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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Oct 15. 2020

울결_마음이 시끄럽다



마음이 시끄러워 슬리퍼 대신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섰다.

덥지 않게 느껴지는 햇빛에 바람까지 적당하여 산책하기 참 좋은 날씨였다.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낯설기도 설레기도 한 이곳이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걸어 다니기에 장애물이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슬리퍼든 운동화든 내가 디디는 두 발의 흔적이 길을 만들어낸다는 느낌이었다.

그 말은, 아주 오래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내고 내었던 구불구불 길들이

미물의 나를 왠지 반겨준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방에는 신경 쓰지 않고 아무렇게나 놔둔 목걸이의 가느다란 줄이 꼬여있다. 그것을 보는 순간, 티슈가 물을 머금듯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십 분쯤 걸었을까, 집에 돌아가면 목걸이 줄부터 풀어야지

생각을 하다가 그제 밤의 시간이 떠올랐다.


맥주를 쏟았다. 탁 치는 느낌과 동시에 알루미늄 캔이 조금 찌그러졌으며

동시에 바닥에는 흥건한 탄산 방울과 함께 누런 물이 군데군데 고이기 시작했다.

휴지가 흡수하지 못하는 양의 오물을 보자마자 속이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당황하고 자책하여 순간 정지된 그 새,

생명수 같았던 누런 액체가 오물로 변하는 그 변화에 탄식하였다.


빛이 약간 바래었지만 아름다웠던 목걸이 줄이

마구 꼬여 지금은 걸지 못하는 뭉텅이가 되었고,

물보다 더 물처럼 좋아했던 생명수 '일종'인 맥주는 타의로

있어야 할 곳을 벗어나 지릿한 냄새를 풍기는 오물이 되었다.


뭉치고 풀어지는 많은 일들이...


4년 전 썼던 글이 저장되어 있다.

저 때의 절박했던 감정은 지금 감쪽같이 없다.

감정은 순간 나를 휘감아 버려, 인생도 미래도 과거도 마치 고착될 것처럼 강렬하지만

후에는 연기처럼 사라져

정체 없이 내 안에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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