌 게임쇼 '여왕벌게임'이라는 OTT프로그램이 있다. 남자가 눈을 가리고 바닥에 놓인 육각형 모형을 틀에 시간 내에 잘 맞게 끼울 수 있도록 여자가 안내하는 미션이 있었다. 여자는 눈을 가려 앞을 보지 못하는 남자에게


"그 상태로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가! 그 상태로 밑으로 내려가! 왼쪽, 오른쪽"


남자는 여자가 안내한 대로 열심히 방향을 움직여가며 모형을 집었지만 여자는


"아니, 아니 오른쪽"


남자가 자신의 말대로 잘하지 못하자 더욱 다급해진 여자의 말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소리를 지르듯 계속 안내했다. 남자가 오른쪽으로 가라는 여자의 말에 오른쪽에 있는 모형을 집었는데도 자꾸만 오른쪽이라고만 외치는 여자.


얼마나 가야 오른쪽인 걸까, 조금만 더 가라는 것은 얼마만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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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인터뷰 : (제 말과는 달리) 다른 쪽으로 가니까 안 듣는다고 느꼈죠.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답답한 거예요.


제3의 남자 인터뷰 : 다급해 보였어요.

소통이 안되니까 더 다급해지는 거죠.


좀 이상한 행동도 있었어요.

어차피 안 보이는데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여기 넣어' 라는데 소통의 단절이 확실하구나.


이 영상을 두고 SNS에는 '리더(여자)와 팀원(남자) 중 누가 더 잘못했을까?'라는 질문에 갑론을박이 계속되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리더의 잘못이라고 본다. 잘못이라기보다는 소통의 기술이 부족해 보였다. 앞이 잘 보이는 여자한테는 왜 내가 안내한 대로 모형을 빨리 집어넣지를 못하느냐 답답했다 하지만 과연 잘 안내했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 남자는 여자의 말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다는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좀 더 그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보이지 않으면서도
내가 말한 모형을 빨리 집고
틀에 끼워 넣을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며 남자의 입장에서, 남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안내해야 했다.



출처 :https://csibridge.org/58

절벽에 매달려 있는 여자를 남자가 겨우 붙잡고 있다. 아래에 있는 여자는 자신의 손목을 뱀이 물어 상처가 났고 뱀 때문에 올라올 힘이 부족하다. 남자는 여자를 어떻게든 끌어올리려고 노력하지만 자신도 바위에 깔려 있는 상태로 올릴 힘이 부족하다.


이 상황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왜 잘 올라오지 못하냐?"


여자는 남자에게

"왜 끌어올리지 못하냐?"

라고 서로 탓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서로 왜 상대가 원하는대로 하지 못하는지. 서로 말 못한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닌지 먼저 들여다보려 하고 탓하기 전에, 내 멋대로 생각하기 전에 상대에게 먼저 물어보는 것이 좋다. 또 나의 상황을 상대에게 자세히 말해주면 사실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오히려 그러한 상황을 알았더라면


"그럼에도 날 끝까지 놓지 않고 잡아줘서 고마워",

"그럼에도 어떻게든 올라오려고 노력해 줘서 고마워"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앞서 이야기 한 <여왕벌 게임> 에서 내가 리더라면 앞이 보이지 않는 팀원의 입장에 서서 앞이 보이지 않 '그의 언어'로 그를 다독여가며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렇게 설명하겠다.


"자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천천히 해도 괜찮아!

오른쪽으로 세 발걸음 움직여봐.


지금 잡히는 모형 말고 20센티미터만 더 오른쪽에 또 모형이 있어.

그렇지 그거야. 잘했어. 이제 그거 들어! 뒤로 한 걸음만 가봐,


오른쪽으로 반 걸음만 더!

좋아 그대로 앞으로 손을 뻗을 수 있을 만큼 뻗어봐.

그대로 앞으로 반발짝만 좁은 걸음으로!

이제 그대로 꽂으면 돼! 잘했어!"


요즘 중학생은 2학년이 돼서야 지필평가로 첫 시험을 치른다. 1학년때까지는 과목별로 잘한다 잘한다 선생님이 써준 편지 같은 글에 우리 딸아이는 자신이 공부를 잘하는 줄 알고 있었다. 하하.(그저 웃지요^^) 그러나 지필평가를 보고 객관적인 점수 앞에 그녀는 무너졌나 보다. 카톡 메시지가 왔다.


"엄마, 저 공부랑 헤어진 것 같아요"


적잖이 충격을 먹었나 보다. 그런 아이가 의기소침해지지 않게 남편은 평소 장난을 자주 치며 서로 잘 지내고 있는 딸아이에게 말했다.


"괜찮아, 넌 공부랑 한 번도 사귄 적이 없어"


하하하.


그래서 딸은 여름방학 동안 공부랑 사귀어 보기로 했다. 자신은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해도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는데 선생님이 행여 무섭게 말하면 울어버릴 것 같고 그렇게는 공부하기 싫다며 혼자 해보겠단다. 그래서 나는 공부법에 관한 책 세 권을 사서 몇일만에 완독하고 글로 정리해서 딸아이에게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목표를 세우고 하루에 얼마큼 공부할 것인지 스스로 적게 하고 자기주도 학습을 도왔다.


한 번도 아이의 공부에 간섭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에도 자신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뒀다. 그런데 아이가 자신의 점수에 실망하자 너무 방치한 게 아닌가 싶어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모든 돕겠다고 했다. 아이는 혼자 동영상을 보면서 하겠다고 했는데 영상을 보니 설명만 있고 원리에 대한 이해를 하는 수업은 아니라서 아이는 그 영상을 보고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홈 CCTV로 보니 본인도 답답했는지


"아~ 모르겠다!!! 나 진짜 수학에 재능이 없나 봐"


하고 소리 지르더니 화면에서 사라져 버렸다. 중학교 때까지는 수학 좀 했던 나다. 하하하. 그래서 직접 가르치기로 했다. 부모가 선생님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었다. 신경질 내며 가르칠 확률이 높으니까.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과외선생님처럼 옆에 앉아 최대한 쉽게 설명한다고 했는데 아이는 잘 이해가 안 됐는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분명 말투도 세~~ 상 부드러웠는데. 평소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나눗셈까지도 흔들렸다.


"얘가 왜 그럴까?"

고민해 봤다.


"어쩌면 옆에서 딱 붙어서 가르치는 게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을 느낀 걸까?"


그 다음날 나는 주방냉장고에 자석칠판을 붙여 강의식으로 바꿨다. 그리고 아이의 기분 컨디션을 위해 밝게 시작하고 서두부터 아이가 잘 알 만한 질문을 하면서 천재(?)냐며 폭풍칭찬을 해댔다.


그리고 직각삼각형 넓이 공식을 외우게 하지 않고 이해를 하게 하기 위해 냉장고에서 사각토스트빵을 꺼내 잘라보게도 하고 최대한 노베이스 수준에 맞춰(?) 설명했다. 그 이후 아이는 너무 잘 이해했고 진도도 잘 나갔으며 2학기 때 쪽지시험처럼 치르는 첫 수학 수행평가에서 처음으로 만점이라는 점수를 받아왔다.


엄마가 가르치면 이해가 쏙쏙 된다면서 늘 엄지 척하며 최고의 강의란다. 아이의 성향에 맞게, 아이의 언어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나의 기준이 아닌 노베이스인(?) 우리 아이의 기준에 맞춰 가르친 덕분이었다. 요즘은 다시 공부에 흥미를 잃어(그럼 그렇지.ㅋㅋ 또 공부랑 헤어진 우리 딸이랍니다) 나도 그녀를 존중하느라 공부라는 말조차 금지어처럼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상대의 마음을 잘 파악하고 배려심이 깊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감성지능이 발달될 수 없으며 자신만 알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이해도 없고 공감능력도 떨어진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만을 내세우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먹통, 불통, 울화통이 터진다.


때로 나의 마음을 상대가 잘 이해를 하지 못하면


'왜 이해를 하지 못하냐'

'내 마음을 이해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거냐'


며 비난하는 것이 아닌 상대가 잘 이해할 수 있게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해를 시켜준다. 딸아이에게 직각삼각형 이해를 위해 딸아이가 이해할 만한 것으로 예를 든 토스트빵처럼 말이다.


간혹 사업미팅에서 전혀 이해를 하고 있지 못하는 모습을 상대가 보일 때가 있다. 나는 미팅하면서 상대의 표정을 관찰하고 눈빛부터 제스처까지 모든 행동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가끔 파악이 되는데 상대가 이해를 하지 못하면 나는 다시 한번 설명하면서 최대한 말의 속도를 천천히 하고 이해하기 쉬운 순으로 말하며 때로는 판서를 활용하기도 한다.


뇌는 어떠한 정보가 들어올 때 이해하고 처리하는 데까지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말의 속도가 너무 빠르게 되면 하나씩 이해하고 뇌에서 처리하는 속도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천천히 말하며 하나하나 곱씹어 표현한다.


우리가 가족과 대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화할 때 상대의 말에도 당연히 집중해야 하지만 미세한 표정, 눈빛, 취하는 제스처에도 관심을 두면 때로는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도 있다.


갈등이 생기는 상황에서도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고 말의 속도가 빨라지고 목소리가 크면 상대의 뇌에는 당신의 말을 더욱 입력하기 어렵게 된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아니 아예 듣는 것조차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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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지능을 높이는 '다름'을 인정하는 방법]


상대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라면 '내가 내 기준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먼저 자신을 바라보자. 내 기준에서만 바라보면 상대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왜 그럴까", "왜 그랬을까?", '왜'라는 질문으로 먼저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자.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나와는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나의 기준이 아닌 상대의 기준,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자.


소크라테스는 “목수와 대화하려면 목수의 언어를 써야 한다”라고 했다.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긍정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당신이 이럴 때 느끼는 그 감정을 나는 이럴 때 느껴'라는 등 상대가 납득할만한 예시를 드는 것도 좋고 뒤에서 다룰 상대의 '사상체질 심리학'을 통해 상대를 더욱 이해하고 상대의 언어, 대화법을 사용하며 이해하고 인정하며 존중하는 것이 가족관계는 물론 모든 인간관계를 긍정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이 되겠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다 보면 '이해' 못 할 것이 없고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존중' 못할 이유도 없다. 우리 가족은 모두 다 다르다. 다른 인격체다. 나와 같을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와 안 맞는 게 아니라 정확히는 다른 것이다. 그것부터 인정해야 한다.


'다 다름'을 인정하면 우리 가족의 갈등해결은 물론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 가족의 높은 감정지능에 이제 서서히 '다다름'이 될 것이다


화,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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