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진 Aug 07. 2021

코코넛 오일과 생선가시

다시 주워 담고 싶은 말들


2018년 4월 이제는 며칠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날.

나는 혈관모세포종이라는 병명의 뇌종양 수술을 했다.


수술 후 병원밥에 질려가던 어느 날 엄마는 작은 도시락통에 가지런하고 정갈하게 꼬마 김밥을 담아오셨다.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 위에 가늘게 채 썬 햇 당근을 볶아 얇은 단무지와 시금치만을 넣고 싼 향긋한 김밥이었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입안 가득 퍼지는 햇 당근의 달근함과 코코넛 오일 향의 조화는 너무도 황홀했다.


"엄마 당근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어? 너무 맛있는데"

"햇 당근을 코코넛 오일에 볶았어. 입에 맞아?"

"~ 맛있어

나는 단숨에 한통을 비워버렸다.


수술 후 입이 짧아진 딸이 잘 먹는 모습을 오랜만에 본 엄마는 연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김밥을 먹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셨고, 그날부터 코코넛 오일은 우리 집 식탁에 올라오는 모든 요리의 베이스가 되었다.


계란 프라이는 기본이었다. 각종 볶음요리, 샐러드, 카레 등 엄마의 손을 거쳐 탄생한 모든 음식에는 코코넛 오일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수술 후 모든 감각이 예민해져 있던 내게 그것은 꽤나 곤경 한 일이었다.


그 무렵 방송사 여러 채널에서도 코코넛 오일의 효능에 대해 한참 방송하던 때라 엄마의 코코넛 오일에 대한 애착은 더욱 커져만 갔다. 무려 뇌에도 좋다는 정보를 접한 엄마의 코코넛 오일 사랑은 정점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혜진아 코코넛 오일에 들어있는 지방에는 항균효과 항바이러스 효과가 있대. 뇌에도 좋대"

"엄마~코코넛 오일이 좋긴 하지만 그 향이 안 어울리는 음식도 있잖아. 거긴 좀 넣지 마요ㅎㅎ”

"오케이! 그럼 어울리는 요리에 조금씩만 넣을게"


코코넛 오일 효능을 맹신하며 모든 요리에 어떻게든 조합해 내시는 엄마가 귀엽고도 감사했지만 그 특유의 향에 조금 질려가던 참이어서 엄마의 요리에 작게나마 훈수를 두었고, 소량씩 넣겠다는 다짐을 받아내었다.


수술 후 회복기간 동안 엄마는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셨다. 아이 등 하원도 도와주시고 혹 수술한 딸이 끼니라도 거를까 싶어 친정집에 내려가지 못하시고 옆에 꼭 붙어 건강에 좋다는 음식을 해주시며 보살펴 주셨다. 약 먹는 시간, 식사시간,  심지어 낮잠시간까지 살뜰히 챙기시며 혹여나 내가 약 먹고 잠든 낮 시간에 온전히 휴식하지 못할까 봐 티브이도 소리 없이 보시고 주방에서 그릇 부딪히는 소리까지 조심해가며 엄마는 그렇게 다큰딸의 돌봄을 자처하셨다.


나로 인해  엄마가 고생하는 것 같아 싫으면서도 결혼 후 엄마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그 시간이 참 포근하고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코코넛 오일이었다. 조금씩 후각을 자극하며 예민함을 깨우던 코코넛 오일 향은 어느 순간 거북하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역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 오후 약을 먹고 잠들었다 깨어나 거실에 나오는 순간, 퍼져오는 그 고유의 향이 코를 찔렀고 예민해진 나는 주방에서 땀을 송골송골 흘리며 요리하고 계시던 엄마에게 짜증을 내며 말했다.


"엄마! 코코넛 오일 좀 그만 넣으면 안 될까?!!! 나 이 냄새가 너무 힘들다고!!!”

"미안해 딸. 코코넛 오일 안 넣을게. 엄마는 몸에 좋다고 해서 한 방울이라도 더 먹이고파서…”


한껏 짜증을 내며 말하고서는 눈물이 나 방에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훌쩍 울었다.

퇴원 전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코코넛 오일만큼 이나 뾰족해졌던 날은 또 있었다.


수술 후 일주일 되었을 무렵 병원식단에 갈치조림 한토막이 나왔었다. 엄마는 생선을 좋아하는 내게 한입이라도 더 먹이 고프신 맘에 앞에 앉아 살을 하나하나 발라주셨지만 그날은 도무지 먹히지가 않았다.


“엄마 나 안 먹고 싶어”

“조금만 먹어봐”

엄마는 숟가락 위에 생선살을 올려주셨다.

"정말 안 먹히지만 엄마가 주는 거니까 먹는다”

한 술이라도 더 먹이고픈 엄마의 눈빛을 외면할 수 없기에 입에 넣기 시작했다.


신이 난 엄마는 하나 둘 생선살을 더 올리셨고 내가 그 속도를 따라가기에 버거워졌다 느낄 때 즈음, 생선가시는 나의 식도 안쪽을 찔렀다.


개두술을 하고 머리 뒤통수 실밥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라 기침도 조심히 하라 했는데,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리니 대략 난감이었다. 걸린 가시를 처리하고자 밥을 꿀꺽 삼켜도 물을 벌컥 마셔도 안 넘어갔다. 엄마는 어쩔 줄 몰라 안타까워하시며 내 등을 쓸어내렸지만 생선가시는 도통 내려가지 않았다.


눈에서는 고통의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는 어떻게 도와줄지 몰라 안절부절 힘들어하셨다. 결국 엄마의 눈에도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 엄마는 뭐가 그리 미안한지 빨개진 눈으로 “우리 딸 아프게 해서 미안해”를 반복하셨고 나는 철부지처럼 “이제 당분간 생선은 안 먹을래!!” 하며 그렇게 응석을 부렸다.


몹쓸 생선가시. 그 생선 가시는 내 목구멍을 찔렀고, 엄마의 가슴을 찔렀고, 지금  다시 나의 가슴을 찌른다.


세상 모든 사람들 앞에서 뇌종양 따위 별것도 아니잖아 쿨한 척 괜찮은 척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엄마 앞에서 만큼은 나 이렇게 많이 아파 하며 작은 불편함에도 응석을 부리고 싶었다. 그때는 그랬다.


얼마 전 주방에서 아이에게 볶음밥을 해주려는데, 전기레인지 앞 곧게 서있는 코코넛 오일병이 나를 찌른다. 아이가 코코넛 고유의 향을 좋아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슬쩍 한 스푼을 넣는다. 그때의 엄마처럼.




그 해 2018년 11월 18일, 결코 잊혀질 수 없는 그날.
나는 잃었다. 반찬 투정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완전히 어리광 부릴 수 있는 가장 온전한 내 편을.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튼 목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