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진 Jun 21. 2021

엄마,愛蘭

미련이 남는 일

“혜진아 엄마 아빠 미국 가기 전까지 몇 개월 우리 재미나게 지내자. 해운대 내려와서 요양한다 생각하고 푹 쉬면서 우리 세 모녀 이것저것 하면서 보내자. 유진이도 한국 들어와 있고 얼마나 좋아”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 엄마 목소리. 큰 수술 후 4개월 만에 복직하겠다는 내게 수화기 너머 엄마가 건네셨던 말이다. 


내게 미련이란 단어는 모두 엄마와 직결된다.


갑작스럽게 엄마를 떠나보내고 우리 가족은 지독히도 아픈 시간을 보냈다.서로를 보듬어가며 일상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지만, 그 상실의 아픔은 여전히 맘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다가 수시로 올라오곤 한다.





엄마는 내가 일 하는 걸 누구보다 좋아하셨다. 연약해 보였던 딸이 꿈을 이루고 사회에 나가 무언가를 한다는 자체가 엄마에겐 기쁨이셨던 것 같다. 더불어 엄마가 엄마로서의 삶을 선택하며 포기했던 어떤 미련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무언가를 성취해 낼 때면 나 보다 더 기뻐하셨고 넘어질 때는 더 아파하셨다.


지금까지 일을 지속해왔던 이유 중 자아실현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은 엄마가 기뻐하시는 모습이 좋아서였다. 부족했던 내가 자랑스러운 딸이 되는데 일은 충분한 사유가 되었었다.


그런 엄마가 그날은 일 보다 쉼을 권하셨다.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자 하셨다. 딸이 한번 아프고 나니 일도 꿈도 그리 중하지 않다 싶으셨는지, 복직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내게, 슬며시 만류하며 건네셨던 그 말은 여전히 가슴 저미도록 아프게 남아있다.


“엄마 회사에서 내가 체력 회복할 때까지 단축 근무로 일할 수 있게 해 준대. 아이 등 하원 시간도 맞출 수 있고 내겐 최적의 시간인 거 같은데 다시 복귀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일을 다시 시작하겠다에 기울어진 마음을 품고 재차 물었다.


늘 그런 식이 었다. 내 마음에 이미 결정을 내려놓고는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세심하면서 깊이 배려하는 사람이라, 이번에도 내 맘을 꿰뚫어 본다. 그리곤 내가 눈치 채지 못하게 엄마도 그리 생각한다며 내 결정을 지지한다.


내가 언제나 선택에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이자, 선택에 대한 무게감보다 나의 의지가 우선시 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항상 엄마의 배려와 희생이 수반되었다.


그날도 그랬기에 나는 일터로 돌아갔고 엄마는 다시 워킹맘이 된 나를 묵묵히 도와주셨다.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누릴  있는 것인  알았다. 학업과 일로 딸들과 떨어져 지냈던 탓에  부러워만 하셨던 ‘마트에서 함께 장보는 모녀 모습은 언제든 가능한 일상일  알았다.


그랬기에 엄마가 제안한  모녀의 시간은 조금 뒤로 미루어도, 이번엔 워라밸을 지키며 일할  있는 기회를 선택하고 언젠가   시간은 조금 뒤로 양보해도 괜찮을  알았다.


그것은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복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의 60번째 생신을 일주일 앞둔 그날.


임신한 여동생이 혼자 운전하는 게 걱정되어 다급히 따라나서셨던 엄마는 서울 외곽도로 차 안에서 갑작스럽게 온 심정지로 인해 믿기지 않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인정되지도 않는 이별 앞에서 어떤 항변도 소용없었다.

그토록 기다리시던 미국 이민을 눈앞에 두고 아빠와 함께 설레는 맘으로 끊으셨던 시애틀행 티켓은 그렇게 주인을 잃고 말았다.


나와 가족들은 많은 것에 아니 모든 것에 의미를 잃었다.

그러면서도 서로를 지키기 위해, 채워지지 않는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엄마의 부재는 여전히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나를 찌른다. 다만 숨쉬기도 힘들 만큼 깊었던 그 슬픔은 이제  일상에게 조금씩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슴 저리게 남는 미련은 그때 엄마와 함께하지 못했던 그 순간의 선택이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수많은 다른 선택들을 짚어보며 오늘도 시계를 돌려본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것도 내려놓고 엄마에게 달려가 깊고 진한 그 시간을 나누고 싶다. 부디 꿈에서라도 말이다.


“슬픔. 이렇게 외칠 시간조차도 없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돌아가고 싶어라!”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