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오스트레일리아
방학을 맞아 아이와 둘이서 여행을 떠났다 (아이는 열아홉, 말레이시아에서 국제학교에 다닌다).
옆 자리에서 부스럭거리던 아이가 물을 살짝 쏟았다. 마침 복도를 지나가던 승무원이 묻는다.
“Could I bring some serviette for you? 서비엣 좀 가져다 드릴까요?”
“Yes, please. 아, 네.”
아이가 당황한 표정으로 대충 대답하더니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묻는다.
“What the hell is that?”
빵 터졌다.
서비엣은 냅킨이다.
웰컴 투 오스트레일리아.
호주에 온 걸 환영해.
아이는 국제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영어가 나보다 유창하지만 웬일인지 금시초문인 단어.
하지만 나는 오래전 호주에 살 때 밥 먹듯이 쓰느라 익숙한 단어.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나서는 한 번도 다시 써본 적 없는 반가운 단어가 머릿속으로 들어가 잠들어 있던 기억을 두들겨 깨운다. 이십여 년 전 추억이 일제히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스마트폰도 구글맵도 없고, 카톡이나 인스타도 없고, 에어비앤비도 없던 바로 그런 시절의 워킹홀리데이였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한국에서 부모님이 전화하셨어.’라는 말을 듣던 시절. 친구들과 일상을 공유하려면 엽서를 쓰고 편지를 받던 옛날 옛적. 그런 구석기시대에 공부하고 일하고 여행하며 꼬박 일 년을 보냈던 시드니에 지금 다시 가는 길이란 말씀. 너무 그립고 설레어 가슴이 뛴다.
비행기는 시드니 킹스포드스미스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고 구글맵을 손에 든 천하무적 여행자들은 조금도 헤매지 않고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시내로 흘러들어 간다.
그런데!
반가운 2층 트램의 사람들 옷차림이 심상찮다. 우리 캐리어에 가득 들어있는 옷들과 정 반대네? 다들 두툼한 패딩 점퍼나 털이 북슬북슬 달린 후드를 입고 목도리까지 두르고 있다.
오 이런.
이 정도의 겨울일 줄이야. 이십여 년 전 겨울의 기억은 이렇게 않았는데. 그땐 내가 청춘이어서 그랬나 아니면 시드니가 갑자기 더 추워졌나. 그렇게 걱정이 태산인데 기차는 어느새 숙소가 있는 센트럴 역에 들어선다. 시드니의 거대한 센트럴 역에서도 헤맬 일은 없다. 구글맵으로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출구를 찾아 척척 나간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며 고개를 드니 푸른 하늘이 점점 커진다.
드디어 다시 왔구나. 그리운 시드니!
마음이 벅차오르며 울컥할 뻔했는데, 세상에 너무 추운 날씨에 눈물마저 깜짝 놀라 도로 들어가 버렸다.
일주일 동안 묵게 될 에어비앤비 집 앞에서 구수한 오지 할아버지와 개 한 마리를 만나 열쇠를 받았다. 무거운 짐을 끙끙 끌고 3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었는데.
아!
깊은 깨달음의 탄성.
숙소는 사진과 똑같았으나, 다만 계절이 달랐다. 여름의 싱그러움은 어디 가고 겨울의 을씨년스러움만 방 안에 잔잔하다. 침대가 있고 소파와 텔레비전이 있고 부엌에는 커다란 냉장고도 있고 베란다에는 테이블과 샛노란 의자도 두 개나 있는데, 다만 겨울이다.
짐을 푸는데 춥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남반구의 겨울이 추워봤자 얼마나 춥겠냐는 방만한 생각이 첫날부터 대차게 깨진다. 한국의 겨울에는 비할 것이 못 되지만 우리는 한국을 떠나 열대의 나라에 산지 십 년이 넘은 몸들이 아닌가. 그렇다고 첫날부터 웅크릴 수는 없는 법. 트렁크를 열어 가장 두꺼운 옷들을 껴입고 아이에게 말했다.
자, 추워도 슬슬 나가볼까? 엄마가 이십 년 전에 살았던 도시를 한 번 걸어보자!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이십여 년 전 나의 시드니 워킹홀리데이 이야기와, 그 후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다 커버린 그 아이를 데리고 다시 찾은 시드니 멜버른 여행기의 짬뽕이 될 예정이다.
여행 첫날 짐을 풀고 숙소를 나서 우리가 가장 먼저 간 곳은 바로,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