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진 Jun 21. 2021

아무튼 목욕

새 사람이 되었다

매주 토요일 아침, 엄마는 창문을 활짝 열어 찬 공기 알람으로 우리를 깨우셨다. 달콤한 주말 아침잠을 빼앗으려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집 주 중 행사인 ‘목욕탕 방문’


잠에서 덜 깬 나와 동생은 몇 번을 이불속으로 다시 파고들다가도 순간 아른거리는 온탕에서 먹는 얼음 식혜와 돌아오는 길에 늘 함께 먹던 굵고 기다란 쌀 떡볶이를 포기할 수 없기에 퉁퉁 부은 눈을 비비고 주섬주섬 따라나서곤 했다.


입고 온 옷을 훌훌 벗어 버리고 습기 자욱한 목욕탕에 들어설 때면 온몸이 스르르 녹는 듯 노곤해졌다.


적당히 물에 불린 내 몸에 엄마의 네모난 초록색 손바닥이 닿기 시작한다.

매번 등만 밀어주겠다며 시작하던 엄마의 손바닥은 결국  의사와는 상관없이 온몸으로 넓혀지곤 했다. 어느새 엄마보다 커져버린  몸을 맡기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던  순간까지 말이다.


어린 시절 엄마손에 이끌려 타의로 했던 우리 집 주 중 행사의 기억은 나의 몸에 고스란히 각인되었고 그 꼬마는 성인이 되어 목욕 예찬론자가 되었다.




결혼 전 남편에게 “햇살 드는 욕조가 있는 집이라면 어느 곳이든 좋아” 라고 했던 현실감 없는 철부지 목욕 러버였고(한국의 대부분 아파트 욕실에 창문이 없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었다;) 임신 초기에 욕조 목욕을 하지 못하는 것을 참 많이도 힘들어했을 만큼 나는 목욕에 진심이었다.


언젠가 엄마와 함께 외출 후 몹시 피곤한 몸으로 집에 들어왔던 어느날. 소파에 늘어져 있던 내게 엄마는 말하셨다.


“딸 얼른 씻고 나와봐.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나오면 몸이 다시 살아나”


체온 조절이 잘 안되어 목욕 후엔 유난히도 발그레하게 홍조를 띠던 엄마의 모습과 함께 그 대사는 마치 마법 주문처럼 가슴에 남아 나의 목욕 사랑을 짙어지게 한다.


야근 후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는 날도, 생각이 많은 어떤 날도,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순간 온몸의 세포와 근육들이 이완됨을 느낀다.


목욕을 마치고 나올 때면 복잡하고 무거웠던 마음들도 함께 씻겨져 내려가 사라진다. 아주 간혹 여유가 있어 사치를 부리는 날은, 감미로운 플레이 리스트와 함께 긴 시간 반신욕을 즐겨보기도 한다. 


욕실 전체를 가득 메우는 습하고 따스한 온기는 엄마 품처럼 유난히도 포근하다.


지친 하루의 끝에 따뜻한 물에 들어가 걱정 없이 풀어헤치는 몸과 마음. 깨끗해진 몸에 좋아하는 시트러스 향 바디로션을 듬뿍 바른 후 보송보송한 잠옷을 입고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는 그 순간.


 엄마의 마법 주문과 함께 내 몸은 다시 소생된다.


‘아~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

나는 오늘도 새 사람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호마미가 된 문학소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