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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iss Oct 13. 2020

냄비밥의 고마움

고슬 고슬 냄비밥을 짓는다.

뜸을 들일 때 주걱으로 떠먹는 쌀밥의 맛이 정말 기가 막힌다.

식탐이라고는 별로 없는 사람인데 이렇게 만든 냄비밥은 멈출 수 없이 자꾸만 떠먹게 된다.


충분히 불려도 물은 생각보다 살짝 많이 넣는 것이 좋고

스타우브 냄비라면 중불보다 약불, 굉장히 약한 불에서 쌀이 물을 꼴꼴 충분히 먹을 정도로 가만히 두는 게 좋다.

그리고 뜸을 충분히 들인다.

가끔씩 열어 조금씩 맛봐도 좋다.


큰 맘먹고 산 냄비가 좋아서 밥 맛이 좋은 건가.

엄마가 준 쌀이 좋은 쌀이어서 맛있는 건가.

내가 밥을 해냈다니 기뻐서 맛있는 건가.

손수 만든 밥을 누구한테 먹일 수 있어서 뿌듯한 건가.

그냥 먹어도 맛있고 계란 김밥을 싸도 좋고 사골국물에 말아먹어도 좋으니 기대해서 그런가.


출근할 때 불려놓고 퇴근해서 쌀밥을 짓는 일이

낮동안 너무 잘하려고 애쓰던 나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던 나와

어둑어둑한 겨울 같은 밤을 해쳐왔던 나와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은 외로운 마음을 끌어안고 사는 나를

대접받을 사람으로 만든다.

사람도 하지 못하는 일을 밥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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