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을 읽고..
언제쯤 이 갑갑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유년기시절에 조차 나는 늘 갑갑함을 느꼈다.
그런 나에게 '자유'보다 좋은 단어는 없었다.
그러나 학창 시절,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동료들의 이기적인 자유를 보며 생각했다.
"저것도 자유인가?"
나는 '방종'과 '자유'의 차이점을 찾아내고자 열심히 윤리를 공부했다.
그리고 윤리교과서에서 '질서 속의 자유'란 문구를 찾아냈다.
일전에 내가 '바흐'를 좋아한다고 하니,
누군가 이유를 물었다.
그래서 나는 답했다. "질서 속의 자유'가 있어서요.
이렇듯 그 문구는 내 삶의 곳곳에 모토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학창 시절부터 무지개와 같은 다채로운 컬러와
균일하지 않는 삐뚤빼뚤한 라인들이 좋았다.
그래서 가능한 내 그림에는 반듯한 선을 배제하고,
가능한 삐뚤빼뚤하고 다채로운 색들을 드러내어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
최대한 많은 개성들이 많은 빛을 발휘하는 세상을 지향해 왔던
나의 태도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공리주의 입장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뭐라 할까... 나는 늘 공리주의자라 말 할 수 없는 어떤 딜레마에 있었다.
공리주의자라 하기엔 뭐라 할까.. 아나키스트 같고 아나키스트라 하기엔 또 뭐라 할까..
그리고 근래 제목에 이끌려, 1859년에 출판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관한 책을 읽었고,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정치적 입장의 딜레마의 실체를 본 느낌이 들었다.
존 스튜어트 밀.
그의 이름보다는 아마 이 문구가 더 유명할 것 같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1806년에 영국에서 태어나 19세기에 활동했던
자유의 가치를 설파하며 노동자와 여성 등의 자유에서 소외된 계층과 소수의 권리에 힘을 썼던 경제학자, 정치인, 철학자이며 <자유론>과 <여성의 종속> 등을 통해 여성도 남성과 같은 자유로운 인격체임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는 자유가 최선의 결과를 낳지 못할지라도, 모든 인간은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삶을 꾸려가도록 충분한 자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한 때뿐'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생각을 그는 <자유론>에서 독일 철학자인 홈볼트의 글을 인용하여 표현하기도 하였다.
'인간의 삶에서 각자가 최대한 다양하게 자신의 삶을 도모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없다. -홈볼트-
그가 그토록 자유를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그는 '자기 자신의 감정과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더 정확하게 판단할 능력을 지닌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살던 당시 사회적 평등과 여론 정치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는 그러한 여론과 관습을 앞세운 다수의 횡포가 인간성의 발전을 위축시켜
인류에게 사상 및 행동의 획일화를 강요하게 될 거라고 염려하였다.
'다수의 횡포가 개인의 사사로운 삶 구석구석에 침투해 마침내 그 영혼까지 통제하면서 도저히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는다.'
-존.S 밀-
'사회는 이런 방법으로 다수의 삶과 일치하지 않는 개별성은 절대 발전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그 싹조차 트지 못하게 막으면서 급기야는 모든 사람의 성격이나 개성을 사회의 표준에 맞도록 획일화시키려고 한다.' -존.S 밀-
'다수의 횡포'는 프랑스 정치 사상가 토크빌이 그의 저서에서 처음 언급한 워딩으로 그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 두 가지를 모두 추구 하지면 자유보다 평등을 선호하기 때문에 평등을 위해서 자유를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며,
민주사회에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전제주의 경향을 띄게 된다고 보았다. 민주주의는 평등 제일주의를 낳아 개인의 다양한 의견 보다, 다수의 여론에 권력을 행사 함으로,
독자적 판단 능력이 없는 개인들은 다수의 의견에 복종하고 거기 안주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함으로써
고립을 심화시킨다고 했다.
밀 또한 그런 문제를 우려하며 다수의 횡포는 독재자의 횡포와 동일한 문제임을 지적하며
소수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리낌 없이 행동하고 살아가도록 장려하는 '개별성의 가치'를 중요한 가치로 손꼽았다.
소수의 사람들이 시대의 획일성을 거부하는 파격과 관습을 따르지 않는 것만으로 인류에게 크게 봉사하는 세상의 소금과 같은 존재라고 보았다.
또 그는 누구나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할 권리가 있으며
절대적으로 옳은 진리는 있을 수 없으며 절대적 확신의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고 하였다.
누군가 옳지 않은 주장을 펼칠지라도 그것은 유용한 것이며
그것은 비교를 하게 함으로 어떤 진리에 대한 확신과 완벽하지 않은 진리의 허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했다.
따라서 다수의 횡포나 표현의 자유의 억압하여 소수의 의견과 옳지 않은 다양한 견해를 등을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다음 세대에 더 옳은 진리를 찾아갈 기회를 박탈하는 시키는 행위로써 정당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은 늘 오류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기에 정확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선 자유로운 토론의 논쟁을 거쳐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또한 교육에 있어서도
중앙정부가 나서서 교육일 일괄 통제하는 것은 사람들을 똑같은 하나의 틀에 맞추어 길러내려는 방편에 불과할 뿐이기에, 국가가 나서서 직접 교육을 담당하기보다 교육의 다양성을 위해 국가가 국민들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장려에서 머물러야 한다고 하였다.
이렇듯 그는 <자유론>에서 국가나 집단의 간섭의 한계와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개개인의 자유를 확보하여 개인의 가치를 지키도록 하였다.
<자유론>이 출판된 19세기.
그리고 20세기를 지나, 21세기를 사는 내가 사는 지금 시대는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종종 라디오 채팅창에서 수다를 떨곤 하는데, 그곳에선 별별 이야기가 오고 간다.
누군가는 똥 싸러 간다고 똥커밍아웃까지 한다.
그러다 오늘 누군가 대통령 이름을 언급을 하였는데, 바로 정치얘기는 하지 말라는 피드백이 올라왔다. 나는 편 가르기 정치질도 아닌데 정치얘기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입자의 메시지를 올렸는데 또 다른 누군가가 이 라디오가 폐지되는 걸 원치 않다며 정치 이야기 중단을 요청했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받은 교육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알아서 검열하는 세상이 되었을까?"
점점 획일화되어가는 요즘 세상을 보며 <자유론>의 철학이 MZ세대에도 많이 전파되어 부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