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진 Oct 23. 2021

엄마의 일기장

글쓰기는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혜진~ 지금 이 마음을 글로 써 봐.
엄마와의 기억, 아름다운 추억, 그리움.
엄마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거 어때?


엄마를 보내고, 삶과 죽음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 관련 책, 영화를 수 없이 찾아봤었다. 정말 죽음이 끝이라면 엄마를 어느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건지, 세계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디서 끝이 나는 건지,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 가득이었다. 이런 질문들을 끝없이 품고 힘들어하던 내게 어느 날 교회 사모님께서는  글쓰기를 권하셨다.


'글을? 내가?


슬픔의 한가운데 무력하게 떠 있던 내게 글로 감정을 풀어내 보라는 제안은 실로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왠지 손사래 칠 수 없는 마음이 든 건  어릴 적 몰래 보았던 엄마의 일기장 때문이었다.







사춘기 시절, 화장대 아래 칸 서랍 깊숙이 있던 엄마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일은 내게 꽤 신비하고 재미난 일이었다. 내가 모르는 엄마의 감정을 알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 어른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몹시 비밀스러웠다. 엄마의 일기장 속 동그란 글씨체가 이뻐 다이어리에 따라 쓰며 흉내를 내보기도 했고, 엄마의 일기와 편지 속 자주 등장했던 문구를 살포시 적어 두었다가, 친구들에게 편지를 쓸 때 어른스러운 척 엄마의 구절을 한 줄 더하기도 했었다.


그날도 엄마가 외출한 사이를 틈타 동생들 몰래 엄마의 일기장을 열었다.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나의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던  '엄마' 하고 간절히 부르며 시작했던 그 글을 마주했던 순간, 어린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날을 떠올렸었다.


엄마도 아이처럼 울 수 있구나 하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 날. 늘 단단하던 엄마가 하염없이 무너지던 그때, 나는 할머니와 이별해서 슬픈 마음보다 엄마가 소리를 삼키며 가슴으로 울던 그 모습이 너무도 아파 그만 엉엉 울고 말았었다. 그 순간 엄마는 나의 엄마가 아닌 오롯이 할머니의 어린 딸이었다. 무서웠다. 나는 엄마 없이는 살 수 없을 거 같은데 엄마처럼 엄마를 잃는 순간이 언젠가 올 거라는 생각에 두려웠었다. 그 글은 내 마음속에 사진처럼 스캔되어 엄마 역시 누군가의 딸임을 각인시켰었다.





그렇게 일상의 기쁨도 그리움도 글로 풀어내시던 엄마의 일기장은 내 기억 속에 남아 나 역시 무엇이든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그럼에도 선뜻 시작하고 있지 못하는 내게 사모님께서는 어느 날 자그마한 노트 한 권을 내미셨다. 쓰고 싶지만 두려워서 시작하지 못하는 마음을 아셨을까.


선물 받은 무지의 노트를 덩그러니 펼쳤다 덮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그 시간 거실에서는 '아베마리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엄마와 내가 유독 좋아하던 박정현 가수의 버스킹 공연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엄마와 함께 한 몇 안 되는 둘만의 시간이 떠올랐다.




 

신혼 초, 선물로 받았던 호텔 숙박 티켓을 남편의 배려로 엄마와 단둘이 갔었다. 우리는 근사한 저녁을 먹고 편의점에 들려 간식거리를 사들고는 숙소로 들어가 그 시절 인기리에 방영했던 '나는 가수다'를 함께 보았다. 경연 무대에서 빨간 미니드레스를 입고 삼바풍으로 편곡한 ‘첫인상’을 부르는 그녀를 보며 우리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음악에 맞춰 엄마와 나는 땀에 흠뻑 젖도록 침대 위아래서 삼바춤을 췄고, 몸치인 서로의 모습에 까르르 실컷 웃었던 밤이었다.


엄마와 나의 추억이 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거쳐 나오는 아베마리아를 듣는 순간, 그날 밤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그리고 엄마의 사진을 꺼내 품에 안은 채 덮었던 노트를 다시 펼쳤다.


"엄마. 아베마리아 선율이 너무 아름답네. 이 음악 듣고 있으니 엄마가 더 보고 싶어. 엄마랑 같이 듣고 싶어서 엄마 사진 앞에 이 음악 흘려보내 봐. 엄마… 엄마 없으니까 참 별로다. 너무 별로야 엄마 없는 거.. 엄마는 이 아픈 시간들 어떻게 견디었을까? 우리 모두 서로가 더 애쓰며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가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그리움도 공허함도 깊어져 가.., 엄마 내 말 들려?"

 

고작 그리움을 토로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뭔가 마음이 후련해짐을 느꼈다. 아베마리아 선율 속에서 엄마가 살아있는  같은 느낌도 들었다.


써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엄마랑 대화할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눈물 자국으로 구깃 해진 노트는 어느새 그렇게  페이지씩 채워지기 시작했고, 엄마와의 기억은 그렇게 점점 선명해졌다.

 

정여울 작가는 말했다.
글쓰기란 시들어버린 기억을 따뜻함으로 되살려내는 과정이자, 오래전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기억의 씨앗이 내 안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것이라고.

 

도저히 쓸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엄마의 이야기는 나의 페이지들을 채워가고 있다. 그렇게 글쓰기는 엄마와 함께 내게 다가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우리 오늘 저녁 산책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