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해도 내가 대단한 이야기.
발리의 집들은 실내 공간이 열려 있는 편이다. 바닥을 다지고 기둥을 쌓고 지붕만 올린다. 커다란 정자처럼 사방이 뚫린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거실처럼 가족이 모여 쉬는 곳도 그렇고 호텔 로비도 대부분 그렇다. 피할 추위가 없으니 굳이 돈 들여 사방에 벽을 쌓을 필요가 없다. 잠을 자는 방은 물론 벽을 쌓고 문을 달지만.
자, 그럼 지금부터 머릿속으로 그림을 하나 그려보자. 집을 지어보는 것이다.
1. 정사각형 모양의 땅이 있다. 가로로 반 자른다. 두 개의 직사각형 공간이 위, 아래로 나오면 아래를 정원으로 하고 위에 건물을 짓는다.
2. 우선 직사각형 건물부지의 북쪽에 가로로 길게 벽을 세운다. 그런 다음 직사각형 건물부지를 세로로 반 가르는 벽을 세운다. T자 모양 벽이 생겼다. 오른쪽을 방으로 하고 왼쪽을 거실 겸 부엌으로 하자. 방이든 거실이든 각각 두 면은 이미 벽이다. 방으로 할 부분의 나머지 두 면에 벽을 쌓는다.
3. 거실은 두 면이 벽인 그 상태로 마무리한다.
4. 거실과 방이 공유하는 벽에 문을 단다.
자, 여기까지 잘 따라 그렸는가? 건물부지를 위에서 보면 반으로 나뉜 직사각형, 앞에서 보면 오른쪽은 네 면이 벽인 방, 왼쪽은 두 면만 벽인 거실 겸 부엌이 된다.
자, 이제 방과 거실 전체를 덮는 지붕을 만들어 올릴 차례다. 지붕은 밑변이 없는 삼각형이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집중해야 한다. 거실과 방을 구분하는, 문을 단 벽이 건물부지의 한가운데에 자리하는데, 이 벽의 높이도 나머지 벽들의 높이와 같다. 그리고 삼각형 지붕의 가장 높은 꼭짓점도 건물부지의 한가운데, 즉 그 벽 위에 자리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그 벽이 끝나는 곳부터 지붕 꼭대기까지 지붕 모양을 따라 시원하게 뻥 뚫린 삼각형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천장을 평평히 마감하지 않으니까! 침대에 누워서 보면 천장 끝, 아니 지붕 끝으로 올라가는 소실점을 따라 가끔 사사삭 움직이는 도마뱀 꼬리가 보인다.
그 집을 지은 꼬망은 처음에 그 상태로 집을 빌려주었다.
어스름에 박쥐가 활공을 하는 나라에서! 실수로 방 안에 들어와 나갈 길을 못 찾으면 어쩌냐고 말이다. 이에 적응하지 못한 한 스페인 커플이 그 삼각형 공간을 철제 모기장으로 단단히 막아 달라고 요구해 일 년을 살았고, 처음에 그 뻥 뚫린 공간을 보며 헉,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산단 말인가, 했던 나는 일 년 후 그 커플이 나갈 즈음, 음, 모기장으로 막으니 괜찮은데? 에어컨도 필요 없고 모기나 큰 도마뱀, 박쥐는 차단되겠으니 살만하겠어. 가격? 사랑스럽군, 하며 당장 그 집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뚫린 집의 문제는 모기나 도마뱀, 박쥐가 아니었다. 바로 소리였다.
그 뚫린 공간으로 담 너머 자갈길을 걷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비 오는 날이면 두꺼비와 개구리 합창단의 실황이 고스란히 방안으로 중계되었으며, 근처에 있는 숙소에 언제 손님이 들고 나는지 고스란히 알 수 있었다. 뭐 그 정도라면 문제도 아니다. 가장 골치 아픈 때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밤, 진정한 우붓이 깨어나는 시커먼 밤이었다. 한밤중에 비라도 내리면 세차게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우레와 같아서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밤의 소리 중에서도 으뜸은 씨르씩씩과 찌르찍찍의 중간으로 밖에 묘사할 수 없는 그 울음소리였다. 문제는 공간이 뻥 뚫려 그 소리가 정확히 어디서 들리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방 안 책장 뒤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벽 너머 거실 소파 밑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몹시 가깝게 들리기는 하는데 그 위태로운 벽 안쪽인지 바깥쪽인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다. 어딘지 알아야 맘 편히 자든지 벌떡 일어나 몰아내든 할 것이 아닌가. 그 소리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쥐였을 것이다.
똥 옆에 오줌까지 꼭 싸 놓는, 주둥이가 툭 튀어나온 징그러운 쥐가 그 집에는 유난히 많았다. 실험실의 흰 쥐나 동화책에 나오는 귀여운 생쥐를 떠올리지 말 것. 우붓 쥐들은 정말 주둥이가 두더지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래서 더 기괴하고 무서웠다. 왠지 잘못 건드리면 갑자기 몸이 부풀어 집을 무너뜨리고 나를 공격할 것처럼. 그놈들은 꼭 똥 옆에 오줌까지 같이 싸 놓았다. 처음 집에서는 한 번도 못 봤는데 두 번째 집은 그놈들이 아주 좋아하는 곳이었는지 심심찮게 와서 흔적을 남기고 갔다. 냉장고 옆 구석진 곳에 새끼손가락 3분의 2정도 되는 크기로 똥을 싸 놓는데 그놈의 오줌 때문에 도마뱀 똥처럼 휴지로 말끔히 치울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있다. 그래도 냉장고 뒤까지 기어 들어간 놈들은 양심이라도 있지, 어떤 놈들은 대범하게 거실 한 가운데나 자칫하면 밟기 쉬운 화장실 문 앞에 흔적을 남겨 놓고 갔다. 길고양이는 그래도 부엌에만 왔다 가는데 이놈의 쥐들은 문을 닫아 놔도 틈새로, 그러니까 사방 1cm의 틈만 있어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고 하니, 내가 의지하고 있는 완전밀폐되지 않는 미닫이문은 그놈들에게 어떤 장애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어느날 밤,
쓰레기통 안에서 기척을 느꼈다. 누가? 아니, 무엇인가가 쓰레기통 안쪽 벽을 벅벅 긁고 있었다. 그보다 작은 놈들이 저렇게 큰 소리를 낼 리가 없다. 분명 쥐다. 에잇, 멍청한 놈. 쓰레기통에는 왜 들어가가지고! 그냥 몰래 들어왔다가 몰래 나갈 것이지!
암튼 그 놈이 빠져나오려고 밤새 쓰레기통을 벅벅 긁어대는 통에 뜬눈으로 지새웠다. 그렇다고 한밤중에 쓰레기통에서 쥐를 꺼내 쫓아낼 수도 없지 않은가. 새벽에 얼핏 잠들었다 깨보니 조용했다. 살금살금 다가가 뚜껑 틈으로 실눈을 뜨고 들여다보니 시커먼 덩어리가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긁다 지쳐 잠들었거나 상황을 비관하고 자살했거나. 쓰레기통을 발로 살살 밀면서 밖으로 꺼내 저 멀리 쓰레기장으로 보내버렸다.
그날 밤!
같은 놈인지 다른 놈인지 모를 쥐 한 마리가 또 같은 쓰레기통 안에서 벽을 긁었다. 아이고, 오늘도 뜬 눈이구나, 싶어 일그러진 얼굴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데 벽 긁는 소리가 생각보다 일찍 멈췄다. 이놈은 빨리 지쳤나, 아니면 용케 빠져나왔나 싶어 어둠을 뚫고 모기장 안에서 경계 태세로 바깥을 살펴보았다.
바로 그때!
침대에서 서너 발짝 떨어져 있는 책상 아래로 꼬리가 긴 까만 덩어리 하나가 조용히 지나갔다. 그 방향으로 가면 곧 방의 모서리가 나오니 그 녀석은 오른쪽으로 90도 방향을 틀 수밖에 없을 것이고 방향을 틀어 조금만 전진하면 바로, 내가 누워 있는 침대! 침대 머리맡을 지나 다시 90도 꺾어 침대 옆면을 지나 다시 또 90도 꺾어 한참을 가야 있는 문을 찾을 수 있길 바라며, 아까 그 쓰레기통에서 반대 방향으로 한 발짝만 가면 바로 문인데 이런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중얼거리며, 나는 그저 두 눈을 감고 현실을 외면했다. 그럴 때는 꿈나라만이 살길이다.
어쩌면 그래서 술도 늘었다. 곯아떨어져야 그놈들이 쓰레기통을 긁든 말든 푹 잘 테니까.
그렇게 현실을 외면하며 그 집에서 한동안 잘 살았다는 이야기.