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형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feat. Ryan)
아이는 봉제인형을 유독 좋아한다.
10년째 함께하는 애착 인형 '팡팡이'를 시작으로 우리 집에 입양되어 오는 모든 인형들에게 직접 이름을 붙여주고 살뜰히 애정을 준다.
친구들이나 특히 동생들이 놀러 올 때면 혹여나 가장 애정 하는 ‘팡팡이’를 데려간다고 할까 봐 근심이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10살이나 된 형아가 봉제인형을 이렇게나 좋아한다는 것이 내심 쑥스러운지 누군가 집에 올 때면 아이의 봉제인형 친구들은 장농행을 피할 수 없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인형 친구들을 침대에 쪼르르 자리 잡고 눕히기 시작하는데 이제 그 수가 제법 많아져 버린 탓에 아이가 누울 공간이 부족할 판이다.
어느 날 인형들을 눕히고 마지막 남은 원숭이 목베개 인형을 손에 든 채 부족한 자리로 고민하고 있는 아이를 보다 말했다.
"라이언. 이건 목베개니까 굳이 침대에 안 눕히고 바닥에 두는 건 어떨까? 공간도 부족하니 말이야"
엄마의 제안이 뭔가 내키지 않는지 아이는 울상인 표정을 지었다.
"라이언이 누울 자리가 없을 거 같아서"
한마디를 보태는 순간 아이는 참고 있었다는 듯 나의 눈을 뚫어져라 보며 말했다.
"엄마! 닉 부이치치 알죠?"
"응 닉 부이치치 알지~"
이때까지도 둔감한 엄마는 아이가 도통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엄마는 닉 부이치치가 팔다리가 없다고 해서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응?? 응??"
말문이 막혔다.
"엄마 이 원숭이 인형은 내가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친구야. 비록 팔다리는 없지만 이 원숭이 인형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순간 멈칫했다.
비록 생명 없는 봉제 인형이지만 아이가 대상을 대하는 순수한 마음과 vs 내가 가진 편견의 깊이가 부딪힌 것 같아 부끄러웠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나는 아이의 작은 세상에 침입해 이 순수하고 멋진 생각들을 적잖이 소멸시키고 있었을 것이다.
스쳐가는 생각들을 뒤로하고 아이를 꼭 안고 말했다.
모든 인형을 편견 없이 사랑하는 라이언의 마음이 참으로 멋있다고. 엄마가 생각이 짧았다고.
아이는 넓은 베개를 가져와 침대 옆 수납함 위에 깔고 원숭이 목베개 인형의 별도 침상을 만들어 주고서야 기분 좋게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다. 팡팡이를 꼬옥 안고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보고 있는데 자꾸만 엄마 미소가 났다.
엄마의 의견을 무조건 수용하지 않고 당돌하게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는 아이의 모습이 좋았고, 팔다리 없는 목 베개 인형에게도 동일한 사랑과 환경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주장하는 아이의 편견 없는 시선이 사랑스럽고도 대견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늘 부족한 엄마인데 너는 이렇게 멋지게 성장해주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에 감사했다. 아이는 이렇게 몸도 마음도 생각도 훌쩍 자라고 있다.
매일 한 뼘씩 자라고 있는 아이는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