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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아 Nov 08. 2017

카카오에서의 2년[2]

제주도에서의 생활과 적응

검색팀은 내가 카카오에 입사해서 약 1년 간 몸 담았던 곳이다.

대부분의 셀원 분들은 제주 본사에서 근무하셨고, 나의 근무지는 판교였다. 하여, 내가 처음으로 팀원들의 얼굴을 본건 화상으로 진행하는 주간회의 때였다. 화상회의를 해본 적도 없고, 모니터를 통해 첫인사를 하려니 어색하기도 했다. 무튼간에, 잘 부탁드린다는 온 마음을 담아 인사를 했는데, 어떤 분은 내가 싱글벙글 웃고 있던 게 인상적이었다고 하셨다.(왜인지는 모르겠다.)


입사하고 얼마 있지 않아, 업무 적응차 나는 제주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

제주 본사는 한라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는데, 날이 좋으면 바다가 보일 정도였다. 통유리로 되어있어 내 자리에서 일어나면 맑은 날씨가 내 눈에 꽉 차게 들어왔다.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야외 테라스, 산책하기 좋은 길도 있고, 회사 내에 조그마한 텃밭이 있어 직원들에게 분양해주기도 했다. (매년 노루가 농작물을 뜯어간다며 시무룩해하던 몇몇 분들의 모습은 꽤나 귀여우셨다.) 


제주 오피스에서 직원들을 위해 제공하는 서비스들은 꽤나 많았다.

회사-시내 간 셔틀버스

구내식당

세탁 서비스
출근 시간에 세탁물을 수거하고, 퇴근 시간에 수령하여 집에 가져갈 수 있다.

회사-집을 열심히 달려주던 귀여운 통근버스


나 같은 파견자에게 지원하는 제도도 꽤나 좋았다. 

번화가 근처에 위치한 아파트를 숙소로 제공
사내 다른 파견자 분들과 함께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1인 1실이고, 공용공간(거실, 주방, 화장실)을 공유한다.

월 20만 원 한도 생활비

2주에 1회씩 리프레시 항공권 지원

입사하면 모든 크루(Krew, 우리는 모두 한배에 탔다! 는 의미로 직원들을 이렇게 호칭한다)에게 노란색의 예쁜 카카오 프렌즈가 박혀있는 법인카드를 부여하는데, 파견 생활 중 지원 부분에 대해 긁고 추후 정산만 하면 된다. 영수증 챙길 필요도 없고, 정산하는 절차도 매우 간편해 편리하다.

무튼간에, 타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제도가 잘 정비되어있다. 이런 배려 덕분에, 주중에는 업무 적응에 집중할 수 있었고, 주말에는 차를 렌트해 곳곳을 돌아다니며 나의 여행 욕구를 채워나갔다.


(글을 적으며 그 순간을 회상하니.. 천국도 그런 천국이 없었다는 느낌이 든다. 아! 매력적인 제주도!)

애월 근처, 바다가 보이는 최애 카페 :)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업무, 새로운 공간 등등... 내 주변 모든 것이 새로웠다.

그 당시의 나는 낯선 환경, 그리고 그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고, 나의 출근길은 여행 가는 것 마냥 즐거웠던 게 기억난다. :-)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항상 신나는 부분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고민도 있었다.

회사에 다니는 모든 이들이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법한 내용일 것이다.

내 의견을 말해도 되나?

전에 다른 회사를 다니면서 인턴, 멘토/멘티 관계를 맺은 적은 있었지만, '동료'로서의 나는 처음 맡는 역할이었

고, 행동지침서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었다.

모두가 나보다 경력이 많았고, 이 팀에서 오래 계셨던 분들이다 보니,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다고 느꼈다. 다른 의견이 있어도 몇 번 더 고민하고 생각하다 보니, 발언의 기회를 번번이 놓치곤 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피드백을 받고 싶어 했지만,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어, 스스로 답답함을 느꼈다.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감사하게도 몇몇 분들이 내 생각을 자주 물어봐 주셨고, 신입이라서 혹은 나이가 어려서 할 말 못 하고 눈치 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생각 없이 일하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는 말을 듣고는 용기가 천만 배쯤 충전되었던 것 같다.

모르는 것을 질문하지 않고,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점점 시간이 흐른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이 깊어지기도 힘들고, 순환되지 않다 보니 고립될 테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는 자세가 부족해지겠구나. 어쩌면 아집이 생길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끔찍했다. 내가 절대 되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래, 뭐 까짓것 틀리면 어때! 틀릴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지!

평생 모르는 것보다, 지금 당장 모르는 게 낫다. 창피한 게 절대 아니다. 

내가 도움받을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내가 분명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방향을 바꾸니 의견 및 질문에 대한 부담감도 많이 줄게 되었고, 피드백받는 것을 즐길 정도가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게 정말 맞는 말이다.




이런 고민, 저런 고민을 하며 나를 위한 시간을 자알- 보냈다. 

그간 엄마도 놀러 오고, 친구들도 놀러 왔다 가고, 팀원 분들과 어울려 지내다 보니, 겨울이 왔다.

어느 날 눈을 뜨니 눈이 너무 많이와, 우리 회사로 올라가는 길이 출입 통제되었던 적이 있다.

이내 곧 회사 공지를 통해 재택근무를 실시한다는 내용을 전달받았고, 톡방에서는 서로의 상황을 공유했다.

(셔틀이 운행할 수 있는 데까지 타고, 그 이후에는 눈길을 걸어 회사까지 걸어가셨던 분들도 있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듯한 느낌의 사진을 전송받았다.)

나와 같이 살았던 분은 이런 기회(?)가 또 없다며, 집 근처 카페로 향했다.

카페 창 밖에는 말들이 눈을 맞으며 풀을 뜯고 있었고, 그 광경을 보며 코딩을 하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제주에서의 파견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이 또한 특별한 경험인 것 같다 생각하니 그 시간들을 더 특별하게 만들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한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 플라스틱 눈썰매를 샀고, 어린애들 마냥 꺄륵꺄륵 대며 집까지 타고 왔다. 이 눈썰매는 내가 제주를 떠날 때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짐을 꾸릴 때였는데, 그간 짐을 얼마나 늘렸던지, 부피 큰 박스만 3개를 집 앞 편의점까지 가져가야 했는데, 눈썰매 위에 올려서 운반하니 엄청 편했다! 길 지나가는 사람들이 죄다 쳐다봤었던 것 같지만.. :-)


제주에서 약 5개월. 제주에서의 보냈던 날들은 꿈같은 날들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된 것이 가장 감사한 일이었다.

그 눈썰매는 다음 사람을 위해 숙소에 잘 놓아두고 왔는데,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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