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 송년회를 기획하는 개발자
카카오는 직군에 관계없이 크루들의 참여를 매우 장려하는 회사이다. 이 회사에 다니면서 내가 아주 좋아했던 부분 중 하나이다. 2016년 송년회를 기획할 때에도 그랬다.
10월 즈음이었을까? 연말이라기엔, 혹은 '송년회'라는 단어가 나오기엔 살짝 이른 시기에, 카카오 아지트(전사 커뮤니케이션의 장)에는 공지가 하나 떴다.
2016년 송년회 기획 멤버를 모집합니다!
벌써?
뭘 하려고 하는거지?
나는 새롭고 재밌는 일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연말을 재미있게 보내볼 수 있다는 생각에 참여하기로 했다. 신청서를 입력해가다 보니 '나의 MBTI 유형은?' 질문이 눈에 띄었다. 내 MBTI 결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걸까? 신선했다.
송년회랑 내 MBTI 결과랑 무슨 관계가 있나?
두근두근, 첫 모임.
송준기(송년회 준비를 기똥차게...)TF가 결성되고, 첫 모임이 있었다. P&C(People and Culture) 소속 크루들과 타 부서의 크루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도시락을 먹으며 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때 MBTI 결과가 활용되었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 즉 MBTI 유형이 같은 사람들끼리 조를 편성하려고 했던 것이다. 내가 경험했던 것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조화롭도록 조를 편성하곤 했다. 각자의 성향이 가진 trade-off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번에는 '왜 유형별로 섞어서 조를 편성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그루핑을 더 선호하는지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궁금하다.)
친구들, 동료들 등 내가 속한 집단들 중에는 유형이 비슷한 사람의 그룹도 있고, 다양한 유형이 섞여있는 그룹이 있을 것이다. 두 그룹의 의사결정 과정을 비교해보면 좋을 듯 한데, 나는 '외교형'이라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과 있으면 아이디어에 대한 살이 붙고 붙어 점점 스케일이 커지고, 이에 재미를 느껴 추진력이 높아진다. 재밌고 성공적인 사례가 많았다.
이번에 새롭게 모인 이 집단에선 어떤 아이디어가 나올지, 어떤 재미난 일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되었다.
간단히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다음 회의 때 각 조가 만들고 싶은 송년회 컨셉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소원을 말해봐!
두번째 모임.
우리는 '소원을 말해봐'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한 크루의 소원을 다른 크루들이 이루어주고, 우리는 그들을 서포트하는 '카카오 소원조작단(이하 소작단)'이 되어 따듯한 연말을 만들어 주는 이벤트이다.
[카카오 소원조작단이란?]
크루의 소원을 크루가 이루어드리는 프로젝트입니다. 아주 작고 소소한 소원이라도 그것이 이루어질 때 마음은 따듯해질거에요~
소원을 말하는 사람은 설렘을,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은 따듯한 보람을..
슈퍼문보다 훨씬 멋진 카카오 크루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
크루여러분~ 어떤 소원이 있으신가요?
1. 크루들의 소원을 수집합니다.
2. 크루들의 소원이 익명으로 게시되고, 크루들은 들어주고 싶은 소원에 지원합니다.
3. 소작단과 함께 크루들의 소원을 들어줍니다.
좋은 취지의 이벤트가 기획되었다. 외향형의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점점 스케일도 커져갔다.
하지만 어떻게 진행할건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2000명이 넘는 크루의 소원을 어떻게 수집하고, 어떻게 다른 크루들에게 보여줄 것이며, 소원을 들어줄 크루들을 모집할까.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벽 한쪽면에 포스트잇으로 자유롭게 붙이게 하자. 엽서로 접수받자. 등등.. 하지만, 수 많은 소원을 오프라인에서 수리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고, 구글닥스로 지원받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길, 마음 한구석이 영 편치 않았다. 정말 이게 최선일까? 구글닥스를 활용하면 실시간으로 어떤 소원들이 접수되고있는지, 어떤 소원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볼 수 없을텐데, 보는 재미가 덜하지않을까?
'이런 이슈를 개발로 풀어볼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원을 접수하고 게시하는 절차를 분리하지 않고 한 페이지에 실시간으로 보여주면 훨씬 이벤트가 액티브해 보이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원 컨셉에 맞는 사이트 템플릿과, 이미지를 찾고, 컨텐츠를 어떻게 배치할건지를 고민했다.
소작단에 대한 소개, 소원 접수 창구, 소원을 말 할 수 있기까지 남은 시간, 접수된 소원들이 한 눈에 보일 수 있게 했다. 사용성과 예쁨. 이 두 가지를 고민하는 과정, 이를 구현하는 과정은 정말 재밌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해결하기 힘든 상황일때 기술적으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게 진짜 개발자로서 뿌듯한 순간이 아닐까? 서비스를 위한 개발을 해야한다. 개발을 위한 개발이 아니라!
다음 회의때 바로 데모 사이트를 공유했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신 덕분에, 피드백을 받아 좀 다듬고 사이트를 오픈했다.
'소원을 접수해주세요'라는 공지가 올라감과 동시에 예쁘게 만들어진 사이트에 소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억에 남는 소원들이 몇개 있다. 워킹맘으로서의 고민이 담긴 사연 깊은 소원들부터, '이루어질까?' 의아해했던 소원들까지.. 대부분 이루어졌다.
회사 근처에는 없는데, 호떡이 먹고싶어요..
차두리 팬이에요! 만나보고 싶어요.
누가 3만원만 주세요...
퇴근후 같이 치킨먹을 친구가 되어주세요.
헹가래가 받고싶어요.
소작단으로 활동하면서 따듯한 마음들에 감동했다. 얼굴도 모르지만 소원을 빈 사람을 위해 호떡 파는 곳을 찾아 엄동설한에 돌아다니시고, 사서 배달까지 해주시는 따듯한 마음을 느꼈었다. 차두리를 만나보고 싶다는 소원은 이루어지기 힘들것 같은 소원 중 하나였는데, 차범근 감독을 알고있었던 크루가 만나게 해주는 기회를 마련해주기도 했고, 3만원이 필요하다는 소원에는 십시일반 돈을모아 전달해주는 웃긴 해프닝도 있었다. 퇴근후 치킨친구 만들기 프로젝트는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들이 모인 덕분에, 1년이 다되도록 아직도 만나고 있다. 치킨만 먹는게 아니라 같이 여행도 다닌다. :)
송년회 당일.
본 행사에 우리 크루들과 소작단이 합작하여 크루들의 소원을 들어준 과정들을 담은 영상으로 상영되었다. 어떻게 하면 소원을 더 잘 들어줄 수 있을까 수시로 만나고 고민했었다. 이러한 바쁨이 끝남을 공식적으로 알리게 되니, 후련함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더 컸다. 이렇게 따듯한 행사가 또 어디에 있을까? 크루들의 생각, 고민을 잘 알 수 있었던 좋은 기회 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
소작단 활동 외에도 많은 재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카카오 프렌즈와 비슷한 외모를 가진 크루, 카페에서 가장 많은 음료를 사먹은 크루 등 재미있는 주제를 뽑아 해당되는 크루에게 선물을 주기도 했다.
회사 곳곳에 맥주와 간식이 비치되었고, 솜사탕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아이유가 와서 분위기는 절정에 다다랐다!
아이유로 절정된 흥이 가라앉고, 공연 및 모든 이벤트가 끝났다.
무사히 끝난것에 대해 감사함, 내년을 기약해야한다는 아쉬움도 컸다.
모든 일에는 감사함, 뿌듯함, 아쉬움이 있는 법 :)
재밌는 사람들과 함께 잊을 수 없는 한 해를 같이 마무리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런데 벌써 1년이 지나 2017 송년회라니..
시간이 정말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